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84) 몬드라곤협동조합
그리스도적 사랑이 일으킨 ‘기적’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협동조합’하면 사회주의 국가의 협동농장 등을 떠올려 백안시하던 사회적 분위기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도 승승장구하며 아름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협동조합들의 좋은 평판은 협동조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협동조합들 가운데 협동조합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을 확 바꿔놓은 곳이 있습니다. 바로 ‘협동조합의 기적’이라고도 일컬어지는 스페인 몬드라곤협동조합공동체(Mondragon Corporation Cooperative, 이하 몬드라곤협동조합)입니다.
2012년 현재 총자산 54조 원, 연매출액 30조 원, 스페인 재계 서열 7위, 8만 명이 넘는 일자리…. 하나의 협동조합이 가진 경제적 위상치고는 상상을 초월하지만 엄연한 사실입니다.
제조업 분야뿐만 아니라 유통업, 금융업, 지식서비스 부문까지 아우르는 대기업이 협동조합이라는 사실 또한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이렇듯 기적이라고 부르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은 몬드라곤협동조합의 시작은 그리스도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기적의 싹이 튼 곳은 스페인 북부 피레네산맥 끝자락에 위치한 퇴락한 광산도시 몬드라곤(Mondragon)이었습니다. 갓 사제품을 받은 26살의 호세 마리아 아리즈멘디아리에타(Jose Maria Arizmendiarrieta. 1915-1976) 신부가 1941년 2월 첫 사목지로 몬드라곤교구에 부임해오면서 기적의 씨앗이 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아리즈멘디 신부는 스페인 내전 후 인구의 80%가 떠나 황폐화된 몬드라곤 시골마을에서 아이들을 위한 기술학교를 세우고 희망을 전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가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가르친 것은 인간다운 삶을 향한 희망과 이를 위한 불굴의 도전정신이었습니다.
아리즈멘디 신부는 자신이 직접 길러낸 이들이 정작 일자리가 없어 힘들어하자 마을 사람들의 뜻과 힘을 모아 자신의 제자들 가운데 5명을 주축으로 1956년 11월 12일 몬드라곤 시내의 한 주물공장에서 ‘울고르’(ULGOR)라는 이름의 생산협동조합을 탄생시킵니다.
석유난로 등을 만들어내던 이 조그만 협동조합이 바로 몬드라곤협동조합의 모태가 돼 사랑과 나눔의 저수지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반세기만에 세계 최대의 협동조합으로 성장한 몬드라곤협동조합은 산하에 금융기관인 신용협동조합 ‘카하 라보랄(노동인민금고)’을 비롯해 소비협동조합인 ‘에로스키’(Eroski), 조합원들에게 건강보험과 노후복지 혜택을 제공하는 사회복지조합인 ‘라군 아로’(Lagun Aro)는 물론이고 조합원 자녀들을 전인적 사회인으로 양성하는 몬드라곤기술대학 등 거의 사회 대부분의 영역을 포괄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협동조합공동체들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재 260여 개의 협동조합형 사회적 기업들이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형제애를 나누고 있는 몬드라곤협동조합은 모태가 된 울고르 설립 이후 순익 기준으로 연평균 7.5%, 일자리 창출 규모로 연평균 10% 성장해오고 있습니다.
몬드라곤협동조합 공동체 조합원들은 저마다 하는 일은 다르지만, 모두 자신이 하는 일에 대단한 자부심을 지니고 있습니다. 바로 따뜻한 예수님의 모습을 느낄 수 있는 하느님 나라를 자신들의 손으로 일궈가고 있다는 공감대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 자체가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기적과 큰 위안으로 다가옵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3월 17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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