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해설 17] “성령으로 나시고” - 성령과 마리아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는데”(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경) 내려오는(강생) 방식은 기묘하고도 극히 평범하였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기묘한 반면에 우리가 태어나는 방식과 같기 때문에 평범한 것이다. 예수님은 순박한 처녀의 몸에서 평범한 방식으로 태어나셨다. 이처럼 하느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시고 우리 곁에 와 계시는 방식이 언제나 너무나 조용하고 평범하다. 그래서 우리가 하느님의 현존이나 방문을 쉽게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평범과 단순함 속에서 숨어계시듯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찾아내는 예리한 신앙의 눈이 필요하다. ‘성령으로 인하여 나시다’는 말은 예수 탄생이 하느님의 주도권에 의해 신비로운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또 그 원인이 인간들의 육체적 결합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뜻이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루카 1,32)의 탄생에 대해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1,35)고 전하였다. 성령은 ‘하느님의 힘’이시다. ‘내려온다’는 표현은 “한 처음에 어둠이 심연을 덮고 하느님의 영이 그 물 위를 감돌고 있었다”(창세 1,1)는 구절을 연상시킨다. 성령께서 어둠의 심연을 감돌다가 내려오자 창조가 시작되었다. 성령은 창조의 힘이고 원리이시다. “높은 데에서 오는 힘”(루카 24,48)을 기다리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모인 사도들 위에 “하늘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왔듯이”(사도 2,1) 성령은 동정녀 위에 강림하셨다. 이로써 새 창조 시대의 막이 올랐다. 구원을 위한 성령의 활동이 세상 안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성령으로 인하여 태어난 아드님을 통하여 성령은 창조와 구원의 힘으로서 활동을 개시하셨다. 성령은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시므로 하느님 아드님을 동정녀 몸에서 태어나게 하는 생명의 원리이시다. 성령은 ‘위에서 오는 힘’이므로 위로부터의 탄생 곧 ‘영적 탄생’을 위한 원리이다.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성령은 마리아를 향해 내려와 온전히 감싸셨다. ‘덮다’는 표현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렀던 장면을 묘사한 구약성서 구절들(탈출 40,34-35)과 관련된다. 거룩한 장막 안에는 ‘계약 궤’가 들어있었는데, 이 궤 안에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체결된 계약을 기념하기 위하여 새 십계명판을 비롯하여 계약의 선물들이 들어있었다. 계약 궤가 들어있는 성막은 순례하는 백성들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지속적으로 드러내는 표징이었다. “구름이 만남의 천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찼다”(40,34). 구름은 성막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현존을 알리고 가리키는 표징이면서 동시에 성령의 상징이다. 성막 위에 구름이 그늘을 드리우는 현상은 하느님의 영광이 성막 위에 나타났고 따라서 하느님이 당신 현존을 드러냄을 가리킨다.
마리아의 온 존재가 ‘높으신 분의 힘’에 감싸임으로써 하느님에 의하여 거룩해져 외아드님을 맞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위에서 오는 힘’ 성령은 마리아를 ‘새 계약 궤’가 되게 하셨다. 이제 마리아를 방편으로 삼아 성자를 통해 하느님은 인간과 새 계약을 체결할 채비를 갖추셨다. 하느님은 죄에 물들지 아니한 순결한 “흙의 먼지”(창세 2,7)에서 첫 인간의 형상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 곧 성령을 불어넣어 생명체가 태어나게 하셨다.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성령으로 하여금 마리아를 온전히 덮게 하셔서 생명을 낳을 수 있게 하셨다. 그녀는 성령에 감싸인 덕분에 ‘새 계약 궤’이며 ‘새 아담’의 출생지 ‘거룩한 땅’이 되었다.
[2008년 8월 31일 연중 제22주일 가톨릭마산 8면, 최영철 알폰소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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