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서 DOCTRINE

교리 자료실

제목 교리문답 해설 (7): 구세주의 강생
작성자이철희 쪽지 캡슐 작성일1999-04-16 조회수5,251 추천수0

제 6 장 구세주와 강생구속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을 다룰 차례입니다.  창조주이신 분은 우리가 성부라 고백하고, 인류의 구원자로 내려오신 분을 우리가 성자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하여 당신의 역할을 지속해 나가시는 하느님은 성령으로 고백합니다.  이 6장은 제 2 위(位), 성자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51항과 52항은 구세주에 대한 내용을 다루는 데 기초적인 내용입니다.  시작이니까 함께 읽어보시죠.

358-51. 구세주(救世主)는 누구이십니까?  <답> 구세주는 천주성자로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358-52. 예수 그리스도라 함은 무슨 뜻입니까?   <답> 예수라 함은 구세주(=예호수아)라는 뜻이고, 그리스도라함은 성유로 축성된 임금이시며 대제관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구세주 즉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주님을 찾습니다. 누구이겠습니까?  사실은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그 어느 누구도 우리가 제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첫째로 우리 맘에 차지 않기 때문이겠죠.  51항의 질문 내용은 그렇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의 뜻을 따라서, 그 분의 뜻대로 세상을 이끌어 갈 분이 어느 분이신가를 묻고, 그 질문에 따른 우리 믿음의 정도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하느님으로서 계시다가 심심해서 우리 인간사에 내려왔다고 말할 수는 없을 테니까요.  우리 사람들이 하진 않는 방식을 곁들여 말하면, ’사후봉사(事後奉仕)’를 확실히 하시는 것입니다.  당신이 만드셨으니, 끝까지 책임지는 것입니다.  어떤 재료를 써서 만들었든, 그리고 그 피조물이 어떤 행태를 보이든, 당신의 뜻을 알아들을 만한 인간이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구원의 길을 펼쳐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출발부터 제 멋대로 돌아갔던 인간이 하느님의 뜻을 알아들을 리가 없죠. 인간이란 그렇지 않을까 합니다.  여기에 계신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교육시켜 봐도 알죠.  어릴 때는 그저 모든 것이 부모님의 뜻대로 되는 것 같지만, 4살인가요, 그 정도만 넘어가면 벌써 자기 고집대로 합니다.  이러한 특성을 보이는 인간에게 하느님이 어떤 방법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알려 줄 수 있을까?  참으로 난감한 문제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하느님이 택하신 방법은 당신의 아들을 사람으로 보내어  활동하게 하신 일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하느님이 인간 육신을 취하셨다’해서 육화(Incarnation: appearance in human form. in+car(nis):육(肉=flesh)으로 들어가다)라고 합니다.

 

제 1 절 강생(降生: 신이 인간으로 태어나다)

  강생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입니다. 적어도 인간이 자신만의 고집을 갖고, 이익을 추구하려는 자세를 버리지 않으려고 할 때는 말입니다.  무엇 때문에, 영(靈)적인 존재이신 분이 육(肉)을 취하셨을까?  어떤 목적으로?  이익을 추구하고 명예를 얻기 위해서 움직이는 인간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이 강생, 육화는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먼저 처음의 두 항목을 함께 읽겠습니다. 53항과 54항입니다.

 

358-53. 천주 성자께서 어떻게 사람이 되셨습니까? <답> 천주 성자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영혼과 육신을 취하시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으로 되셨습니다.

358-54. 동정녀 마리아께서는 어떻게 예수를 낳으셨습니까?  <답> 동정녀 마리아께서 예수를 잉태하여 낳으신 것은 성신의 전능으로이며, 따라서 평생 동정녀로 계셨습니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는 과정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신비이고, 그것은 계시이며 그것은 예전에 일어난 일이기에 지금처럼 과학이라는 잣대를 갖고 움직이는 기준에는 맞지 않는 일 투성이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믿음이고, 그 믿음은 2000년 가까이 세상에 있어왔고, 그 믿음은 우리가 살아온 역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성서에는 강생에 대한 약속도 있고, 그 모습을 기록한 부분도 있습니다.

 

  창세기 3,15<4면>에는 원죄의 처벌에 대한 한가지 내용이 있습니다. 악의 힘으로 등장하는 뱀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너를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네 후손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너는 그 발꿈치를 물려고 하다가 도리어 여자의 후손에게 머리를 밟히리라".  구약성서에서 이야기하는 구세주에 대한 첫 번째 예고라고 합니다.   

 구약성서 이사야 예언서 7,14<1115면>에는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라 하리라".  이 말은 하느님을 위하는 척 하면서 끝내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던 유다의 왕 아하즈 임금에게 내린 하느님의 선언입니다. 이 예언은 임마누엘 예언이라고도 합니다.  

