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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소예언서 읽기: 그러나 나는 기뻐하리라(하바 3,18 참조)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262 추천수0

[소예언서 읽기] 그러나 나는 기뻐하리라(하바 3,18 참조)

 

 

‘그러나’, 이것이 중요한 단어입니다. 지난 호에서 하바쿡은 하느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언자의 탄원과 하느님의 응답, 그 다음에 다시 이어지는 예언자의 탄원과 하느님의 응답. 그 두 번째 응답에서 하느님께서는 “지금 이 환시는 정해진 때를 기다린다. … 늦어지는 듯하더라도 너는 기다려라”(하바 2,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다려서, 어떻게 되었을까요?

 

 

3장의 노래

 

하바 3장의 노래는 1-2장과 상당히 달라 보입니다. 1,1에는 “하바쿡 예언자가 환시로 본 신탁”이라고 되어 있었는데, 3,1에는 이와 달리 “하바쿡 예언자의 기도”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기도는 시편과 비슷한 양식으로 되어 있고 전례에서도 사용할 수 있을 만한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3장을 근거로, 예언자와 하느님의 대화 형식으로 된 1-2장도 전례와 연결 지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습니다.

 

더 많은 이가 지지하는 의견은, 3장이 본래 1-2장과 별개였다는 것입니다. 여러 면에서 이 기도는 앞의 본문과 달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개 3장은 유배 이후 시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봅니다. 하바쿡은 유배 이전, 기원전 7세기의 예언자였지요. 그러니까 더 오래된 하바쿡서의 본문에 3장의 기도가 다른 사람에 의해 늦게 첨가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설령 그랬다 치더라도 현재의 문맥에서 3장의 기도는 하느님의 응답에 따른 하바쿡의 고백으로 훌륭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2장에서 하느님께서는 하바쿡에게 환시의 내용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과 함께 하바쿡이 장차 일어날 일에 대한 환시를 보았다면, 3장은 그 환시에 대한 예언자의 응답이 됩니다. 정해진 때를 기다리는 환시는, 아마도 앞으로 이루어질 구원을 알려 주었을 것입니다. 하바쿡은 그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리면서 이 노래를 부릅니다.

 

 

“저는 당신의 명성을 들었습니다”(3,2)

 

이 노래의 앞부분에서는 하늘과 땅을 가득 채우는 하느님의 영광을, 온 세상을 지배하는 하느님의 능력을 노래합니다. 예언자는 과거에 이뤄진 하느님의 업적을 알고 있고, 그의 시대에도 하느님께서 그러한 모습을 보이시기를, 그 업적을 되살리시기를 청합니다(3,2 참조). 3-15절의 신현(神顯)에 대한 묘사는 이집트 탈출의 기억을 담고 있습니다. 시나이 산에서 당신 영광으로 하늘을 덮으신 하느님, 재앙으로 이집트를 치신 하느님, 갈대 바다를 갈라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파라오의 병거를 멸망시키신 하느님을 기억합니다. 그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려고”(3,13) 나온 하느님이셨습니다. 과거에 이렇게 큰 권능을 떨치며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해 내신 하느님께 하바쿡은 다시 한 번 일어나실 것을 간청합니다.

 

하바쿡은 하느님께서 불의를 심판하시리라고 믿습니다. “나는 우리를 공격하는 백성에게 들이닥칠 환난의 날을 조용히 기다린다”(3,16). 기도를 시작할 때 하느님께 청한 것을 하느님께서 반드시 이루시리라고 믿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환시’의 내용이었을 수도 있겠지요. 하느님께서 심판을 약속하셨기에 예언자가 그날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3,18 참조)

 

그러나 3,17에서는 하바쿡이 “기다려라”(2,3)는 주님의 말씀대로 아직 성취되지 않은 희망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을지라도….”

 

이 단락을 가장 쉽게 이해하는 방법은, 본문을 바꾸어 놓고 읽는 것입니다. “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많아서….” 그래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모습은 확실한 희망의 근거를 제시해 주지 않습니다. 구원은 그야말로 싹도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은 “무화과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하고 포도나무에는 열매가 없을지라도”입니다. 그런데도 하바쿡은 노래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고 내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하리라”(3,18).

