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Q&A
“사도신경에 자주 반복되는 믿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지요? 이해하고 안다는 뜻인가요?”
“말도 안 돼!”, “그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라고 하며 우리는 인간관계를 맺으며 언성을 높이거나 갈등을 겪어본 적은 없습니까? 사람들은 대개 자신에게 이해되지 않는 이야기 혹은 자신의 논리에 어긋나는 말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기에 그분을 알고 사랑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이란 하느님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하느님을 찾아가는 여정 중에 주위의 피조물을 바라보고 이해하면서 그 이해한 것이 참(眞理)인지 거짓인지를 수 없이 가려내야 할 것입니다. 어두운 밤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항구를 찾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방향을 알려주는 나침반입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 있어 길을 찾아가는데 이성(理性)은 바로 이러한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을 깨달았을 때 기쁨을 느끼고, 그 기쁨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갈망과 결심을 만들어 내며 자신의 배움과 깨달음을 재촉합니다. 그런 길을 걷도록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성과 의지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 선물들은 삶의 최종 종착지인 하느님을 알고 찾아가는 데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우리의 이해와 깨달음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을 초월하시고, 모든 인간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분이십니다. 사실 하느님은 삶의 유일한 목적이고, 무한한 행복이며, 영원한 생명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가장 잘 알아야 하는데 그분은 우리의 모든 이해 능력을 벗어나 계시는 분이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해의 끝자락에서 더는 앞으로 나아 갈 수 없어 답답해하는 우리에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요한 14,1)고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의 마음보다 크신 하느님’(1요한 3,20 참조)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을 남김없이 드러내 보이시고 그 뜻을 전해 주십니다. 이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이제 우리는 이성과 의지를 통해 예수님을 알고 믿으면 보이지 않는 하느님도 알고 굳게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해 갔으며, 끊임없이 하느님과 인격적으로 만났고,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내어 맡겼습니다. 심지어 자신보다 더 소중한 아들 이사악을 하느님께 바치려고까지 하였습니다. 이처럼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며, 인격적인 만남이고,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것입니다. 때때로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뜻을 만난다면 성모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성모님께서는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믿으셨고, 당신의 이해력을 넘어선 상황에서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루카 2,19) 되새기셨습니다.
우리는 세례로 하느님의 말씀과 믿음의 씨앗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 믿음의 씨앗을 이 세상 어떤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도록 키워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1코린 3,16 참조)과 매일의 삶을 함께하고, 어려움 속에서도 아브라함과 성모님의 모범을 따르십시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을 가지고 하느님께 담대히 나아갈”(에페 3,12) 수 있을 것입니다. 영원한 행복이신 하느님께로!
※ 참고 : 가톨릭교회교리서 31항, 142-147항, 150-184항, 189항 (사목국 연구실)
[2013년 2월 3일 연중 제4주일 서울주보 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