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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문화] 유다인의 장례 풍속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04-11-07 조회수3,730 추천수0

[성서의 풍습] 유다인의 장례 풍속

 

 

유다인들은 지금도 죽은 다음에 예루살렘에 있는 올리브 산에 인접한 기드론 골짜기의 경사진 지역에 가장 묻히고 싶어 한다. 유다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올리브 산에 내려와 공동묘지의 중앙의 길을 통과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간다는 믿음 때문이다.

 

이집트 왕들의 묘지인 피라미드는 모두 나일강의 서쪽에 세워졌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해가 지는 서쪽에 영원한 세계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음이란 영혼이 몸을 떠나 새로운 영원의 세계로 가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므로 이집트인들에게는 이 세상의 삶보다 영원한 죽음 뒤의 세계가 더 중요했다. 그래서 이집트의 왕들에게 평생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자신들의 묘지인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이집트인들은 영원한 세계에서 만일 육체가 훼손되면 정신과 재결합할 수 없게 된다고 믿어 시신을 약품으로 방부 처리하여 미이라를 만들었다. 죽은 시신도 사후의 세계를 볼 수 있게 눈을 감기지 않았다.

 

그러나 유다인들은 사후 세계를 신성시하거나 죽은 사람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믿지 않았다. 인간이 죽게 되면 땅 밑에 거처하다 종말이 되면 하느님 앞에 불려 나와 심판을 받는다고 믿었다. 유다인들에게 죽음은 여기서 결코 소멸이 아니다. 육체가 현존하고, 최소한 뼈들이 아직도 현존하는 동안에 영혼은 극도의 허약한 상태에 있을 뿐이었다고 믿었다(욥 26,5 참조).

 

죽은 사람의 영혼은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도 끼칠 수 없지만 자신의 육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느낀다고 믿었다. 이런 믿음 때문에 유다인들은 세상을 떠난 이들의 시신을 소중히 다루었고, 예를 갖추어서 장례식을 치르는 일을 미덕이자 선행으로 받아들였다. 장사를 치르지 못해 들에 방치되어 공중의 새나 들짐승에게 뜯어 먹히도록 버려지는 것을 가장 큰 저주로 생각했다(1 열왕 14,11 참조).

 

유다인들은 사람이 죽게 되면 반드시 24시간 안에 장례식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신명 21,23 참조). 사람은 흙에서 왔으니 될 수 있으면 빨리 흙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창세 3,19 참조). 그래서 시신을 무덤에 안치할 때 세마포로 싸거나 나무 관을 이용한 것도 시신이 빨리 썩어서 흙으로 돌아가도록 돕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런 조기 매장 풍습에는 팔레스티나 지역이 매우 무덥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했다.

 

유다인들은 사람이 숨을 거두게 되면 임종을 지키던 아들이 직접 두 눈을 감겨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이 내세로 들어가는 길을 볼 수 있게 눈을 감기지 않고 그대로 두었던 이집트의 풍습과는 전혀 달랐다. 죽은 시신에 입을 맞추기도 하는데(창세 50,1), 이런 풍습은 지금도 중동 지역에 남아있다. 눈을 감기고 난 뒤에는 이 세상에 처음 나왔을 때처럼 시신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남김없이 물로 깨끗이 닦아주고, 냄새 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향료를 발랐다(루가 24,1).

 

그리고 유다인들은 임종시에 몇 가지 절차에 따라서 그 슬픔과 고통을 나타냈다. 먼저 가족 가운데 한 사람이 마지막 숨을 거두면 그 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입고 있는 옷을 찢었다(창세 37,34). 옷을 찢고 난 후 상을 당한 이들은 누구나 굵은 삼베로 허리를 묶고 재나 흙을 머리에 뿌렸다. 죽은 이에 대한 슬픔과 그 마음의 아픔이 극심하다는 의식적인 표현이었다. 그리고 시신 앞에서 가족이 가슴을 치면서 눈물 흘리고 곡을 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었다(창세 37,35). 이 곡소리는 상당히 컸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그 곡소리를 듣고서 초상이 있다는 것을 알기도 했다. 또한 가족이 흘리는 눈물은 작은 병에 따로 모아두었다가 시신과 함께 무덤에 안치하기도 했다(시편 56,9).

 

시신은 땅에 매장하거나 동굴을 묘지로 사용했다. 동굴 묘지는 입구 바닥에 홈을 파고 둥근 돌로 가로막아서 사람들이나 짐승들이 드나들지 못하도록 했다. 장례식은 무덤의 입구를 닫고 인봉을 한 뒤에 회칠을 하는 것으로 모두 끝났다.

 

장례식이 끝난 뒤에도 곡은 대개 30일 동안 지속되었으며 유족들은 사흘 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유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사흘이 되어서 확실한 죽음을 맞이하고 나흘째부터 시신이 부패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명절이 돌아오면 가족의 무덤을 찾아가 다시 회칠을 해서 깔끔하게 단장했다. 사랑하는 이와의 영원한 이별인 죽음은 시공을 초월해서 인간의 가장 큰 슬픔이라 할 수 있다.

 

죽음과 이별에 대해 슬퍼하고 애도하는 것은 가장 인간적인 행위이다. 비록 민족과 나라마다 관습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인간의 마음은 모두 같은 것이리라.

 

[평화신문, 2002년 11월 24일,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성서못자리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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