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48) 정부의 실패(분열과 갈등)의 치유
사회정의 회복은 통합의 지름길
한 해를 시작했다. 단절 없는 시간의 흐름을 물리적으로 해와 달, 날로 나눈 것은 사람뿐이다. 시간의 흐름에 사람의 행위가 얹히며 역사가 이뤄진다. 사람의 행위는 흔적 없이 지나가 버리는 게 아니다. 그 흔적이 아름다워 두고두고 따라야 할 이정표가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아픈 상처가 돼 피해야 할 교훈이 되기도 한다.
사람은 단순한 개체(個體)로 머물지 않는다. 소통하며 결합함으로써 무리를 이룬다. 사회는 사람을 사람답게 형성한다. 이 사회는 단순한 사람의 집합이 아니라, 생물처럼 구성원의 삶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영향을 미친다. 이 사회도 흔적을 남긴다. 다음 사회에 이정표가 될 흔적을 남기기도 하지만, 피해야 할 교훈으로서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앞의 경우를 성공한 사회, 나중 것을 실패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다.
드러난 사회의 분열과 갈등
지난해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당선인은 '분열과 갈등'을 끊겠다고 밝혔다. 그만큼 우리에게는 분열과 갈등이 심각하다는 뜻이다. 무엇이 분열과 갈등을 일으킨 것일까. '시장의 실패'도 그 중 하나다. 시장의 실패는 시장이 자유롭게 기능하도록 맡겨뒀는데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못하는 경우다. 그 이유로 흔히 외부 효과와 시장 지배력을 들 수 있다. 이때 적절한 정부 정책을 통해 경제적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정부의 실패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정부가 잘못된 정책으로 정부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다. 정부는 시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정부라는 기구는 당연히 사람이, 곧 정치인과 관료들이 운용한다. 그 정치인과 관료는 이기적일 수 있고, 능력이 한참 모자랄 수 있으며, 도덕적으로 타락할 수도 있다. 이때 정부는 그 막강한 권력으로 정치인과 관료의 이기심을 충족시키며 무능함과 도덕적 타락을 포장할 수 있는 아주 편리한 도구가 될 수 있다. 그 결과는 다수의 주권자 시민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이를 정부의 실패로 부를 수 있다.
교회는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다. "정치 책임자들은 정치적 대표성의 도덕적 차원, 곧 국민의 운명과 온전히 함께하며 사회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노력을 망각하거나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권위란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공동선을 활동의 참된 목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행사하는 권위를 의미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10항).
공동선 추구가 해법이다
지난 몇 해 동안 우리의 정책 책임자들이 국민의 운명과 온전히 함께하려 했는지, 국민의 운명보다는 소수 집단과 친하게 지낸 것은 아닌지 살펴보자.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고, 목숨을 끊고, 철탑에 올라가고, 천막생활을 하는 것은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시민으로부터 위임받는 권위를 남용한 것은 아닌지, 그것을 비판하는 수많은 언론인을 길거리로 내몰지는 않았는지 말이다.
교회는 민주주의 제도의 가장 심각한 결함 가운데 하나로 정치적 부패를 꼽는데, 이는 도덕원칙과 사회정의 규범을 한꺼번에 짓밟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국가의 올바른 통치를 위협하며, 통치자와 피통치자의 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한 공공기관들에 대한 불신을 일으키고,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야기한다"(411항). 마치 우리의 지난 몇 년 모습을 요약한 것 같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는 공공 행정기관이 국민에게 봉사하게 돼 있음에도, 그 정신에 어긋나는 지나친 관료주의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412항 참조).
지난 몇 년 동안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갈등으로 몰아넣은 일들을 살펴보자. 검역주권 포기 논란, 4대강 사업 논란, 쌍용자동차 대량해고와 연이은 노동자 및 그 가족의 자살, 용산 참사, 핵발전 확대 정책,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 문제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혹시 정부의 실패, 곧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린 정치적 부패와 정치 책임자들의 도덕적 해이(사리사욕과 불의)와 무능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는 길은 '사회정의'를 회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기서 사회정의란 소수의 특정 그룹이 아니라 사회 모든 구성원이 사회ㆍ정치ㆍ경제ㆍ문화 등 전 영역에서 적절한 자원에 자유롭게 접근해 자기완성을 추구하고, 그럼으로써 공동선을 구축하는 사회 통치원리를 말한다(201항 참조).
[평화신문, 2013년 1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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