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17)
21. 전능하신 하느님
1) 유일하시기에 전능하신 분
지난 시간까지 하느님의 두 가지 특징을 공부했습니다. 하느님은 유일하시고 동시에 삼위일체이십니다. 오늘은 하느님의 세 번째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 신자들에게 “하느님은 전능하시다”는 말은 설명이 필요없는 당연한 것으로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수많은 종교들 중에서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하는 종교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하느님이 전능하시기 위해서는 그분이 유일하신 분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유일신을 믿는 종교들만이 하느님을 전능하신 분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다신교에서는 신들마다 관장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어떤 신은 곡식이 자라게 하고, 어떤 신은 치료를 해 주고, 어떤 신은 전쟁을 도와 준다고 합니다. 곡식의 신은 그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지만 다른 영역에서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다신교의 신들은 특정한 능력을 가진 존재들이라고 말할 수는 있지만, “전능하신 분”이라는 명칭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마니교라는 종교가 있습니다. 마니교에서는 하느님이 둘 있다고 믿습니다. 선신과 악신입니다. 선신과 악신은 끊임없이 서로 싸우지만, 어느 한쪽이 결정적으로 승리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므로 선신이나 악신이나 어느 한쪽도 “전능하신 분”이라고 불릴 수는 없습니다.
성서는 하느님의 우주적 전능에 대해서 여러 번 고백한다. …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므로 그분은 “하늘과 땅”에서 전능을 떨치신다. 그러므로 그분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고, 그분께서 만드신 것은 그분의 처분에 맡겨져 있다. 하느님께서는 온 우주의 주님이시고, 우주에 질서를 부여하셨으며, 이 우주는 그분께 완전히 복종하고, 그분의 처분에 달려 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69항).
세상에는 수많은 능력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독재 권력이 사람들을 억압했습니다. 요즘은 무자비한 자본의 횡포가 사람들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질병과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의 삶을 위협합니다. 게다가 우리를 괴롭히는 이런 힘들 배후에는 악의 세력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런 힘들과 비교할 때 우리들은 너무나도 약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위협하는 힘들이 비록 강력한 것이기는 하지만, 하느님의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강력한 힘들이라도 하느님 손바닥 안에 들어 있는 유한한 능력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의 유일하심과 전능하심을 믿는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산들을 향하여 내 눈을 드네.
내 도움은 어디서 오리오
내 도움은 주님에게서 오리니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다.
낮에는 해도,
밤에는 달도 너를 해치지 않으리라.
주님께서 모든 악에서 너를 지키시고
네 생명을 지키신다.
나거나 들거나 주님께서 너를 지키신다,
이제부터 영원까지(시편 121,1-2.6-8).
2)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전능
이처럼 우리가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믿게 되면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두려움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시기에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으시고 당신 마음대로 행하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보시고 맘에 안드시면 다 쓸어버리고 다시 시작하실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전능하심이란 말이 잘못 이해되면 “자기 마음대로, 이랬다 저랬다” 하는 것으로 느껴집니다. 실제로 우리 삶에서는 힘이 강한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우리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안절부절하고 힘들어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느님(=성경이 증언하는 하느님)은 전능하시지만, 그 전능하심은 우리를 향한 사랑으로 드러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위안과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전능은 결코 독단적이지 않다. “하느님 안에서 능력과 본질, 의지와 이해, 지혜와 정의는 하나이며 동일하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그분의 정의로운 의지와 지혜로운 이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271항).
3) 무능하게 보이는 하느님의 전능
하느님의 전능하심과 관련해서 심각한 의문이 제기됩니다. “하느님께서 전능하시다면 왜 세상에는 악이 판을 치는가” 이 질문은 신앙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것입니다. 순교자들이 아무 죄없이 박해를 당하면서 가졌던 의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신자들이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외치는 질문입니다. 이것에 대한 답변은 다음 시간에 하느님의 섭리를 다루면서 “하느님의 전능하심, 인간의 고통, 악의 신비”의 관계 속에서 설명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부분에서도 다루게 될 것입니다. 다만 여기서는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세상의 악한 능력들에 비해 무력해 보이시는 이유가 “하느님의 전능이 사랑 안에서 드러나기 때문이다”는 언급만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전능하신 아버지시다. 그분의 부성애와 전능은 서로를 밝혀 준다. 과연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주시고, 우리를 당신 자녀로 삼아주심으로써(“나는 너희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님의 말씀이다.”, 2코린 6,18), 그리고 무한한 자비를 통하여 아버지로서 전능을 보여 주신다. 당신 자비로 죄인들을 자유로이 용서하심으로써 그 권능의 극치를 드러내신다(가톨릭교회교리서 270항).
4)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
우리가 믿는 바는 명확합니다. “하느님은 전능하시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현실도 명확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악한 세력들에 의해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서 하느님의 전능하심을 고백하는 것이 참신앙입니다.
동정 마리아께서는 이와 같은 신앙의 가장 뛰어난 모범이시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 되는 것이 없다.”고 믿었으며(루카 1,37), “전능하신 분이 큰일을 내게 하셨음이요,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로다”(루카 1,49) 하고 주님을 찬양할 수 있었다(가톨릭교회교리서 273항).
[2013년 2월 17일 사순 제1주일 의정부주보 5-7면, 강신모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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