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충희 신부의 '바오로 서간' 해설] (25) 형제를 위해서라면 자유, 권리 포기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바오로 역시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쳐 그리스도와 교회에 헌신하였기에, 바오로는 교우들더러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했던 것이다. 사도의 본보기 : 1코린 9장 사도 바오로는 1코린 8장과 10장에서 자기 양심의 확신보다도 심약한 교우의 마음을 헤아리는 이웃사랑을 앞세우라고 가르쳤다. 즉, 이웃사랑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권리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바오로는 8장 13절에서 “음식이 내 형제를 죄짓게 한다면, 나는 내 형제를 죄짓게 하지 않도록 차라리 고기를 영영 먹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형제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지식과 심지어 사도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까지도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서 코린토 교우들 가운데 일부는 바오로는 진정한 자유인이 아니고 그의 사도직 또한 의심스럽다고 생각했다. 이에 바오로는 9장에서 자신이 그렇게 산다는 사실을 예시하면서 복음선포를 위해서라면 사도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권리도 자유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1) 사도로서의 권리와 포기 (1~18절) 바오로는 16번이나 질문을 던지면서 자신이 자유인이고 사도임을 강조했다. 그리고 구약성경(8~12절)과 주님의 말씀(14절)을 들어 자신이 사도로서 누릴 권리를 피력했다. 예수님은 루카복음 10장 7절에서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생계에 필요한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사도 역시 자신에게 필요한 생활비와 전도비를 교우들로부터 당연히 받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오로는 그 권리를 포기하고 스스로 노동하여 그 비용을 마련했다(1테살 2, 9 ; 1코린 4, 12 ; 9, 4~18 ; 사도 20, 34). 사도행전 18장 3절에 따르면 천막을 만드는 일이 바오로의 생업이었다고 한다. 신약시대의 사도들 가운데서 오직 바오로와 바르나바만이 교우들에게 신세지지 않고 스스로 노동해서 생활비와 전도비를 마련했다(1코린 9, 6). 바오로는 12~18절에서 자신이 왜 스스로 교우들의 물질적 도움을 포기했는지를 분명하게 밝혔다. “다른 이들이 여러분에게 그러한 권리를 갖는다면 우리야 더욱 그러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권리를 행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떠한 지장도 주지 않으려고 모든 것을 견디어 내고 있습니다. 성전에 봉직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양식을 얻고, 제단 일을 맡은 이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그러나 나는 그러한 권리를 하나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또 나에게 그렇게 해 달라고 이런 말을 쓴 것도 아닙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습니다. 아무도 나의 자랑거리를 헛되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사실은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는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내가 내 자유의사로 이 일을 한다면 나의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한다면 나에게 직무가 맡겨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받는 삯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자신이 사도로서 당연히 받아야 할 품삯을 요구하지 않은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어떠한 지장도 주지 않기 위해서라고 했다(12절). 우선 바오로는 교우들의 경제적 부담이 복음선포에 지장이 된다고 보았다. 사실 바오로는 교우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고 싶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1테살 2, 9 ; 2코린 11, 9 ; 12, 16). 그리고 바오로는 자신이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서 복음을 선포한다는 교우들의 오해(2코린12, 17. 18)가 복음선포에 지장이 된다고 보았다. 바오로는 이러한 지장들을 차단하기 위해서 사도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무상으로 복음을 전했던 것이다. 바오로는 복음선포는 마땅히 행해야 할 직무이기 때문에 결코 자랑거리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자신이 굳이 자랑할 게 있다면 그것은 무상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바오로는 이 무상성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말할만큼 복음선포의 무상성을 강조했다. [가톨릭신문, 2008년 8월 3일, 유충희 신부(원주교구 백운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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