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묻고답하기

제목 카인은 무엇을 잘 못했을까? 카테고리 | 성경
작성자이정임 쪽지 캡슐 작성일2012-01-20 조회수387 추천수1 신고

+샬롬(그리스도의 평화)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우리가 살아가며 깊이 묵상하며 풀어나가야 할 아주 중요한 숙제라고 묵상해 봅니다. 어쩌면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깊게 볼 수 있는 대목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봅니다.
성경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말씀이므로 이것이 답이다라고 한가지로 답을 하기 어려운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삶의 모습이 다양한 만큼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다가와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이 성경공부와 묵상의 이유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카인과 아벨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에 대해서는 문경준 형제님께서 해 주셔서 저는 다른 관점에서 제가 묵상한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카인과 아벨에 대한 사회학적 해석은
하느님께서는 농경민(카인)보다 유목민(아벨)을 더 돌보아 주신다.
하느님께서는 부를 축척하기 힘들었던 유목민을 약자로서 더 편들고 계신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렇게 배웠습니다.

저는 이러한 신학적 해석도 아닌 제가 삶 안에서 묵상한 내용을 나누려고 합니다.

저는 먼저 성경은 왜 카인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말하지 않는가에 대해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굳이 가르쳐주지 않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름대로 묵상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성경이 말하지 않는 이유는 그 만큼 중요하다는 말씀이라고.
말하지 않으니 곰곰히 생각해 보겠지요?

그렇다고 답이 없는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오히려 나름대로 답이 너무 쉬워서 그것이 답임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항상 인생의 답을 어렵고 또는 특별함에서 찾아 헤메지만 사실 인생의 답은 아주 평범함 안에 있음을 보았습니다.
또한 너무 평범하고 쉬워서 그것이 답인지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부분이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선 카인이 화를 낸다는 사실부터 나누어 보겠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느님의 처사에 화가 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화가 난다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에 만족스럽지 않을 때입니다. 그렇다면 카인이 만족하지 못한 것이 무엇일까?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이후의 사건으로 아담과 하와가 어떻게 해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단절 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이라면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하느님과 관계가 단절된 인간이 무엇때문에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단절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사건인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의 관계 단절은 사실 지나친 욕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애정)이든 물질적이든 말입니다.
먼저 애정의 욕심에서 보자면
카인은 어떤 이유에서든 하느님이 자신의 동생을 더 사랑한 것에 기뻐해야 하는 사람임을 말해주고 싶은 것입니다.

자신의 친동생이 누군가에게 자신보다 더 사랑받는 것을 인간이 기뻐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이웃이 자신보다 더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느님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주시며 다시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웃이 하느님의 사랑을 나보다 더 많이 받고 있다고 느끼면 그가 나라고 생각하고 기뻐할 수 있을 때에 행복할 수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또다는 관점에서 바라본 인간의 문제는 제물에 관해서 입니다.
제물을 바치는 여러가지 이유가 성경에 제시되고 있습니다.
주로 감사해서 바치는 제물과 죄를 지어 용서받기 위해서 바치는 제물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절대로 없는 것이 있는데 무언가를 얻어내기 위해서 바치는 제물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무상으로 주시지 인간에게 무엇을 받으시고 그 제물의 가치를 보고 인간에게 무엇을 주시는 분이 아니심을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아벨은 베풀어주신 은총에 감사하는 제물을 드렸다면 제 생각에 카인이 드린 제물은 목적이 있는 제물로 드렸을 것으로 보았습니다.
어쩌면 아벨의 제물보다 더 훌륭한 제물을 드렸을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이치에 맞는지는 모르지만 카인과 아벨 당시에는 아직 하느님께서 동물을 먹으라고 허락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허락하지 않은 상태라면 그다지 중요한 상태는 아니라고 생각 됩니다.

그렇지만 아벨의 생각은 이랬을 것입니다.
비록 하느님께서 먹으라고 허락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 아니더냐? 그러므로 주님의 것을 주님께 정성을 다해 드린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제물의 의미입니다.

반면 카인의 마음을 보았습니다.
모든 것(땅의 소출을 먹을 것을 허락하심 창세 1,29 참조)을 먹도록 허락하셨는데 그의 마음 안에는 욕심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욕심에서 드리는 제물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물이 아니고 뇌물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가장 역겨워 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이 다 당신의 것인데 무엇이 필요하셔서 인간에게 제물을 원하시겠습니까?
우리 민족 신앙(무속신앙) 안에서 보면 인간이 제물을 바치는 경우가 어떤 때입니까? 그들이 말하는 천지신명께 감사해서 바치는 것이 아니라 천지신명이 자신이 드리는 제물을 보시고 복을 내려 달라고 바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뇌물인 것입니다.

뇌물은 어떤 것입니까?
뇌물은 바치는 어떤 것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것을 신에게 드리며 내가 이것을 드리니 당신은 나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십시오하는 것이 아닌지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바치는 것?

사실 거의 많은 사람들의 마음 안에 이런 카인의 마음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벌었으니 내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지 않습니까?
주님의 것이라면 주님께 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봉헌하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드린 제물이 이웃이 드린 제물보다 더 멋지고 값진데 나보다 보잘 것 없는 제물을 드린 동생(불쌍한 사람 내지는 동생의 개념에는 내가 돌보아줄 사람)이 하느님의 축복을 나보다 더 받는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단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곧 네가 하느님과 관계가 회복된 사람이라면 하느님을 사랑할 것이며 또한 너는 형으로써 네 동생을 잘 돌보아줄 것이다. 카인이 자신의 입으로 한 고백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를 실천할 것입니다.
왜 우리가 형이겠습니까?
주님을 그들보다 먼저 만났기에 형인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카인이 아벨을 칼로 찔러 죽였다고 생각하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카인은 자기 아우에게 덤벼들어 죽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께서 세상을 돌보라고 만들어 주신 손으로 형제의 목을 조른 것입니다. 우리가 어렵게 생각하지만 형제의 목을 조르는 것은 아주 작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카인과 아벨을 통해서 묵상할 수 있습니다.

내 생각만 하고 사는 것, 내 행복만 생각하고 사는 것은 아닐까요?

부족한 저의 묵상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묵상방이 아닌데...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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