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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복음 묵상: 마태 28,1-20 부활과 제자의 사명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0-12-19 조회수4,457 추천수1

[정인준 신부의 복음 묵상] 마태 28,1-20 부활과 제자의 사명

 

 

마태오의 마무리

 

마태오 복음의 끝 부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던져줍니다. 다른 복음과는 다르게 부활 이전의 주님 수난과 죽음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마태오는 28장에서 주님께서 부활하신 뒤의 무덤 정황(28,1-8), 여인들과 주님의 만남(28,9-10), 경비병들의 매수(28,11-15)에 대하여 기술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세상을 향한 사명을 부여하시는(28,16-20) 장면을 소개하며 자신의 복음을 마감합니다.

 

마태오는 이 이야기에서 부활을 둘러싸고 부활을 믿는 이들과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공동체 내의 갈등도 드러내고 있습니다.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새로 일어나기 시작한 믿음의 공동체는 시작부터 강한 반대의 벽에 부딪쳐야 했습니다. 소수의 공동체는 종교지도자들의 감시와 냉대가 심했고 주님 십자가 죽음의 후유증도 남아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는 활동이 어려웠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통제와 박해로부터 자유로운, 주님과 제자들의 주 활동 무대였던 갈릴래아로 눈을 돌렸을 것입니다.

 

주님 부활의 진실과 유다인들 사이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허위선전을 해대는 세력 앞에서 미약한 믿음의 공동체는 어쩔 수 없이 주춤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마태오는 천사들과 부활 사건의 모든 것을 목격한 경비병들의 목격담까지 등장시켜 일관성 있게 주님 부활의 진실을 증명하면서도, 구약에 젖어 부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류를 지켜봐야 했습니다.

 

그래서 마태오는 제자들이 주님께서 일러주신 산으로 가서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경배하는 분위기에서도 이 상황을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28,17)라는 문구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부활의 의미를 구약으로 고착된 유다인들에게 전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고 넘어야 할 커다란 산이었을 것입니다.

 

 

부활, 너무나 인간적인

 

마태오가 전하는 부활의 현장은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입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 여인들은 주님 부활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 다시 말해 주님께서 맥없이 잡히고 무참히 매맞고 모욕을 당하고 결국 비참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일들은 그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여유마저 잃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한 경황 중에서도 여인들은 안식일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동틀 무렵에야 주님의 무덤을 찾아 나설 수 있었습니다. 마태오는 천사들의 등장을 세세하게 묘사하는데 그들은 하늘에서 내려와서 무덤의 돌을 굴리고 그 위에 앉아있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경비병들은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치기까지 합니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찾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누우셨던 곳을 보고 사실을 믿으라고 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은 흔히 하느님께서 당신을 체험하고 파견하는 사람에게 전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람마다 ‘두려움’에 대한 체험이 다 다르겠지요?

 

첫영성체를 한 뒤, 저녁마다 만과(저녁기도)를 하러 본당에 가곤 했습니다. 돌아올 때에는 캄캄한 밤이었습니다. 겁 많은 누나라도 동행하면 다행인데, 인가도 없는 외진 길가에 큰 고목 위에서 처녀귀신이 나타난다는 소문은 혼자 그곳을 지날 때마다 머리를 쭈뼛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언덕이 보이면 멀리서부터 성모송을 크게 외웁니다. 그러다가 정작 그 나무 아래를 지날 때에는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가다가 아예 나오지 않지만 신기하게도 두려움은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움에 대한 말이 떠오르면 어린 시절 그 광경이 떠오르는데 훗날 삶을 통해서 그것은 주님의 다정한 손길의 힘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활, 진실과 왜곡

 

마태오를 통한 주님 부활 사건은 흰옷을 입은 천사들의 출현으로 알려집니다. 이 모든 것을 목격한 경비병들은 두려움과 함께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보고하지만 그들은 서로 모여 의논하고, 군사들에게 많을 돈을 주면서 예수의 제자들이 주님 시체를 훔쳐갔다는 왜곡된 소문을 퍼뜨리라고 주문합니다.

 

유다인들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하나도 여기에 동조해서 스승을 넘겨준다는 조건으로 은전 30냥을 받습니다.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이야기에는 안팎으로 얽히고설킨 왜곡과 배반의 인간적인 배경이 공조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의 눈에 신흥종교 같은 그리스도교는 그들에게는 귀찮고 신경 쓰이게 하는, 그래서 그들을 아예 새싹부터 없애야 하겠기에 경비병들의 보고와는 다르게 소문을 퍼트리도록 하였는데, 그것이 당시의 대부분 유다인에게는 먹혀들어가는 ‘사건의 조작’이었고 마태오는 이 억울한 사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입니다.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은 경비병들을 예수의 부활이 거짓이라는 말을 퍼뜨릴 수 있는 좋은 수단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경비병들에게 단단히 일러둡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고 하여라”(28,13).

 

 

선교사명

 

선교가 교회의 중요한 사명임에도 사실 얼마만큼의 열정을 갖고 이 소명에 충실했는가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천주교는 문턱이 높다.”는 일반적인 평과 함께 “개인적 신앙에는 크게 비중을 두면서도 선교에는 소극적이다.”는 비판을 들어왔을 정도입니다.

 

군종신부로 임관하기 전, 저의 사목생활에 큰 영향을 준 한 얘기가 있습니다. 보병학교 졸업을 며칠 앞둔 날이었습니다. 우리의 교육을 담당했던 구대장, 중대장 그리고 연대장과 교육생 신부들이 그곳 군종신부님의 주선으로 식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음식을 나누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들 모두가 한 목소리로 해주던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교육을 담당했던 그들은 처음에 교육을 받는 신부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목사님들은 매주 수요일과 주일 예배에 참여하면서 간부들에게, 그들 표현대로라면 백 번도 넘게 “함께 교회에 가자!”고 했답니다.

