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9) 압송길에서도 담대히 하느님 나라 선포 바오로는 아마도 예루살렘을 거쳐 선교 출발지였던 시리아의 안티오키아로 돌아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바오로가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어 당시 유다교 총독부가 있던 카이사리아로 이송되어 2년 동안 미결수로 갇힌 몸이 되는 바람에 3차 선교여행이 끝나고 만다. 체포, 구금, 로마행 바오로는 예루살렘에 도착한 다음 예수님의 동기 야고보를 만났는데 야고보는 바오로의 신변을 무척 염려했다. 바오로가 지중해 동부 지역에서 선교하면서 유다교를 헐뜯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니 유다인들로부터 봉변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야고보는 바오로에게 유다교 율법에 따라 나지르인 서원(민수 6, 2~5; 13~21)을 했지만 돈이 없어 서약을 마칠 수 없는 이들에게 제사 비용을 대주라고 했다. 바오로는 야고보의 충고를 받아들여 이레 동안 정결례를 행한 후 서원자들과 함께 성전에 들어갔다가 그만 에페소를 비롯해 아시아에서 온 유다인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바오로가 선교여행 때 유다교를 비방했으며 성전 안으로 이방인들을 데리고 들어갔다는 것이 그의 죄목이었다(사도21, 17~29). 에페소 주변의 아시아에서 온 유다인들과 성전에 있던 다른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죽이려 했으나 성전 마당 북쪽 안토니오 진지에 주둔한 로마 군인들이 출동해서 바오로를 구해냈다(사도 21, 31~36). 유다인들이 바오로를 죽이려고 하자(사도 23, 12~22) 안토니오 로마군 사령관인 천인대장은 바오로를 총독부 카이사리아로 압송케 했다. 바오로는 로마군의 호위를 받으면서 밤에 예루살렘을 떠나 안티파트리스에 이르러 잠시 쉬고 이튿날 카이사리아에 도착하여 2년 동안 미결수로 갇힌 몸이 되었다(사도 23, 12~35). 바오로가 카이사리아 총독부에 도착했을 당시 그곳 총독은 노예 출신의 안토니우스 펠릭스(52~60년)였다. 그는 바오로를 자주 불러 대화를 나누었으나 뇌물을 바라면서 두해 동안이나 재판을 미루었다. 그에 이어 포르키우스 페스투스 총독(60~62년)이 부임했는데 그 역시 유다인들의 요구에 따라 바오로를 예루살렘으로 압송하려했기 때문에, 바오로는 로마 시민권을 내세워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노라고 상소했다(사도 25, 1~12). 페스투스 총독이 허락하자 60년 가을 바오로와 죄수 몇 사람은 율리우스라는 백인대장의 인솔로 카이사리아 총독부를 떠나 시돈에 입항하여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배를 타고 리키아의 미라로 갔다. 미라에서 배를 갈아타고 크레타 섬 남쪽 ‘좋은 항구들’이라는 곳에 이르렀다(사도 27, 1~8). 많은 시일이 흘러 속죄의 날 단식이 지난 때라 항해하기가 위험하다는 바오로의 경고를 무시한 채 백인대장은 항해를 강행하다가 폭풍을 만나 파선하였고, 일행은 겨우 몰타섬에 상륙했다(사도 27, 9~44). 바오로 일행은 몰타섬에서 겨울철 석달을 지내고 61년 디오스쿠로이의 모상이 새겨진 알렉산드리아 배를 타고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에 상륙한 다음 사흘을 머문 후(사도 28, 11~12) 레기움을 거쳐 나폴리만에 있는 푸테올리 항구에서 하선하여 이레 동안 그곳에서 신자들의 환대를 받았다(사도 28, 13~14). 푸테올리에서 로마까지는 국도를 따라 걸었는데, 로마 신자들이 바오로 압송 소식을 듣고 아피우스 광장과 트레스 타베르내 고을까지 마중나왔다(사도 28, 15). 로마에서 바오로는 군인 한 사람의 감시를 받으며(사도 28, 16), 만 이년동안 셋집에서 살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두 맞아들이고,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칠 수 있었다(사도 28, 30~31). 사도행전이 전하는 바오로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종생 사도행전을 쓴 루카는 바오로의 종생에 대해서 함구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오로가 셋집에서 이년을 지낸 다음 순교했다고 주장하나 이는 교부들이 증언한 내용을 소홀히 한 결과이다. 바오로는 3차 선교여행을 하던 57년 경 코린토에 머물면서 로마서를 집필했다. 당시 바오로는 로마교회를 설립하지 않았고 한 번도 로마를 방문한 적이 없었다. 바오로는 코린토에서 로마서를 쓰면서 장차 로마에 들렀다가 에스파냐로 가겠다는 선교 계획을 밝혔다(로마 15, 28). 그렇다면 과연 로마를 거쳐 에스파냐에 가서 선교하고 싶다는 바오로의 소원이 실제로 이루어졌을까. [가톨릭신문, 2008년 4월 13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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