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절 : 제 4 계명 <사. 부모에게 효도하여라>
358-125. 제 4 계에 명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답> 제 4 계에 명하시는 것은 자녀가 부모에게 할 본분과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할 본분입니다.
358-126. 자녀가 할 본분은 무엇입니까? : <답> 자녀가 부모에게 할 본분은 효도하여 순종하고, 부모의 영혼과 육신에 관한 모든 긴요한 일을 정성껏 보살펴 드리는 것입니다.
358-127. 부모가 자녀에게 할 본분은 무엇입니까? : <답> 부모가 자녀에게 할 본분은 특히 종교와 덕행에 관한 교육을 시키며, 진실히 사랑하고 앞날을 잘 주선하여 주는 것입니다.
358-128. 직공과 회사원이 해야 할 본분은 무엇입니까? : <답> 직공과 회사원이 해야 할 본분은 근면하고 절약하며 자기 자신의 가정 일처럼 행하는 것입니다.
358-129. 공장주인이나 기업가들이 직공이나 회사원에게 할 본분은 무엇입니까? : <답> 공장주인이나 기업가들이 직공이나 회사원에게 할 본분은 그들의 작업환경을 위생적으로 완비하여 주고, 생활에 충분한 임금을 제 때에 주며, 자기 아들이나 동생처럼, 즉 가족처럼 여기고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것입니다.
358-130. 국민이 국가에 할 본분은 무엇입니까? : <답> 국민이 국가에 할 본분은 국가의 책임을 맡은 이들을 존경하고, 정당한 국법을 준수하며, 타당한 세금을 성실히 바치는 것입니다.
358-131. 신자들이 교회에 할 본분은 무엇입니가? : <답> 신자들이 교회에 할 본분은 교회유지와 발전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정성을 기울이고, 특히 성직자를 존경하고 그 생활을 도와 드리는 것입니다.
네 번째 계명은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것입니다. 이 계명을 들으면서 우리는 생각할 것입니다. ’나는 부모에게 효도하며 살고 있는데, 그 간단한 사실을 갖고 뭘 그리 복잡하게 설명하는가?’ 여기 네 번째의 계명은 각각의 삶의 위치에 따라서 지켜야 할 본분을 이야기합니다. 자녀로서, 부모로서, 직공과 회사원으로서, 사업주들과 그 영향을 받는 사원으로서, 국가와 국민의 본분으로서, 신자와 교회공동체의 관계도 설명합니다.
다 아는 사실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명이란, 본래가 잘 지키고 있는 사람들을 상대로 해서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는 법이 없어도 삶의 윤리에 어긋남이 없어 생활하기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을 것입니다.
요즘에는 피고용자가 고용주에게 항의 모습과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시대가 바뀌어서 사람들 개개인의 권리를 깨달은 것도 있지만, 고용주들이 지나치게 욕심이 많게 행동해 왔던 것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고용주들은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과거에는 돈을 적게 주어도 일할 사람은 넘쳤는데...’하며 과거를 회상합니다. 이런 주장이 맞을 수도 있지만, 지나친 욕심이 개입되어 있다면 그것도 항상 옳게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욕심의 모습은 고용주와 피고용자, 국가와 국민, 때로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도 드러나곤 합니다. 올바른 삶의 정신을 우리가 어떻게 갖고 사는가에 따라 우리가 행동하는 모습이 달라집니다.
제 5 계명은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것입니다. 제 5 계명을 읽겠습니다.
제 5 절 : 제 5 계명 <오. 사람을 죽이지 마라>
358-132. 제 5 계에 금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답> 제 5 계에 금하시는 것은 살인 뿐 아니라,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남이나 혹은 자신의 영혼 육신을 해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아무나 죽이지 않습니다. 죽이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5 계명은 우리에게 의미없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꼭 물리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끊어야만 살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이 5 계명을 좁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함께 살아갑니다. 혼자 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세상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가까이 마음을 두고 사는 사람이 없다는 것일 뿐이고, 사람은 누구도 도우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서 살아갈 힘을 빼앗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것에 해당하죠. 물론 이 경우에 교육을 위하여 쓸데없는 만용을 꺾는 일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氣)를 꺾는 일, 살아갈 힘을 빼앗는 일,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는 요즘의 ’왕따’ 현상도 사람을 죽이는 것의 한 가지입니다.
사람을 죽이는 일 가운데 가장 잘못된 것은 ’자살’하는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자살했을까?’하고 봐주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다른 판단입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각자는 모두 해야할 일과 역할이 있는 법입니다. 그것을 인위적인 판단에 의거하여 이리저리 생명선(生命線)을 단절하는 것은 아무리 잘 봐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좀 더 구별해서 이야기하면, 전쟁터에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제 5 계명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판단을 달리합니다. 좀 더 정확한 판단은 사람을 죽이게 하는 전쟁이 발생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죠.
