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 해설 22] 개별교회(368조)
“하나이고 유일한 가톨릭 교회는 개별교회들 안에 또 그것들에서 존립한다. 개별교회들은 주로 교구들이고, 또 달리 확인되지 아니하는 한 성직 자치구와 자치 수도원구 및 대목구와 지목구 그리고 고정적으로 설립된 직할 서리구도 교구에 준한다.” - 368조.
20세기 사회의 변모와 그 충격, 특히 제1, 2차 세계대전을 겪는 과정에서 교회는 자기 스스로를 쇄신할 필요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대중의 신앙이 약화되고 기계문명의 건설과 물질추구에 혈안이 된 세상 앞에서, 동떨어진 자리에서 나열하는 추상적인 교회의 목소리는 세상에 깊은 영향을 주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각 나라들의 정교분리 정책 등이 더하여져서 어느 순간 교회는 세상과 너무 유리된 처지에 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교회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다시 던지게 되었고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교회의 원천에로 돌아가서 찾으려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신격과 인격을 동시에 가지고 계신 것처럼, 교회도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의 ‘영성생활의 공동체’임과 동시에 또한 ‘교계적으로 조직된 공동체’로서 가시적이요 사회적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세상과 일상의 생활 안에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평신도’들의 특별하고도 중요한 고유사명도 재인식하게 됩니다. 성직자와 신자를 분리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교회관을 극복하여 “친교의 원천이자 친교의 학교로서의 교회(교서 ‘새 천년기’)”가 올바로 실현되고, 그렇게 교회 내에서의 하느님과 백성, 백성과 백성 사이의 친교가 이루어질 때 또한 세상과의 친교로 나아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 그리고 인간을 알고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친교’요 ‘복음을 살아가는 것’이며, 그렇게 세상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바로 ‘복음화’이고 교회의 참된 사명입니다. 복음화란 머리에 물 붓고 그리스도교 신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하느님과 이웃과 ‘친교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실질적 관계의 친교가 구현되는 구체적 교회 ‘단위’가 바로 ‘개별교회’입니다. 개별교회는 보편교회(세계교회)의 하급 행정 단위가 아니라, 이 개별교회들 안에서 그리고 이 개별교회들로서 유일하고 단일한 가톨릭 교회가 성립됩니다. 그리고 이 개별교회의 기준이 바로 ‘교구’(또는 그에 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인 신앙생활이나 본당 공동체 안에서의 친교 뿐 아니라 교구 차원에서의 친교도 이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그러한 사랑의 친교가 우리 주변 세상으로 스며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2010년 6월 20일 연중 제12주일(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가톨릭마산 11면, 김정훈 도미니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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