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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약] 말씀과 함께 걷는다: 미카서 -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8-06-04 조회수5,243 추천수0

[말씀과 함께 걷는다 – 미카서]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

 

 

이스라엘이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맺은 계약은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나게 된 사건입니다. 이집트를 떠나 시나이 산에 이르는 여정이 새로운 정체성을 얻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면, 시나이 산을 떠나 모압 평원에 이르는 과정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구현해야 하는지 배우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여정에서 이스라엘이 얼마나 자주 실패하였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서도 다른 신들을 섬기고, 하느님의 극진한 보살핌을 체험하면서도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에 의존하고자 했습니다. 참된 믿음에 이르는 우리의 여정 역시 이스라엘 백성의 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서 곧바로 참된 믿음에 이르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참된 믿음은, 내 것이라고 움켜쥔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 드리는 때부터 시작됩니다.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 드린 이는 주님께 바라는 것보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더 많이 질문하게 됩니다.

 

이번 호에 만나게 될 미카 예언자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단순하지만 명료한 답을 줍니다.

 

 

이사야 예언자와 동시대인인 미카 예언자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던 예언자 미카는 이사야 예언자와 동시대인입니다. 1열왕 22,1-12에 소개되는 이믈라의 아들 미카야라는 예언자와 다른 인물입니다. 이믈라의 아들 미카야가 아합 임금 시절, 곧 기원전 9세기에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했다면 예언자 미카는 요탐과 아하즈, 히즈키야 임금 시대에 유다 왕국에서 활동했습니다. 미카의 고향은 모레셋으로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40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성읍입니다. 이것이 미카 예언자의 신상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입니다. 그러나 미카의 활동 시기를 살펴보면 미카 예언자가 경험했을 일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미카는 북이스라엘 왕국의 멸망(기원전 722년)과 기원전 701년에 일어난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공격을 직접 경험했을 것입니다. 산헤립이 남긴 역사 기록에 의하면 히즈키야 임금 시절에 그는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 주변 성읍 46개를 파괴하고 예루살렘을 포위했습니다. 히즈키야 임금이 더 많은 조공을 바치고 항복함으로써 예루살렘은 겨우 파괴를 모면하였다고 산헤립의 기록은 전합니다.

 

미카의 고향 모레셋은 산헤립의 침공 때 파괴되었을 것입니다. 미카는 자신이 목격한 끔찍한 파괴의 재앙을 유다 왕국에 닥칠 더 큰 위기에 대한 전조로 해석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의 주민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불의와 우상 숭배를 일삼습니다. 미카는 앞으로 닥칠 하느님의 무서운 심판을 경고하며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미카의 애가 “아, 애달프고 애달프다”

 

미카는 유다에 닥칠 재앙을 경고하기 위해 산헤립의 침공으로 파괴된 성읍들의 실상을 들려줍니다. 폐허가 된 열두 성읍에 바치는 미카의 애가(1,8-16 참조)에는 예언자의 깊은 슬픔이 배어 있습니다. 열두 성읍의 이름과 각 성읍에 닥친 불행을 연결한 미카의 언어유희는 번역될 수 없는 것이기에 독자 여러분을 위해 그의 말투를 조금 흉내내어 보겠습니다.

 

“아, 애달프고 애달프다. 내 백성이 무너지는 모습에 내 억장이 무너지는구나. 미아동의 아이들은 모두 미아가 되어 슬피 울며 거리를 헤매고, 오류동의 주민들은 오류에 빠진 듯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삼성동에는 세 개의 별이 떨어져 쑥대밭 같은 세상이 되었고, 가리봉동 사람들은 갈가리 흩어져 가는구나. 방배동 사람들은 저마다 방을 빼고 이주하여 동네가 텅비었고 명륜동에서는 명륜이 사라져 버렸다. 이는 모두 국회의사당을 들락거리는 이들이 민심은 무시하고 자기네 돈주머니만 신경 쓴 까닭이다. 동네마다 죄악이 넘쳐흘러 한강물을 온통 오염시키는데도 정수기만 있으면 된다고 외치는 저자들 때문에 도시가 죽어 간다. 아, 애달프고 애달프다”(이는 미카의 애가에 대한 단순한 패러디일 뿐, 실제 장소와 그 장소와 관련된 내용은 현실과 전혀 무관합니다).

 

가난한 이들의 상속 재산을 가로채는 착취자와 정치 지도자들, 다가올 재앙을 부인하며 평화를 외치는 타락한 종교 지도자와 예언자들을 미카는 차례로 비판하며 이렇게 외칩니다. “너희 때문에 시온은 갈아엎어져 밭이 되고 예루살렘은 폐허 더미가 되며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은 수풀 언덕이 되리라”(3,12).

 

이 예언이 예레미야 예언서에도 인용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예루살렘 성전 대문에 서서 회개하지 않으면 성전이 파괴되고 말 것이라고 예언하자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 합니다. 그때 지방의 원로들 가운데 몇 사람이 미카의 예언을 인용하여 예레미야를 변호합니다(예레 26,17-19 참조).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네 하느님과 함께 걸어라 불의와 우상 숭배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원인이었지만, 예루살렘은 ‘오므리의 규정과 아합 집안의 모든 행위’를 반복하면서도 그들만은 무사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카는 폭력을 일삼고 거짓을 말하며 부정한 저울로 속이는 유다의 주민을 향해 파멸의 날이 오기 시작했다고 선언합니다. 파멸의 날이 닥치면 그 어떤 노력도 아무런 결실을 거두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들은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씨앗을 뿌려도 수확하지 못하고 포도를 밟아도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6,11-16 참조).

 

미카는 그들에게 하느님의 고소장을 제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산들과 언덕들을 법정의 증인으로 초대하며 당신의 자비를 과신하는 백성을 고소하십니다. “내 백성아,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하였느냐? 내가 무엇으로 너희를 성가시게 하였느냐? 대답해 보아라”(6,3). 당신께서 이스라엘을 구원의 은총으로 이끌어 주었는데 왜 이스라엘은 그릇된 길을 걷기만 하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러자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되묻습니다. “무엇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고 무엇을 가지고 높으신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합니까? … 수천 마리 숫양이면, 만 개의 기름 강이면 주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내 죄를 벗으려면 내 맏아들을, 내 죄악을 갚으려면 이 몸의 소생을 내놓아야 합니까?”(6,6-7)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미카 예언자가 말합니다. “사람아, 무엇이 착한 일이고 주님께서 너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너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느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6,8)

 

이 말은 신앙의 수직적 차원과 수평적 차원을 모두 아우르는 것입니다. 과연 유다교의 라삐들이 613항에 이르는 유다인의 율법을 가장 훌륭하게 요약한 것으로 이 말을 여겨 온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함께 겸손하게 걷는 일은 이웃을 정의롭게 사랑하는 일과다르지 않습니다. 공정을 실천하고 신의를 사랑하는 일은 하느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함께 걷는 자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가난하고 소외받는 이웃을 멀리하거나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겸손하게 하느님과 함께 걷는 자는 새로운 하루의 첫발자국을 내딛을 때마다 먼저 하느님의 발자국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분이 이끄시는 대로 따라 걸으며, 그분이 만나게 해 주시는 모든 이를 정의와 신의로 대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경건한 이’, ‘올곧은 이’를 간절하게 찾고 계십니다(7,2 참조).

 

* 김영선 수녀는 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소속으로, 미국 보스톤 칼리지에서 구약성경을 공부하였으며 현재 가톨릭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성서와 함께, 2015년 7월호(통권 472호), 김영선 루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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