제 5 계명이 금지하는 것은 남을 미워하는 것, 남의 불행을 원하는 것, 분노, 질투, 원수갚기를 원하는 것 등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의 참조는 <상해천주교요리 2권, 89-107쪽을 참조하십시오>
인간이 인간으로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의 세 번째 계명입니다. 제 6계명입니다. 제 6 계명은 입에 올리기가 좀 껄끄럽긴 합니다만, ’간음(姦淫:부부 아닌 남녀가 성적관계를 맺음)’에 대한 것입니다.
제 6 절 : 제 6 계명 <육. 간음하지 마라>
358-133. 제 6 계에 금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답> 제 6 계에 금하시는 것은 간음과 사음(邪淫:남의 남자나 여자와 음탕한 짓을 하는 일)뿐 아니라 온갖 부정한 행실과 그 위험한 기회까지입니다.
여기 6 계명을 공공연하게 어기는 것이 창녀(娼女)와 남창(男娼)의 공공연한 합법입니다. 흔히 말하듯, ’필요악’이라고 할 지 모르지만 그렇게 합리화할 수 있는 일들이 세상에 늘어난다면, 아마도 선과 악의 개념조차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윤리적으로 옳지 않고, 사람이 해서도 잘못된다는 것과 세상에 그 일들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마찬가지로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한다’고 말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혼인에서는 어찌 생각하면 유치한 일이고, 어찌 생각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어서 ’그까짓 것쯤이야 누가 몰라’하거나 ’아이, 창피하게 어떻게 그것을 교회에서 이야기해?’하는 요소를 강조합니다. 혼인의 진술서에서 혼인의 목적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혼인은 부부가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도우며 자녀를 낳아 기르기 위한 것임을 아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교회에서 원하는 정답은 ’긍정(肯定)’의 답입니다. 다른 이론이 필요한 것이 아니죠. 사람의 세계에도 순수 동물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요소들 가운데 받아들일 만한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혼인의 목적에서 유치한 듯 보이는 말을 강조하는 이유는 사람이 하는 행동이 그만큼 의미심장(意味深長)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제 6 계명의 ’간음금지’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거의 기본적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자신이 행한 일에 대해서 합리화하려고 하고, 변명을 통하여 ’불가피(不可避)’한 것으로 호도(糊塗:건성으로 애매하게 덮어버림. 속임수의 조처를 함)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하느님이 원하시는 길에서 어긋나게 걸어놓고 올바로 돌아설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은 인정하고, 돌아서는 것이 최선의 방법입니다.
일곱 번째 계명은 사람의 재산에 대한 것입니다. 재산은 귀중한 것입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가운데는 힘들이지 않고 재물을 쉽게 모으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택하는 방법은 바로 제 7 계명을 어기면서 하는 것입니다. 정당한 땀의 대가가 아닌 것은 그렇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 7 절 : 제 7 계명 <칠. 도둑질을 하지 마라>
358-134. 제 7 계에 금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답> 제 7 계에 금하시는 것은 불의하게 남의 물건을 빼앗음과 손해를 끼침과 그러한 일에 협력할 뿐 아니라, 자기의 재산을 낭비하는 것입니다.
세상이 발전하면서 우리는 참으로 듣기 껄끄러운 말을 듣습니다. 그것들 가운데 하나는 ’대가성(代價性)’이라는 말입니다. 흔히 정치인들 가운데서 많이 쓰이죠. 뇌물을 받아놓고, 부정하게 재산을 증식해놓고 한다는 소리 ’이것은 대가성이 없는 것’이었다는 소리입니다. 이것은 제 7계명과 더불어서 제 8 계명마저도 어기는 행동입니다. 우리 속담에 ’아닌 땐 굴뚝에 연기 나랴?’하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목적 없는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계명은 꼭 행동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의도까지도 가리키는 것이고, 남의 재산뿐만 아니라, 나의 재산까지도 함부로 쓰지 말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물론 함부로 쓰거나 그렇지 않거나 판단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처한 입장에 따라 판단은 달라지기 마련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하거나 모든 것이 다 옳다고 하는 말은 아닙니다. 반드시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그 판단은 ’남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제 8 계명에 대한 것입니다. 제 8 절 : 제 8 계명 <팔.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
358-135. 제 8 계에 금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답> 제 8 계에 금하시는 것은 거짓말과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말입니다. 이 계명을 어긴다고 해서 그 결과가 눈에 띄는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남의 것을 훔쳐와서 재산상의 손해를 끼치는 것보다 더 큰 해악(害惡)을 줄 수 있는 것이 ’거짓증언’에 의한 결과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흔히 ’증언’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쓰고 등장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세상살이에서 적잖은 거짓말을 하고 삽니다. 갑자기 닥친 곤경을 피하기 위해서 하는 경우도 있고,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의도적으로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이 큰 문제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이렇게 내가 말을 하거나 증언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때입니다. 다른 사람의 거짓증언으로 피해를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잘못한 거짓의 결과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 지 알 것입니다. 그 행동은 가끔씩 눈에 보이지 않게 사람을 죽이기도 하고, 눈에 보이지 않게 거짓말하는 자의 삶을 조금씩 파괴합니다.
