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63) 그레이스톤 베이커리
‘직원을 고용하기 위해 빵을 만든다’
미국형 사회적 기업들은 물질주의가 넘실대는 현대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정의가 샘솟는 하느님 나라를 세상에 세우고 있습니다.
주로 사회적 혜택, 환경보호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미국과 캐나다의 사회적 기업 연대체인 ‘사회적 기업연합’(The Social Enterprise Alliance, SEA)은 사회적 기업을 위한 교육과 정보 교류를 담당하며, 매년 비영리단체(NPO), 공정 거래(fair trade), 디지털 통합(digital inclusion), 마이크로 파이낸스(micro-finance) 등을 포함한 사회적 기업 리더들의 총회인 사회적 기업 정상회의(Social Enterprise Summit)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르러 사회적 기업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우리로서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표적인 사회적 기업으로는 잘 알려진 로버츠 기업개발기금(the Roberts Enterprise Development Fund)을 비롯해 그레이스톤 베이커리(Greyston Bakery), 뉴욕에서 유명한 ‘집짓는 사람들’, 캘리포니아에서 알려진 루비콘 프로그램(Rubicon Programs), 캐나다 온타리오의 키즈링크(Kidlinks), 커뮤니티 부자 벤처(Community Wealth Ventures), 장거리 전화 통신 회사인 워킹 에셋(Working Assets) 등이 있습니다.
이 가운데 ‘우리는 브라우니를 만들기 위해 직원을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원을 고용하기 위해 브라우니를 만든다’는 경영철학으로 유명한 그레이스톤 베이커리는 많은 배울 점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레이스톤 베이커리는 저명한 학자의 길을 걷다가 스님이 된 버나드 글래스맨(Bernard Glassman)이 1982년 뉴욕주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인 용커스의 가장 가난한 지역 중 한 곳의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문을 연 가게였습니다. 현재 이곳에서 근무하고 있는 100여 명의 종업원 대부분은 실업자였거나 노숙자들이었고, 심지어 약물중독에 시달린 경험이 있거나, 한 번쯤은 감옥에 다녀온 전과자들도 적지 않습니다. 글래스맨 스님은 이들에게 건전하고 가치있는 삶을 되찾아주기 위해 사업을 펼쳤던 것입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명상으로 시작하는 규칙적 제빵 작업 스케줄, 마약을 끊어야만 기거할 수 있는 무료 아파트, 젊은 엄마들이 일터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료 유아원 등을 세워 절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선사한 것입니다.
영리회사인 베이커리와 함께 활동하는 비영리재단인 그레이스톤 재단은 매년 2200여 명의 회원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칩니다. 재단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직업을 주고, 직업훈련을 시키고, 저소득자들을 위한 집이나 아파트 제공, 어린이 돌보기, 학교 방과후 프로그램, 에이즈(후천성 면역결핍증)를 일으키는 HIV 바이러스를 가진 사람들의 건강 돌보기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을 도움으로써 지역사회 발전과 동시에 인간의 잠재력을 향상시키는데 일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저력이 바탕이 되어 소매상급 제과점으로 시작된 그레이스톤 베이커리는 오늘날 350만 달러 이상의 연매출을 올리고 있을 뿐 아니라, 백악관에도 그레이스톤에서 만들어진 쿠키가 배달되는 등 저변이 확대되어 든든한 뿌리를 내려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모습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그리스도의 향기로 채워나가고 있다는 선명한 증명입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10월 14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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