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의 장절을 어떻게 읽나요? 먼저 갖고 계신 성서를 아무 데나 펼쳐보세요. 오른쪽과 왼쪽 꼭대기에 성서 이름과 숫자가 적혀 있죠? 한 번 옆에다 써 보세요. 또 본문의 좌우에도 큰 숫자와 작은 숫자가 쭉 써있죠? 그 중 큰 숫자가 장(Chapter)이고 작은 숫자가 절(Verse)입니다. 성서는 원래 장절의 구분없이 붙어 있어요. 그래서 읽고 공부하기가 너무 불편해서 13세기에 스테판 랭톤 대주교가 장을 가르고, 16세기에 로베르 스테파 뉘에티엔느라는 프랑스 인쇄인이 신약 성서의 절을 구분하였답니다. 이렇게 구분해 놓으니 보기도 좋고 찾아보기도 쉽죠? 하지만 장절은 성서를 읽고 배우는 데 필요한 하나의 도구이지, 그것에 따라 성서 내용이 구분되지 않음을 아셔야 해요. 성서 본문의 중간에 들어 있는소제목도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성서 번역자가 만들어 넣은 것이구요. 성서의 장절을 적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널리쓰여요. 가령 루가 복음 1장 5절을 줄여 루가 1;5라고 적거나, 또는 그 구절을 루가 1,5로 표시해요. 어느 방식을 적든상관없지만, 사막의 성서 공부에서는 세계적으로 더 널리 쓰이는 두 번째 방식을 사용하겠어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릴께요. 창세 1,1-2, 4는 창세기 1장 1절부터 2장 4절까지를 가리켜요. 또 출애 3,4.8은 출애굽기 3장
4절과 8절을 나타내요. 마태 5,5; 요한 2,7은 마태오 복음 5장 5절과 요한 복음 2장 7절을 함께 가리켜요. 성서 이름은 이름 전체에서 앞의 두 글자만 따서 줄여 부르는 거구요.
성서는 하느님이 보내시는 ‘사랑의 편지’랍니다. 이제 성서구절을 읽어보도록 해요. 공동번역 성서 1485쪽에 있는 호세아서 2장 16절을 읽고 써 보세요. 하느님께서 우리를 꾀어 빈들로 데리고 나가신다는 거에요. 빈들은 거칠고 황폐한 광야를 말하지요. 무섭고 외롭고 걱정되고 속상하고 힘든 우리 삶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지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거기서 하느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고백하시겠다는거에요. 힘들고 고된 처지에 있을 때 사랑하는 이가 던져준 말이 얼마나 큰 힘과 위안을 주는지는 잘 알고 계시죠? 하느님은 세상에서 힘들어 하는 당신의 사람들을 사랑하시기에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일러 주셔요.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계속 당신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시면서 그 길로 나설 것을 촉구하셔요. 이렇게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속삭여 주신 사랑타령이 바로 ‘성서’에 담겨 있어요. 남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사랑하는 이들끼리는 짧은 몇 마디 말이나 글도 깊은 뜻을 담고 있지요. 어디 말뿐인가요? 하나의 몸짓이나 표정, 침묵까지도 그렇지요. 성서를 하나의 문학작품이나 고전 또는 경전으로만 보는 이들도 많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무엇보다도 성서에서 님이 건네시는 사랑의 표현을 느낄 수 있답니다. 때로는 전혀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성서에서 깊이 헤아릴 수 있답니다.
<새김과 나눔> 사랑의 표현은 누구에게나 힘과 기쁨을 줍니다. 내가 누군가의 사랑을 느낀 경우는 언제였나요? 또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 적은 언제였나요?
성서는 하느님이 누군지를 알려준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주 만나 서로를 알고 싶어하죠. 그런데 가장 가까운 사람인 부모-자식 간이나 부부 간에도 서로를
바로 안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어떨 때는 내가 저 사람을 알고 있는가 할 정도죠. 한 사람을 이해하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하느님을 어떻게알 수 있겠어요? 그분은 우리와 너무 다른 존재이고 그분의 생각과 길은 우리 인간의 것과 전혀 같지 않은데 말이죠.(이사 55,8을 참고하세요. 장절을 읽는 방식은 지난 주에 나와 있어요.) 그런데 넘을 수 없는 그 간격을 뛰어넘어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당신에 대해 알려 주셨어요(이것을 계시라고 해요). 그분은 사랑을 표현하는 다양한 길을 통해 인간에게 당신이 어떤 분인지 깨닫게 해주신 것이죠. 역사를 통해 하느님께 불림받아 그분을 사랑하게 된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들려주신 사랑의 말씀과 자기들의 고백과 증언을 간직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었어요. 그렇기에 성서를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죠. 성서는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계시요, 그분께 대한 증언이랍니다. 그래서 성서에서 우리가 먼저 만나고 알아야 할 분은 하느님 바로 그분입니다. 하느님을 바로 알아야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잖아요. 거꾸로 그분을 알려면 그분의 말씀인 성서를 읽어야 하지 않겠어요?