다음은 제 9 계명과 제 10 계명에 대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계명은 재산에 관련된 것입니다. 요즘의 시각으로 보면 비판받기 딱 좋은 내용도 담고 있습니다. 사람도 재산의 하나로 취급되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애석하게도 이 계명은 ’여인이 남자의 재산으로 취급되던 때에 나온 계명을 보입니다. 먼저 읽겠습니다. 제 9절 : 제 9계명 <구.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 358-136. 제 9 계에 금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답> 제 9 계에 금하시는 것은 온갖 부정하고 음란한 욕망과 원의입니다.
제 10 절 : 제 10 계명 <십. 남의 재물을 탐내지 마라> 358-137. 제 10 계에 금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 <답> 제 10 계에 금하시는 것은 불의하고 부당하게 남의 물건을 탐하는 것입니다.
제 9 계명과 제 10 계명은 행동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 앞선 생각부터 바르게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 9 계명에 대하여 여성들이 갖는 생각이 다소 화가 나는 것일지라도, 그래도 참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것이 당시의 사회관습을 그대로 유지해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의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요즘에는 남성이나 여성이나 동반자라고 하는 개념을 씁니다. 그리고 가끔씩은 여성의 지위가 높아진다는 판단을 하기도 합니다. 누가 높고, 누가 낮고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중요성을 그대로 인정하고 보존하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일이 될 것입니다.
국가 사회의 법과 규범에서는 의지를 처벌하지 않습니다. 드러나지 않은 바에야 처벌할 수 없는 것이겠죠. 그 점은 교회의 정신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조심을 강조하고, 삶의 정신을 가르치는 방법에는 한 단계 더 나아갑니다. 드러나는 행동만이 아니라, 그 행동을 이루는 마음의 변화에 대한 것까지도 바른 길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그 제재(制裁)에 대하여 사람들의 판단은 제 각각입니다. 부담스럽다고 하거나, 종교는 골치 아픈 것이라고 하거나, 심지어는 종교와 신앙의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야 할 본래의 삶의 정신을 기억한다면, 그러한 판단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제 11절에 나오는 보상 문제는 십계명에 대한 설명은 아닙니다. 다만, 5,6,7,8 계명, 행동을 통하여 드러나는 계명을 준수하지 않음으로써 생기는 문제에 대한 것입니다. 눈앞에 발생한 실제적인 피해와 손해에 대한 배상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보상이라고 합니다. 제 11 절 : 보상 : 358-138. 제 5,6,7,8 계명 어느 것이든지 범하면 무슨 특별한 의무가 생깁니까? : <답> 제 5,6,7,8 계명 중 어느 것이든지 범하면 남에게 끼친 해를 보상할 의무가 생깁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내가 객관적인 제 3 자의 입장이라면, 모른다고 우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 피해를 입은 당사자라고 한다면, 그 판단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항상 입장을 바꾸어놓고 판단해서 살기는 어렵다고 해도, 가끔씩 그것은 필요합니다. 그것을 제대로 실천한다면, 우리는 삶을 더 윤택하게 바꾸어 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 12 절의 내용은 십계명을 분류한 것입니다. 하느님께 대한 것 세 가지 계명과, 인간에게 적용되는 것 일곱 가지 계명으로 분류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분류이지 그 중요성을 달리 보는 것은 아닙니다.
제 12 절 : 십계대의
358-139. 십계명의 대의는 무엇입니까? : <답> 십계명의 대의는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정신과 모든 힘으로 주 천주를 사랑하고 또 자기에게 가까운 이를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니, 첫 번째부터 세 계명은 천주 사랑하는 관한 것이고, 그 다음부터 일곱계명은 사람 사랑하는데 관한 것입니다.
다음은 계명에 대한 일반적인 우리의 자세입니다.
제 13절 : 본 지위의 본분
358-140. 사람마다 자기 지위에 대한 본분을 지킬 의무가 있습니까? : <답> 사람마다 자기 지위에 대한 본분을 지킬 의무가 있으니, 각자의 직업과 지위가 요청하는 본분을 잘 지켜야 합니다.
사람은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래서 돈을 더 많이 벌려고 하고, 사회에서 사람들이 인정하는 더 높고 더 편하고 더 좋은 직책을 맡으려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노력합니다. 그렇게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각각의 일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가 달라지는 것 그것뿐입니다. 그 밖의 어떤 것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얼굴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신분이 상승했다고 해서 내 몸의 무엇인가가 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렇게 노력합니다. 좋은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유의했으면 싶은 것은, 내가 신분이 상승되기를 바라는 것만큼이나 내가 해야 할 본분이 달라지는 것이 본분이 달라지는 그만큼 내게 주어지는 의무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