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 해설 3] “법”은 “원칙”을 제공한다
도시의 어느 큰 길 사거리에서, 지하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험하게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특히 어린 아이를 대동한 젊은 어머니가 많았습니다. 작은 아이 걸음으로 긴 지하도를 내려갔다 올라오는 것은 성가신 일이니, 주위를 잘 살피고 아이 손을 꼭 잡고 건너면 안전하려니 생각들을 했겠지요.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아이가 조금 크게 되면 혼자서도 쉽게 무단횡단을 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그 아이를 데리고 그렇게 했고, 알게 모르게 자녀에게 ‘그렇게 건너도 된다’라고 가르친 셈입니다. 아이는 좌우 눈치 살피고 무단 횡단하는 것이 ‘괜찮은 것’이라 여기고, 무엇보다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원칙’이 잘 무시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원칙보다는 요령이, 정도보다는 편법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정해진 것을 그대로 따르면 오히려 바보가 되고, 이래저래 머리를 굴려서 잘 피해나가면 더 똑똑하고 유능한 사람대접을 받습니다. 정치계, 경제계, 종교계, 교육계 어디든 마찬가지입니다. 어른들의 그러한 사고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세상은 절대로 자기에게만 불리하지 않으며 자기가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대로 된다는 것은 ‘창조주’께서 만들어 놓으신 자연법칙이고 삶의 ‘원칙’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 삶의 원칙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기 위해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분께서는 말과 행위로 솔선수범하심으로 우리를 가르치셨습니다. 나만을 위하여 사는 것은 삶을 편법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선은 이익이 있어 보이나 결코 우리 삶과 조화로울 수 없는 방법이며, 우리 삶을 위험하게 만듭니다.
사랑하고 감사하며 사는 원칙 속에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들의 삶은 ‘삶다운 삶’이 될 수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창설자이신 하느님께 항상 충성하면서, 교회에 맡겨진 구원의 사명을 잘 수행하도록 세기를 통하여 거룩한 규율법들을 개혁하고 쇄신하여 왔으며, 이와 같은 목적에서 전 세계 가톨릭교회가 고대하는 바를 완성하여 교회법전을 공포한다.”(교황령 “거룩한 규율법”의 첫머리.)
[2009년 12월 20일 대림 제4주일 가톨릭마산 11면,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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