 

그런데 천주교 신부들은 단 한 번도 성당에 가자고 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들 자신이 천주교 신자가 되는 데 무슨 하자가 있어서 그러는 줄 알았고, 자격지심까지도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동료인 천주교 신자들을 붙들고 이 사연을 이야기한 결과 “천주교는 다 그래! 알아서 가는 거지, 누가 억지로 잡아끄나?”라는 설명을 듣고 조금은 이해했는데, 그래도 섭섭한 마음은 가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과 나눈 이야기가 길지는 않았지만, 한편 부끄럽기도 하고 적어도 제게는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이 사건은 제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 군종신부 시절 사목하는 데 큰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전방에서

 

보병학교를 졸업하고 배치된 곳이 최전방 사단이었습니다. 천주교의 상황은 잠자는 듯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장교 신자들도 거의 없었는데, 하나둘 모이기 시작하더니 활기 넘치는 분위기로 바뀌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본당이라는 차원보다는 장교들 중심으로 개개인이 선교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또한 사병들을 위해서는 사단 신병교육대가 선교하기에 좋은 장소였습니다. 그러나 개신교와 불교에 비해서 예비기간이 짧아 세례를 주지 못하고 자대배치가 끝나고 나서야 보충교리를 더 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다행히 대대에까지 개신교와 함께 쓰는 교회 건물이 있어서 미사를 나갔다가 사병들에게 교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사병들이 적극적이고 열정적으로 미사에 많은 인원이 올 수 있도록 도와주어 일 년 뒤에는 전방과 후방의 사병들에게 합동 세례식을 거행할 수 있었는데, 그 수가 천 명이 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쉽게 세례성사를 집전한 것 같아 마음에 걸리기는 합니다. 당시 합동 세례식을 함께 집전했던 동료 사제들이 너무 많은 장교와 사병의 숫자를 보고 놀리던 말이 새삼스럽습니다. “야! 아예 호수로 물을 뿌리지 그러냐? 이러지 말고 비오는 날 기다렸다가 자동 세례를 주지!”

 

군인 신자들과 공소 신자들의 열정은 엉성한 신부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서울대교구로부터 사단 부근 천 평 정도를 성당부지로 허락받으려고 뛰어다니게 했고, 어렵게 모금을 해서 성당까지 짓게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보병학교의 교육 기간에 들었던 ‘자극적인 말’이 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제와 신자가 열정과 함께 일치할 수 있으면 어려운 어떤 여건 속에서도 놀라운 결실을 거둘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새김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생전에 교구 사제 피정을 지도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강론 중에 “왜 하느님께서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드셨는지 아느냐?”라는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러시고는 “사람이 완전했다면 틈이 없어 인간 안에 하느님께서 들어오시지 못하니까 인간을 불완전하게 만드셨다.”라고 답하셨던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오릅니다.

 

마태오 복음은 인간의 미움과 갈등, 그러면서도 초대교회의 시련, 다시 말해서 인간의 불완전함으로부터 출발했던 주님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유다인과 초대교회와의 인간적 갈등, 부족한 인간조건들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태오가 옹고집쟁이인 데다가 틈새도 없는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집필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입니다. 동포이면서도 이방인보다 더 배타적인 유다인들은 구약의 율법으로 빼곡히 차있어 종이 한 장 들어갈 틈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 사이를 헤집고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까요?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에서 현대 히브리어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은 특별히 학생 사제들을 아끼셨습니다. 수업시간에 열정을 갖고 히브리어를 가르치시면서 과외로 특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국립 박물관, 정부 기관들을 방문하고, 안식일에 회당에 데리고 가 유다인들과 함께 참여하게 하고, 심지어는 당신 집에도 저희를 초대해서 사람들과 음식을 나누며 대화의 자리도 마련하여 큰 감명을 주셨습니다.

 

학기를 마치며 우리는 감사의 표시로 작은 선물이라도 드리고 싶어 받고 싶은 것을 말씀해 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하시더니 나중에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 테이프를 받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그 음악을 듣는 것은 금지되어 있고, 종교의 자유도 없지만 그 동안 가톨릭 사제들과 지내며 예수님을 믿고 싶어졌다는 심정을 털어놓아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지금 어느 시대인데?”라고 질문하실 분들은 이스라엘의 유다인들이 사는 곳에서 한번 지내보세요. 예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의 배타적인 모습을 생각하면 마태오 복음사가는 참으로 대단한 분인 것은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겪으셨던 냉소를 마태오도 고스란히 받았을 것이지만 그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복음을 집필했던 사실을 생각해 보세요.

 

우리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성당 아랫목에서 너무도 안이하게, 그것도 작은 창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옛날 타령만 하면서 이 세상의 변화하는 징표를 읽지 못한다면 젊은이들이 떠난 미래의 빈자리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고질병은 이기적이고 소극적이며 안일무사로 세상을 향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도 우리의 소중한 선교소명을 등한시한 채 좁은 하늘만 쳐다보고 계시지는 않겠지요?

 

* 정인준 파트리치오 -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성서학을 공부하고 이스라엘 히브리 대학과 교황청 그레고리오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원주교구 총대리를 역임하고 지금은 제천 서부동성당 주임신부로 있다.

 

[경향잡지, 2010년 12월호, 정인준 파트리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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