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기 쉬운 교리상식] 성월(聖月)
어린 시절 나의 하루일과는 부모님과 함께 바치는 조과(아침기도)로 시작되었고, 기도가 끝나면 자동으로 아버지께서 불을 지펴 놓으신 쇠죽(소여물 익힌 것) 가마솥 부엌으로 가서 나와 동갑인 소를 챙기고 아침 먹고 학교로 갔었다. 가마솥에 김이 나기 시작하면 쇠죽을 한번 뒤집는데, 용케도 할아버지께서는 그 시간을 놓치지 않으신다. “별아, 담뱃불 좀 붙여 오너라.” 하시면서 담배를 다져 넣은 장죽을 건네주신다. 콜록거리면서 장죽에 불을 붙여 드리면 할아버지께선 맛있게 한 대를 피우시고 또 한 말씀하신다. “들어오너라. 성월하자.” 성월기도 함께 바치자는 초대(?)의 말씀이다. 요즈음은 성월기도가 짧지만 예전에는 매일 바치는 기도내용에 변화가 있었고 시간도 제법 걸렸었다. 그땐 지루했는지 어땠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성월기도는 나와 할아버지를 이어주는 아련한 추억속의 한 부분이다.
교회는 1년 중 어느 특정한 달을 정하여 예수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 성인께 봉헌하여 기도하거나 전구와 은혜를 청하며 신자들이 모범을 따르도록 권고하고 있다. 대부분의 성월은 주로 그 달의 축일과 연관되어 있고, 한 달 동안 특별한 지향을 갖고 기도하며 성월에 맞는 적절한 신심행사를 거행한다.
성요셉 성월 - 3월
성요셉 성월은 성요셉 대축일(3월 19일)이 들어 있는 3월에 지낸다. 이 달에는 성모마리아의 배필이며 예수님의 양부(養父)인 성요셉을 특별히 공경한다. 성요셉은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믿음으로 성모 마리아를 보호했을 뿐만 아니라, 성가정의 가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요셉성인에 대한 공경은 마리아공경에 비해 상대적으로 늦은 감은 있지만, 1479년에 교황 식스토 4세에 의해 성요셉 대축일로 공식 인가되었다. 1870년에 교황 비오 9세는 성요셉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성모 성월 - 5월
성모 성월은 동방교회에서 먼저 지내기 시작했다. 11세기에 이집트의 곱트교회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하여 12월 10일부터 다음달 8일까지 30일간을 성모 성월로 지냈다. 비잔틴전례는 13세기부터 8월 15일을 성모님의 안식일로 정하여 이전 15일을 단식하며 지냈고 이후 15일을 축제기간으로 하여 성모 성월을 지냈다. 13세기 말부터 서방교회에서 성모님의 축제를 5월에 지내는 지역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점차 5월로 고정되어 오늘에까지 이른다.
예수 성심 성월 - 6월
예수 성심 성월은 예수 성심 대축일이 있는 6월에 지낸다. 예수 성심 대축일은 성체와 성혈 대축일 다음에 오는 금요일에 지내게 되는데, 부활시기가 늦어지면 가끔 7월에 대축일이 오기도 한다. 그래도 예수 성심 성월은 6월에 그대로 지낸다. 우리 신자들은 이 성월기간 동안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한없는 사랑에 대하여 묵상하며 기도와 희생과 보속으로 그 사랑에 보답할 것을 다짐한다.
순교자 성월 - 9월
한국교회는 해마다 9월을 순교자 성월로 지내면서, 신자들이 목숨을 바쳐 신앙을 지킨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삶을 본받도록 이끌고 있다. 순교자 성월은 1925년에 로마에서 거행된 ‘조선 순교자 79위 시복식’이 그 계기가 되었다. 한국교회는 그 이듬해부터 순교자가 가장 많았던 9월 26일을 ‘한국 치명 복자 79위 첨례(축일)’로 지내기 시작했다. 우리 교회가 공식적으로 ‘복자성월’로 선포하지는 않았지만, 시복 이후로 복자들을 현양하고 공경하는 신심이 확산되면서 자연스럽게 9월을 복자성월로 지내게 되었다. 1984년 5월 6일에 복자들이 성인품에 오름에 따라 그 명칭을 한국 순교자 성월로 바꾸었다.
묵주기도 성월 - 10월
묵주기도 성월은 10월 7일의 ‘묵주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과 연관되어 있다. 10월 7일이 이 기념일로 정해진 것은 1571년의 한 사건에 의해서이다. 그해 그리스도교 연합함대는 터키군과의 일전을 앞두고 있었고, 당시 교황 비오 5세는 성모 마리아께 도움을 청하면서 신자들과 병사들에게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권장했다. 그해 10월 7일에 그리스도교 연합함대는 레반트 해전에서 터키함대를 격퇴시켰다. 다음 교황인 그레고리오 13세는 성모님의 도움을 오래도록 기념하기 위하여 묵주기도 축일을 제정했으며, 그 후 비오 9세와 레오 13세 교황은 묵주기도에 대한 회칙을 내고 10월을 묵주기도의 달로 정하여 성모 신심을 격려했다. 묵주기도 성월은 우리로 하여금 묵주기도를 통하여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고, 그 신비를 살도록 하느님께 전구해 주시는 성모님을 기념하며 성모님께 감사드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위령 성월 - 11월
가톨릭교회는 세례를 받아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모든 신자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누리시는 일치 안에서 서로 사랑의 친교를 이루기 때문에 살아있는 이들이 죽은 이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으며 이 기도가 죽은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가르쳐 왔다. 위령 성월은 위령의 날(11월 2일)과 연관되어 있다. 교회는 11월 1일에 모든 성인의 날 축일을 지내고 그 이튿날을 위령의 날로 지내면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기억하고 기도하기를 권장해 왔다. 그리고 11월 한 달을 위령 성월로 정하여 우리 신자들이 세상을 떠난 조상들과 형제, 친지, 은인들, 특별히 연옥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권장한다. 또한 이 시기는 살아있는 우리들이 죽음에 대하여 묵상하여 이 세상의 삶을 하느님의 뜻에 더욱 일치하여 살기를 다짐하는 때이기도 하다.
[월간빛, 2012년 10월호, 하창호 가브리엘 신부(매호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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