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3)
3. 하느님을 찾지 않는 인간
인간은 하느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그래서 하느님을 찾을 수밖에 없고, 하느님을 찾아야만 충만한 행복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을 거부하고 하느님 대신에 현세적인 것들에만 몰두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느님과 이토록 친밀한 생명의 결합”을 종종 망각하고,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심지어 명백하게 거부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태도들은 매우 다양한 근원에서 비롯될 수 있다. 곧 세상의 불행에 대한 반발, 종교적인 무지나 무관심, 현세와 재물에 대한 근심, 신앙인들의 좋지 못한 표양, 종교에 대한 적대적 사조, 그리고 끝으로, 하느님이 두려워 몸을 숨기며, 그분의 부름을 듣고 달아나는, 죄인인 인간의 태도 등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29항)
1) 종교적인 무지나 무관심 : 완벽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사람이라도 아무런 훈련을 받지 못했다면 달리기 선수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지만, 제대로 된 종교 교육과 인성 교육을 받지 못한다면 현세적인 관심사만을 쫓아 살게 됩니다. 극심한 가난과 물질만능주의에 빠진 사회 분위기는 종교적인 무지와 무관심을 더욱 심화시킵니다.
2) 현세와 재물에 대한 근심 : 하느님은 우리 눈 앞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시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인간의 배후에 감추어져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세상과 인간 내면을 깊이 성찰해야만 하느님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은 현세와 재물에 대한 근심 때문에 항상 분주합니다. 하느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도 없고, 찾을 수도 없습니다.
3) 세상의 불행에 대한 반발 : 착하고 성실하게 살던 사람이 큰 불행을 당하는 것을 볼 때, 어린아이가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보게 될 때, 전쟁과 재난으로 수많은 인명이 허무하게 희생되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분노를 느끼게 되고,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게 됩니다. (이 문제를 나중에 “고통의 신비” 부분에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4) 신앙인들의 좋지 못한 표양 : 하느님을 믿는 종교인들이 세속적인 욕심에만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사람들은 실망하게 되고, 그들 역시 하느님을 찾을 생각을 포기하게 됩니다.
5) 죄인인 인간의 태도 : 인간은 살면서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릅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받습니다. 양심의 가책 자체가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해 주는 나침판이 될 수 있지만, 반대로 하느님으로부터 숨으려는 마음도 갖게 해 줍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지만 계속 죄를 짓고 양심의 가책을 받게 되면 괴롭습니다. 이 괴로움을 피하기 위해서 하느님을 찾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중에 죄가 오히려 하느님을 찾는 나침판이 될 수 있음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알게 될 것입니다)
4.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
위에서 살펴본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인간은 하느님을 거부하고 찾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등지고 세상 욕심에만 몰두할 때 우리의 삶은 오히려 더 불안해집니다.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왔기 때문에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님을 향해 가도록 저희를 내셨기에, 주님 안에 쉬기까지는 저희 마음이 찹찹하지 않삽나이다”(성 아우구스티노)
자석은 쇠붙이를 잡아 당깁니다. 그런데 자석과 쇠붙이 사이에 절연물질이 있다면 자석의 힘은 약화되고, 쇠붙이를 끌어 당길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강력한 자석이라면 여전히 쇠붙이를 끌어 당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을 찾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장애 요소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당신께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이끄심은 더욱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인간은 하느님을 잊거나 거부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찾아 행복을 누리며 살도록 모든 이를 끊임없이 부르신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30항)
예수님께서는 일어서시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8)
당신을 따르려는 첫 번째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찾느냐?”(요한 1,38) 하고 물으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중요한 질문입니다. 인생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는 여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무엇을 찾아 얻었는가”보다는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우리를 부르시는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으려 하고, 그분을 찾으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사라지는 것과도 같은 허무한 것을 찾고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은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나그네길이 아니라, 우리들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찾아 가는 구도자의 길이 되어야 합니다.
[2012년 11월 4일 연중 제31주일 의정부주보 4-6면, 강신모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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