 신약성서 마태오 복음 1장<1-2면>에는 하느님께서 마리아라는 여인을 통하여 태어나신 과정을 간략하게 적고 있고, 루가복음 1장-2장<103면.106면>에는 좀 더 설화의 형식을 빌어서, 천사가 찾아오고 아기를 갖게 되고, 태어나게 되는 과정까지 담고 있습니다.  인간이 감히 자신을 조성해 주신 하느님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 신비로운 일이었던 것처럼, 하느님이 인간을 찾아오시는 일도 이처럼 신비로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여곡절 끝에 당신의 뜻을 겸손한 자세로 수용한 마리아라는 여인을 통하여 구원의 길을 시작합니다. 사람의 몸이 영혼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듯이, 하느님께서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마리아라는 동정여인에게서 육체를 취하신 것입니다.  이 때에 마리아는 요셉이라는 다윗의 후손과 정혼한 사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아들 예수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임금, 다윗의 정통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심각한 문제가 ’동정성’에 대한 것입니다. ’동정성’의 의미는 ’마리아가 하느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낳고 난 다음에도 처녀였는가? 아니었는가?’하는 문제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낳고도 동정을 유지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질문하며 그 답을 추구하는 것은 사람들이 갖는 못된 심정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사람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을 사용하신 하느님이 ’당신의 힘으로 여인을 보호하셨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사람의 세계에도 있는 것 없는 것 모조리 뒤집어서 속시원한 것도 있지만, 적당히 가려있고, 적당히 접근할 수 없는 것이 있을 때 신비롭고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혼인하는 두 남자와 여자가 상대방에 대해서 남김없이 모두 알 수도 없지만, 또 안다고 하면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모르니까 서로를 위해서 맞추어 나가려고 애를 쓰고, 마음을 잡기 위해서 선물도 주는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느님이 보존해 주시는 깨끗함 그것이 바로 ’동정’입니다. 그리고 신앙에서는 하느님이 그 일을 해 주셨다고 믿는 것입니다.

 

  끝으로 한가지 더 가톨릭교회에서 마리아의 동정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사람의 세계에서 경험하지 못하고 체득할 수 없는 일을 해 주신 하느님을 공경하자는 것입니다.  말하는 바를 정확히 꿰뚫지는 못합니다만, 마리아의 동정성에 대해서 개신교는 절대적으로 반대합니다.  인간으로 예수를 이 세상에 낳아준 여인 마리아에 대해서는 소홀하게 대하거나 무시하면서도, 그로부터 태어난 하느님의 구원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율배반의 모습입니다.  어떤 대상이 귀중하게 되었다면, 그 싹을 간직했던 과거 역시도 중요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하느님께서 예수를 통한 인류구원의 길을 시작하셨다면, 그 어머니 마리아에 대한 중요성도 따로 보존해 주시지 않으셨겠습니까?

 

  다음 항목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고백의 내용입니다.  먼저 읽겠습니다. 55항과 56항입니다.

358-55. 천주 성자 강생하시어 사람이 되신 후에도 천주이십니까?  <답>천주 성자 강생하시어 사람이 되신 후에도 천주이시니 강생하실 때 천주성을 버리지 아니하셨고, 또 사람이 되신 후에도 천주이시므로, 그 수난공로는 천주적인 무한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358-56. 예수 그리스도께 몇 가지 성(性)과 위(位)가 있습니까?  <답> 예수 그리스도께 성으로는 천주성(天主性)과 인성(人性)이 있고, 위로는 천주성자의 위(位)가 있습니다.

인간으로 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그렇게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그 사실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태어나시게 된 과정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일, 태어나셔서 활동하신 일, 모든 것을 철저하게 하느님께 순종하는 마음으로 활동하신 분, 그와 같은 의미에서 하느님이요, 천주(天主)라고 합니다.  혹자는 질문합니다. 예수가 하느님께 순종했다면, 그가 하느님이 아니지 않겠느냐고 말입니다. 나올 수 있을 법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우리가 인간의 입장에서 해석하고 설명할 때 나올 수밖에 없는 질문과 응답의 한계입니다.

 

  인간 행동의 효과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습니다. 아주 특별한 일들이 아니라면, 50년 100년의 효력을 갖지 못합니다.  그것이 인간이 하는 일들의 결과요, 영향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일의 효과는 그 한계를 넘습니다.  인간으로 나기는 하셨으되, 순전히 인간만이 아니라 하느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보여주신 좋은 일의 결과와 영향은 물론 그 분이 보여주신 인간 구속의 결과와 영향은 지속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분이 인간이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알려주셨는데, 그 일은 2000년전에 영향을 주고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된다는 것이 55항에 나오는 ’수난공로의 지속성’입니다.

 

  하느님을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구별하는 것은 우리가 알아듣기 위한 수단입니다.  남성 한 사람을 때로는 아버지요, 아들이요, 직장의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시는 분으로 구분하여 말하거나, 여성 한 사람을 며느리요 딸이요, 어머니로 구별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간단하게 구별해야 더 잘 알아듣지 않을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하느님이면서, 우리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구별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에서는 이 세 위격(persona)을 한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신앙고백입니다. 그것밖에는 설명할 수없다고 할 때, 믿음이요, 신앙고백이라는 말을 씁니다.  그래서 이런 내용에 맞춰 신학에서도 하느님을 구분하여 설명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고 관리하는 하시는 분으로 나타나실 때는 ’성부이신 하느님’으로, 인간을 위하여 인간으로 나셨다가 그 인간이 구원의 길로 나아갈수록 활동하신 분을 가리켜서 ’성자이신 하느님’으로,  교회를 통하여 지금도 당신의 교회를 유지 발전시키는 힘으로 나타나실 때는 ’성령이신 하느님’으로 구별합니다.  그러나 이런 구별은 인간이 알아듣기 위한 수단으로서 구별하는 것이지, 인간으로서 하느님을 구별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위 56항은 성자에 대하여 적용되는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하느님으로서의 성격’과 ’인간으로서의 성격’이 공존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천주성과 인성이 함께 있는 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성격은 서로를 제한하지도 않고, 조화가 있다는 말밖에는 따로 할 것이 없습니다.  

