[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1) 그리스도교를 세계 종교로 탈바꿈 시킨 바오로 올해는 사도 바오로의 탄생 2천년을 맞는 해입니다. 이 뜻 깊은 시기를 맞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특별희년 ‘바오로 해’(Pauline Year)를 선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한 바오로 사도의 용맹한 신앙을 기리도록 했습니다. 본지는 이 같은 보편교회의 지향에 응답하며 ‘바오로 해’를 맞아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의 ‘바오로 서간 해설’을 연재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정신과 영성을 깊이 알고 그를 본받고 싶어하는 신자, 바오로 서간을 처음 접하는 예비신자 등에게 이번 지상 강의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머리말 그리스도교에서 사도 바오로만큼 널리 알려진 인물도 없다. 그리스도교를 세계적인 종교로 탈바꿈시킨 인물이 바로 사도 바오로이기 때문이다. 바오로의 생애와 사상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바오로에 관한 사료들을 살펴야 한다.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사료는 그가 손수 쓴 편지들이다. 신약성경에는 그 서두에 바오로의 이름이 언급된 편지 13개가 있다. 신약학계에서는 테살로니카 전서, 갈라티아서, 고린토전 후서, 필리피서, 필레몬서, 로마서 등 일곱 개를 바오로가 친히 쓴 친서로 간주한다. 그밖의 여섯 개의 편지인 테살로니카 후서, 콜로새서, 에페소서, 티모테오전 후서, 티토서는 바오로 사후 사도의 유산을 이어받고 보존하기 위해 그의 제자들이나 그를 존경하는 후학들이 바오로의 이름을 빌려 쓴 차명서간이라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다. 바오로를 이해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료는 사도행전이다. 특히 사도행전 9장과 13~28장에는 바오로의 회심과 행적이 집중적으로 기록돼 있다. 바오로는 친서에서 자신의 신상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도행전 필자는 나름대로 전해오던 단편 전승들을 모아 사도행전을 쓰면서 바오로의 생애를 비교적 상세하게 묘사했다. 출생연도 사도 바오로가 언제 출생했는지는 분명하게 밝힐 수 없고 다만 바오로의 나이를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성경구절들을 통하여 추정할 수 밖에 없다. 33년경 스테파노가 유다교 최고의회에서 예수를 증언했다가 돌에 맞아 순교했다. 마침 그 자리에 있었던 바오로는 돌로 때리는 사람들이 벗어놓은 겉옷을 맡아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를 성 밖으로 몰아내고서는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 증인들은 겉옷을 벗어 사울이라는 젊은이의 발 앞에 두었다”(사도7, 58). 그리고 55년경 바오로는 에페소 감옥에서 필레몬에게 편지를 써 보내며 자신을 늙은이로 소개했다. “사랑 때문에 오히려 부탁을 하려고 합니다. 나 바오로는 늙은이인데다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때문에 수인까지 된 몸입니다”(필레 1, 9). 바오로의 나이를 짐작하는 데 도움을 주는 정보는 이 두 구절뿐인데 젊은이와 늙은이의 기준이 모호하다. 다만 학자들은 당시 쉰 살이면 노인으로 불렸기 때문에 바오로가 33년경에는 20대 중반, 55년경에는 50대였을 것으로 추정하며 바오로의 출생연도를 기원후 5~10년으로 본다. 아무튼 바오로는 예수보다 몇 살 연하였을 것이다. 출생지 바오로가 로마의 킬리키아 속주의 수도인 타르수스에서 태어난 것은 확실하다. 사도행전은 바오로가 타르수스에서 태어난 것을 세 차례에 걸쳐 언급하고 있다(사도 9, 11; 21, 39 ; 22, 3). 특히 바오로가 제3차 선교여행(53~58년)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성전에서 체포된 후 천인대장 앞에서 변호한 사도행전 21장 39절을 보면 타르수스가 로마 제국 안에서도 매우 유명한 도시였던 것 같다. “나는 유다 사람으로 킬리키아의 저 유명한 도시 타르수스의 시민이오”(사도21, 39). 타르수스는 지중해로 흐르는 치드누스강 양편에 자리잡은 도시로서 지중해에서 직선거리로 약 16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휴양지였다. 히에로니무스(347~419년) 성인은 자신이 쓴 ‘유명한 사람들의 전기’에서 바오로의 부모는 본디 나자렛 북쪽에 위치한 갈릴래아의 한 도시인 기스칼라(기샬라) 지역에 살다가 로마인들에 의해 추방되어 타르수스로 이주한 후 율법공부를 위해서 바오로를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가말리엘의 학교에 입학시켰다고 주장하나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 유충희 신부는? 1955년 강원도 원주 출생인 유충희(대철 베드로) 신부는 독일 상트 게오르겐 대학을 졸업하고 1991년 사제품을 받았다. 원주교구 원동본당 보좌, 문박본당 주임, 구곡본당 주임을 거쳐 미국 LA 벤츄라 한인본당 및 강원도 횡성 종합사회복지관에서 사목했다. 연세대학교 신학과(학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석사), 서강대학교 종교학과(박사)에서 수학했으며, 현재 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신부로 사목 중이다. [가톨릭신문, 2008년 2월 17일, 유충희 신비(백운본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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