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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과 경제41: 착한 사마리아인과 윤리적 소비 (2)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2-04-28 조회수2,446 추천수0
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41) 착한 사마리아인과 윤리적 소비 (2)

지역 환경과 경제 살리는 ‘공정여행’


생태계를 고려하지 않은 사람들의 무분별한 경제활동으로 인해 초래된 기후변화를 비롯한 범지구적인 환경위기는 이제 막다른 길로 치닫는 지경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당장 먹고 살기 힘든데’, ‘내가 먼저 죽을 판인데’라는 미래 세대를 담보한 경제적 논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당장 눈앞의 편리와 이익을 위해서 지구환경을 위험에 몰아넣는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성찰과 반성에서 비롯된 ‘로하스’라는 윤리적 소비활동은 개인적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동체와 지구 생태계까지 보존하는 운동으로 이어져 선진국에서는 농산물은 물론이고 공산품의 생산양식까지 바꿔놓을 정도로 의미있는 생활방식으로 뿌리를 내려가고 있습니다. 로하스로 대변되는 윤리적 소비활동은 화석에너지에 의존해온 기존의 경제개발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는 개념조차 모호한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 삶이 자기 주변을 돌아보기 힘들 정도로 각박하고 힘들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도 보았듯이 조그만 의식 변화와 의식적인 실천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건전한 문화를 위한 윤리적 소비

먹고사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선진 사회에 근접한 나라일수록 삶의 양식이나 질 문제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선진화된 나라일수록, 특히나 경제적으로 풍족한 국가일수록 건전한 문화를 향유하기 위한 모색과 노력을 다채롭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공정(착한)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임여행이라고도 하는 공정여행은, 여행을 할 때 지역 경제에 별 보탬이 되지 않으면서 자연환경에 악영향을 미치는 관광산업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어떻게 하면 현지 주민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공정여행은 여행자들이 대형 리조트나 호텔 체인 대신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박업소와 식당을 이용하고, 현지인 가이드의 안내를 받는 등 여행하는 곳 현지의 원주민과 문화를 배려하는 여행 소비 형태를 말합니다. 대형 숙박시설이나 여행사들의 대부분은 그 지역과 별로 상관이 없는 대기업들이 투자해 수익의 대부분이 지역 바깥으로 빠져나가 지역경제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머물지 않고 공정여행은 여행지의 문화와 생활을 체험하고, 여행 중에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등의 의식적인 활동을 통해 여행지의 환경을 온전히 보존함으로써 여행을 단순히 주어진 여가를 개인적으로 소비하고 즐기는 방편에 그치지 않고 함께 나누는 건전한 문화로 승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성경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견하시는 장면은 여행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면이 적지 않습니다. 『둘씩 짝지어 파견하기 시작하셨다. 그러면서 길을 떠날 때에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빵도 여행 보따리도 전대에 돈도 가져가지 말라고 명령하시고, 신발은 신되 옷도 두 벌은 껴입지 말라고 이르셨다.』(마르 6, 7-9)

현대인들은 소유를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많이 가질수록 강해진다는 과시욕을 갖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청빈과 복음 선포자의 자세를 일치시키는 말씀이지만, 모든 이가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이 말씀은 지상의 순례자인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반성하도록 일깨우고 있습니다. 물질을 따라, 물질에 얽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에 기대 살아야 함을 보여줍니다.

여행은 사랑이신 주님의 본질을 깨달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만드신 더 큰 세상과 만나고, 그 세상 속에 깃든 하느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은총인 것입니다. 공정여행은 세상을 순례하는 처지인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여행자가 주님의 사랑을 나누고 실천할 수 있는 보배로운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4월 29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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