 

  인간으로 보이신 모습의 특성을 요한복음서 11장 35절의<나자로 이야기:(신약 196면)>에서 눈물을 흘리신 모습도 있고, 부활하신 분이 먹을 것을 찾는 모습(루가 24,41:신약 168면)도 있습니다. 부활하신 뒤에도 당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에서 손과 발을 보여주시는 분(루가 24,39-40: 신약 168면)으로 보여주기도 하십니다. 또한 하느님의 성격을 보이시는 부분으로서는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부활을 보여주신 분’입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역할을 구별하여 말할 때, 제 2 위(位), 성자라고 믿음을 고백하기도 합니다.

 

  다음의 57항, 58항, 59항의 내용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함께 먼저 읽겠습니다.

358-57.마리아께서는 천주의 참된 모친이십니까?  <답> 마리아께서 천주의 참된 모친이라고 부르는 것은 인성으로 마리아께 나신 예수께서 참된 천주이시기 때문입니다.

358-58. 성모 마리아께서는 평생 동정녀이십니까?  <답> 성모 마리아께서는 평생 동정녀이시니, 예수를 낳은 후에도 영원히 동정녀이십니다.

358-59. 성 요셉께서는 예수의 참된 아버지이십니까?  <답> 성 요셉께서 예수를 낳으신 아버지는 아니시고, 다만 성모 마리아의 정결한 배필로서 예수를 보호하시고 기르신 아버지이십니다.

 

  예수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으로 태어나셨지만 하느님의 성격도 갖추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두 가지 말 중 한 가지를 사용하여 이야기할 때는 하느님이라고도 합니다.  예수님이 하느님으로 성격을 갖추신 분이고, 그분이 마리아를 통하여 나셨기에 우리는 마리아를 가리켜 ’천주의 모친,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말을 씁니다.

 

  동정녀(=童貞: 이성과 아직 접촉이 없음 또는 그런 사람, 숫처녀, 童貞女: 결혼하지 않은 여자로서 종교적 목적을 위해 동정을 지키는 사람)로 마리아를 고백하는 의미는 앞서 설명 드린 바 있습니다. 이것은 마리아 자신을 위한 것보다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우리를 위한 신앙의 내용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여자로서 남자와 성(性)관계를 갖지 않았을 때 가리키는 말이 바로 이 의미이고, 하느님의 아들을 낳으신 마리아에게 존경과 영예를 갖고 드리는 공경의 표현이 ’동정’이라는 말이 갖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예수의 아버지에 대한 내용을 교회에서 이야기할 때는 기르신[養] 아버지라고 합니다.  우리말의 표현만 생각하면 흥분하기 쉬운 일이기는 합니다만, 요셉에 대해서 그렇게 부릅니다.  그 요셉이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과정에서 고민한 이야기가 마태오복음 1,18-25에 자세하게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경위는 이러하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어라.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하고 일러주었다. 이 모든 일로써 주께서 예언자를 시켜,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는 뜻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의 천사가 일러 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였다. 그러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 동침하지 않고 지내다가 마리아가 아들을 낳자 그 아기를 예수라고 불렀다. >

 

  이런 요셉의 행동을 보고 줏대 없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질문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입장만을 중시한 것입니다. 물론 성서에는 이런 역할을 담당했던 요셉의 인간적인 불만은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가 하느님의 뜻을 충분히 알아들었고, 그대로 따른 결과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우리 사람세계에서 자녀가 태어날 때, 분명 어머니요 여인이 그 아기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아기를 낳았다’는 표현을 씁니다.  이것은 물리적인 것을 의미하는 표현이 아니라, 계승줄기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먼저 성(性)부터 아버지를 따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말이죠.  그러므로 예수님을 가리켜 다윗의 혈통을 잇는 다윗의 후손이라는 말을 씁니다.  하지만 그 다윗의 후손이 될 수 있도록 역할을 담당했던 요셉에게 주어진 이름이란, ’예수를 기르신 아버지’일 뿐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기르신 아버지 요셉의 이름이 거명된 곳은 처음 태어날 때에 고민하던 부분과 아기가 태어난 일과 관련된 부분,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에집트로 피신하고 다시 돌아온 것 정도이고, 루가복음에는 한 곳이 더 나옵니다.  예수님의 나이 12살 때에 성년식(成年式)을 위하여 성전에 갔다가 길을 잃었고 다시 찾았을 때 암시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전부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