성서는 생명의 계약이랍니다. 세상에 부부싸움 한 번 안 한 부부가 있을까요? 있을 수야 있지만 서로에게 끝없이 성실하고 충실하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사회에서 두 당사자가 서로의 의무와 권리를 정리하여 약속한 ‘계약’이 깨지는 경우가 얼마나 잦습니까! 하느님과 그분이 택한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랬답니다. 그런데 하느님과 사람 사이에서 항상 말썽을 일으키고 일방적으로 계약을 깨뜨리는 쪽은 언제나 사람이었어요. 다시 돌아오라고 애타게 호소하시며 품을 열어놓은 쪽은 늘 하느님이셨구요. 인간의 심정 같아서는 진작 때려치우고 정리했을 관계를 하느님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약을 지키셨답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무엇을 주시려고 그토록 인간을 사랑하시면서 붙들어 주셨을까요? 요한복음 10장 10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보세요. 그분은 충만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하셔요. 우리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그 생명을 얻으려면, 우선 그분의 말씀부터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성서는 체험으로 이어온전승문학입니다. 집안에서 옛 어른에 대해 알아보려면, 족보와 함께 그분에 관한 글을 읽거나 아니면 집안어른들께 그분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방안이 있어요. 이와 같이 하느님의 백성들도 하느님에 관해 자기들이 듣고 본 체험을 글과 말로 전해주었답니다. 말과 글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과 그 체험을 표현하는 게 어디 쉬웠겠어요? 게다가 천년 이상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쌓인 이야기도 많고, 글로 적은 사람이나 이 글들을 엮은 이(편집자)도 한둘이 아니었어요. 그런 탓으로 겹치거나 일치하여 하느님을 증언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서가 성령의 영감으로 이루어졌다고 가르칩니다. 물론 그렇지만 인간의 말과 글을 통해서 표현되었죠. 그렇기에 성서에 쓰여진 그에 대해서도 잘 알아보아야 한답니다.
<새김과 나눔> 우리는 하느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나요? 어떻게 해서 그렇게알게 되었나요? 내가 꼭 지키려고 애쓰는 가장 귀한 계약은 무엇인가요?
읽기보다 들으려고 애쓰세요 성서는책이라기보다 살아계신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책으로 읽으려고 하기보다 지금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을 들으려고 해보세요. 읽을 때는 내 눈과 머리에 온 신경을 쏟지만, 들으려고 할 때는 말씀하시는 분에게 온 신경을 쏟게 되지요. 성서를 읽다가 감동을 느끼는 구절에서는 머물러 귀를 기울이세요.
기도하시며 읽으세요 하느님께서 일러주신 말씀이 성서이기 때문에 성서를 이해하려면 그분께서 친히 깨우쳐 주셔야 해요. 그래서 성서를
읽을 때는 하느님의 영인 성령께서 우리를 비추어 주시고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는 게 필요하지요. 성서를 펼치기 전과 읽는 도중에 성호경이나 화살기도를 자주 드리세요. 성서 안에 있는 신앙의 보배를 바로 찾을 수 있게 말이죠.
매일 꾸준히 읽으세요 성서는 신앙인의 생명의 양식 또는 일용할 양식입니다. 매일 음식을 먹어야 건강할 수 있듯이, 매일 꾸준히 성서를 읽는 일이 중요해요. 매일 독서와 복음을 읽든지,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성서 전체를 읽어 보세요. 할 수 있다면 일년에 한 번 성서 전체를 완독하면 참 좋아요. 다시 읽을 때에는 다른 번역 성서와 비교하여 보시면 성서 구절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부분보다 전체를 보세요 성서는 각 권마다 고유한 특성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일관된흐름이 있어요. 그래서 전체적인 맥락 안에서 각 권이나 구절이 가지는 의미를 이해하는 게 필요해요. 어느 한 구절만 떼어 보면 엉뚱한 뜻으로 이해할 수 있거든요.
누가 누구를 위해 왜 썼는지 알아 보세요 성서 전체는 하느님에 관해 증언하지만, 저자에 따라 증언하는 방식이 달라요. 저자가 어떤 사람이며 어느 독자를 향해 썼는지, 왜 쓰게되었는지를 궁리 해 보세요. 또 저자가 택한 문학의 틀(시, 묵시, 서간, 행전 등등)과 그 시대상황 따위에 대해 폭넓게 알면, 성서의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뜻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답니다.
공동체의 눈으로 살피세요 성서는 개인 묵상서가 아닙니다. 하느님 백성 공동체에 속한 이들이 공동체 전체를 위해 기록하고 간직하며 지켜온 교회 공동체의 책이지요. 그러므로 기록되지 않은 하느님의 말씀(성전)과 교회의 가르침을 성서와 연결시켜 보는 것이
필요해요. 성서 말씀이 교회의 전례나 교리에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살펴보시고요.
말씀을 실천하면서 고백하세요 아무리 훌륭한 의사의 처방이라도 그대로 하지 않으면 병을 고칠 수 없듯, 아무리 훌륭한 말씀을 많이 듣고 알고 외운다
하더라도 실천하지 않으면 삶을 변화시킬 수는 없어요. 말씀을 좇아 그대로 살 때에 말씀이 살아있음과 참됨을 체험하고 ‘과연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하게 된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성서를 새로 보고 새로 쓰는 일이 되지요. 이렇게 성서는 삶에서 늘 거듭나야 한답니다. 시편 119장과 히브 4,1-13을 읽어보세요.
<새김과 나눔> 나는 왜 성서를 읽고 공부하려고 하나요? 나는 이제까지 어떤 자세로 성서공부를 대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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