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70) 다양한 가치 담은 사회적 기업
지역사회에 ‘하느님 사랑’ 전하는 통로
성경을 보면 예수님 곁에는 늘 온갖 병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비롯해 갖가지 신체적 어려움을 지닌 장애인, 노인, 세리, 여인, 어린이 등 가난한 이들이나 소외된 이들이 함께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치유되고 기쁨을 얻을 뿐 아니라, 때로는 주님과의 더욱 깊은 친교를 통해 그분을 닮아가고 성실한 제자로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는 우리 일상에 깊이 다가온 다양한 모습의 사회적 기업의 나눔과 도움은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희망과 재생의 길이 된다는 측면에서 예수님 사랑의 정신을 구현하는 아름다운 본보기일 것입니다.
일할 수 있는 능력과 뜻을 지니고 있음에도 일을 할 수 없었던 장애인이나 가난한 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는 위캔(wecan)센터와 같은 ‘일자리 제공형’ 사회적 기업에 비해 근래에 와서는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는 사회적 기업들이 생겨나면서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대전지역 사회적 기업으로는 최초로 대통령상까지 받은 ‘대전 민들레 의료생협’은 지역사회에 보건의료라는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며, 사회적 기업의 새로운 모범을 창출해나가고 있어 눈길을 끕니다. 민들레 의료생협은 지역주민들이 공동으로 출자해 병원을 만들고 공동으로 소유·운영하는 의료공동체인데, 수익에 얽매이지 않는 의료시스템 덕분에 가난한 이들도 돈 걱정 없이 인간다운 대우를 받으며 의료서비스를 받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지역사회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전하는 좋은 통로입니다. 이 때문에 지난 2002년 300명의 조합원이 뜻을 모아 문을 연 민들레 의료생협은 이제 2800여 명의 조합원이 함께하는 협동조합으로 성장했습니다.
최근에는 활동영역을 넓혀 대전 서구 둔산동에 내과와 한의원, 치과 등을 갖춘 두 번째 병원도 마련하는 등 성숙한 사랑을 기반으로 커가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감동적입니다. 이렇게 민들레 의료생협처럼 지역주민들에게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은 ‘사회서비스 제공형’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기업들에 비해 사회복지법인 하상복지회에서 운영하는 ‘도서출판 하상점자’는 또 다른 모습을 지닌 사회적 기업입니다.
시각장애인에게 필요한 정보를 공급하는 일을 주로 하는 ‘하상점자’는 점자(點字)로 된 인쇄물을 비롯해 전자도서, 음성도서 등을 제작해 시각장애인들에게 희망의 빛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새 상품 개발에도 힘써 점자가 있는 명함과 달력 등을 제작해 보급하면서 점자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함께 기울이고 있습니다. 나아가 점자성경과 소리성경책, 교리서 등도 만들어 전국 각지에 있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보급함으로써 장애인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선교사 역할까지 하고 있습니다.
하상점자에서 점자교정 업무를 비롯해 교열·출판 분야, 간행물 기획·편집 분야 등 에서는 일하고 있는 20여 명의 직원들 가운데는 시각장애인도 적지 않습니다. 이처럼 장애를 지닌 이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면서 사회적 약자에게 사회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일자리 제공형과 사회서비스 제공형 사회적 기업의 모습을 다함께 찾아볼 수 있는 기업은 ‘혼합형’ 사회적 기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기업들은 서로 다른 여건에 처해있는 이들 사이의 사회통합, 사회적 약자 배려, 공동체적 가치 제고 등을 통해 복음정신의 사회적 실현에 앞장섬으로써 사회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2년 12월 2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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