 

번역문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이 절의 첫머리에는 앞 문장과 대조를 이루는 접속사 ‘그러나’가 있어야 합니다. 나무에 꽃이 없고 열매가 없어도, 우리에는 양 떼가 없고 외양간에는 소 떼가 없어도, 아시리아든 이집트든 바빌론이든 원수들이 끊임없이 쳐들어오고 불의한 자들이 의인을 잡아먹으며 자신들의 힘으로 세상을 마음대로 휘어잡을 수 있는 듯이 날뛰고 있어도, ‘그러나 나는’ 오직 주님 안에서 기뻐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언자에게 기다리라고 말씀하셨고, 그 약속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의 정의가 실현된다는 증거가 분명히 보여서가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이 희망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듯 보여도 “주님 안에서, 내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끝없이 하느님께 묻고 물은 하바쿡의 결론일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하바쿡은 “주 하느님은 나의 힘. 그분께서는 내 발을 사슴 같게 하시어 내가 높은 곳을 치닫게 해 주신다”(3,19)고 말합니다.

 

 

“내가 높은 곳을 치닫게 해 주신다”(3,19)

 

지난 호에서 저는 하바쿡을 멋있는 예언자로 생각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의 끈질긴 기다림 때문입니다. 후대에 덧붙여진 3장의 기도가 없었다면, 그의 기다림이 어떻게 끝났을지 여러 가지로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 가능성은 단순한 해피엔딩입니다. “하바쿡은 기다렸고 어느 때엔가 그 기다림이 성취되는 것을 보았다.” 가능한 상상이겠지요. 그러나 성경의 이야기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어느 순간 약간 도통하듯 깨달은 것인데,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성경의 결말은 뭔가 다른 식으로 끝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두 번째 가능성은 하바쿡이 기다리다 지쳐 떨어지는 장면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기다리라고만 하시니 그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3장의 기도는 이도저도 아닌 다른 끝을 보여 줍니다. 그는 약속의 성취를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약속을 믿었고 희망을 가졌습니다. 어쩌면 하바쿡의 희망은 이 세상의 역사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완성될 수 없는 희망인지도 모릅니다. 하바쿡서에서는 ‘불의’의 구체적 얼굴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아시리아와 이집트가 아니라 불의 그 자체가 문제라면, 이상理想이 완성되는 그날까지 인간 역사에 불의가 남아 있을 것입니다. 하바쿡의 희망은 어쩌면 세상이 완성되는 종말에야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3장의 기도는, 하바쿡이 하느님을 기다리고 있어도 조금도 지치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 그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은(로마 8,24 참조)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굳은 신뢰를 바탕으로 사슴처럼 높은 곳으로 치달을 수 있었습니다. 무화과나무에 꽃이 피지 않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어도, 그는 이미 구원의 날에 살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대답을 들을 때까지 지켜 서서 기다린 하바쿡은, 믿음과 현실의 격차 사이에서 갈등하면서도 응답을 얻을 때까지 그 씨름을 놓아 버리지 않았기에 그 하느님의 힘으로 현실의 어둠에서도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올해를 마무리하면서 특별 선물로 수수께끼 같은 성경의 비밀 하나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성경에서 큰 단락이 끝날 때는 대개 이렇게 끝나는 것 같습니다. 동화에서 보는 행복한 결말이 아니라, 아직 현실에서 완성되지 않았으면서도 완성에 대한 분명한 희망을 품은 결말이라는 것입니다. 대림 시기에 깊이 묵상할 주제입니다. 해마다 성탄을 지내면서도 해마다 대림을 지내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것입니다.

 

■ 이 글의 본문 설명에 관한 부분은 <경향잡지> 2014년 8월호에 실린 글 ‘하느님을 기다리는 하바쿡의 기도’(필자 씀)를 인용합니다.

 

* 안소근 수녀는 성 도미니코 선교 수녀회 소속으로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현재 대전가톨릭대학교와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아름다운 노래, 아가》, 《굽어 돌아가는 하느님의 길》 등을 썼고, 《약함의 힘》,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등 여러 책을 옮겼다.

 

[성서와 함께, 2014년 12월호(통권 465호), 안소근 실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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