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교회법 해설 (15)
이혼하고 재혼한 사람이 교회법원에서 무효불가판정을 받으면 신앙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 것입니까?
위와 비슷한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먼저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교회법은 영혼의 구원을 위해 존재하고 봉사하기에 그런 상황에 놓인 교우분들이라도 신앙생활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우선 천주교 신자끼리, 혹은 천주교 신자와 비신자(혹은 타교파 신자)와의 혼인을 합법적으로 교회에서 하고 결혼생활을 하시다가, 민법상으로 정식 이혼이 선고된 분들만이 교회법원에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법원에서는 이러한 소송이 제기되면 정식 재판에 회부할 것인지 아니면 서류심사를 통해 해결할 것인지 결정하여 소송을 진행하게 됩니다.
대부분 소송 당사자가 잘 협조하고 적극적으로 재판진행에 참여하시게 되면 2심 상소법원의 판결까지 6개월이면 소송은 마무리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법원에서는 가능한 신자들의 신앙생활의 회복을 위해 무효판결이 나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물론 교회법원은 교회의 법을 준수하여야 할 의무가 있고, 교회의 성사가 제대로 집행되는지 감시 감독할 책임도 있습니다만, 이 역시 영혼의 구원이라는 대전제를 고려한 다음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95% 이상의 소송당사자들이 혼인무효판결을 받고 새로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비신자끼리 민법상 결혼해 살다가 민법상 이혼하고 새로운 배우자를 만나 재혼한 후에 세례를 받으려고 한다든지, 혹은 이혼 후 혼자 있는 상태에서 세례를 받고 재혼하려고 할 때는, 본당 신부는 당사자에게 ‘바오로특전’을 적용하여 세례를 주고 혼인식을 하여 이전의 혼인유대를 풀고 새로운 혼인을 유효하고 합법적으로 만들어 주게 됩니다. 그런 경우라면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대개의 본당 신부님들도 착각하는 문제는 여기에 있습니다. 비신자끼리의 민법상 혼인도 교회는 ‘자연혼’이라고 하여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마치 아담과 하와가 세례받지 않고 부부로 산 것처럼 말입니다. 이들이 교회와 관련이 없을 때는 괜찮지만, 교회에 들어오기를 바란다면 교회의 법을 따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비신자끼리 살다가 이혼한 남자가 자신은 세례받기를 거부하면서 신자 여성과 재혼하기를 원한다면, 그 남자는 법원에 오셔서 ‘자연혼’의 유대를 풀어야만 신자 여성과 재혼할 수 있습니다. 만 일 이 절차를 밟지 않고 그냥 교회에서 혼배를 한다면 불법이고 무효한 성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남자가 이전 혼인에 대한 ‘자연혼’의 유대를 풀기 위해 세례를 받기를 원한다면 아무런 문제없이 본당 신부는 그 남자에게 ‘바오로특전’을 적용하여 세례를 주고 혼배를 하면 됩니다.
위의 경우이든 다른 경우이든 교회법원에 이전 혼인에 대한 무효소송을 했는데 법원으로부터 무효불가판정을 받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1980년 로마에서 개최된 주교대의원회의 제5차 일반회합에서는 이혼 후 재혼한 사람들이 적어도 법적으로는 해결책이 없다는 판단이서도, 교회는 이혼자들이 교회법정에서 무효를 증명할 수는 없지만 양심에 따라 이유있는 확신에 도달한 사람들의 경우와, 부부신의를 지키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버림받은 배우자의 경우를 생각해서 그들이 교회의 생명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습니다. 특 히 연로하신 분들을 위한 사목적 배려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엄격한 기준을 지키면서 내적 법정을 통하여 신앙생활의 가능성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원으로 문의해 주십시오.
[2012년 5월 6일 부활 제5주일(생명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2면, 김진화 마태오 신부(봉동 성당 주임겸 교구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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