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20)
24. 하늘과 땅
지난 시간까지 창조주이신 하느님에 대해 공부했는데, 오늘은 하느님으로부터 창조된 세상에 대한 공부를 하겠습니다. 창조된 세상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천사들), 물질적인 세계(인간 이외의 모든 것), 영혼과 물질이 결합된 존재(인간)입니다.
하느님께서 태초에 단번에 무에서 영신계와 물질계, 곧 천사들과 세계를 창조하셨다. 그리고 나서 정신과 육체로 이루어져 두 요소를 다 지닌 인간을 창조하셨다(가톨리교회교리서 327항).
1) 물질적인 세계는 무엇인가
자연과학에서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무생물, 식물, 동물로 구분합니다. 이런 구분법에 따르면 물질적인 세계는 동물과 식물을 제외한 생명이 없는 것들을 일컫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리에서 말하는 물질 세계는 동물과 식물도 포함하는 넓은 의미입니다. 돌멩이(무생물)는 생명이 없습니다. 반면에 동물은 살아 움직이고 아픔을 느끼고 간단한 의사소통을 합니다. 그래서 돌멩이와 동물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돌멩이나 동물은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습니다. 둘 다 영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둘 다 물질적인 세계에 속하는 것입니다.(샤머니즘에서는 천년 묵은 나무나 구렁이에게도 영혼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가톨릭 교리에 의하면 눈으로 볼 수 있는 천지만물 중에 영혼을 가진 것은 인간뿐입니다.)
물질적 세계와 반대되는 것은 영혼입니다. 영혼은 눈으로 볼 수 없고 느낄 수도 없습니다. 갑돌이가 사고를 당해서 전신마비가 되었고 기억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건강할 때의 갑돌이와 사고 후의 갑돌이는 육체와 정신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돌이는 여전히 갑돌이입니다.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모든 변화에도 불구하고 갑돌이를 갑돌이일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영혼이라고 부릅니다.(“인간” 항목에 가서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2) 물질적인 세계의 특성
물질적 세계는 인과관계의 법칙이 지배하는 세계입니다. 물을 끓이면 수증기가 됩니다. 돌멩이를 떨어뜨리면 땅으로 떨어집니다. 예외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원인과 결과에 의해서 결정되어집니다.
그래서 물질적 세계는 필연성의 세계이고 다른 말로 표현하면 자유가 없는 세계입니다. 바로 이 점에서 물질적 세계는 영적인 세계와 구별됩니다. 반면에 영적인 세계는 자유의 영역입니다.
3) “보시니 좋더라”
일부 종교들은 “영적인 세계는 선하고, 물질적인 세계는 악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철학자는 육체를 영혼의 감옥이라고 불렀습니다. 영적으로 자유롭고 싶지만 몸이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부터 물질적인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표현됩니다. “보시니 좋더라!” 모든 피조물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으로 창조되었기에 본질적으로는 선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물질적인 세상은 그 자체로서는 문제가 없지만, 그것이 잘못 이해되고, 잘못 사용될 때 문제가 생깁니다. 돈 버는 일, 성생활, 술마시고 노는 것 등이 그 자체로써 죄는 아닙니다. 정도 이상으로 돈 버는 것에 탐욕을 부릴 때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사물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그리고 올바른 질서 속에서 사용되어야만 창조 때의 아름다움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들은 저마다 고유한 방법으로 하느님의 무한한 지혜와 선의 빛을 반영한다. 이 때문에 인간은 각 피조물의 고유한 선을 존중하여, 창조주를 무시하는 일이나 인간과 인간의 환경에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는, 사물의 무질서한 이용을 피해야 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339항).
4) 영적인 세계 = 천사들
성서와 성전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천사들을 창조하셨다고 합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처럼 순수하게 영적인 존재들입니다. 천사들은 하느님을 도와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합니다. 가브리엘 천사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루카 1,26-38), 라파엘 천사처럼 인간을 친구처럼 도와주고(토비아서), 에집트 땅에서는 하느님의 징벌을 수행합니다. 그리고 인간 모두에게는 수호천사가 있어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천사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하느님께서 세상을 돌보시기 너무 바쁘셔서 협조자를 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당연히 그건 아니지요. 지난 시간에 삼위일체 교리를 공부하면서 살펴보았듯이,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당신 홀로 계실 때조차도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 안에 성부, 성자, 성령의 구별과 친교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이런 공동체성, 함께 함의 모습은 창조의 원동력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행복을 함께 나누고 싶으셔서 보이는 세상과 보이지 않는 세상을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당신 사랑을 나누어 주시기 위해서인 것처럼, 천사들도 심부름 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 사랑을 함께 나누고 싶으셔서 창조하신 것입니다. 천사들의 존재는 인간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증거입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생명의 시작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천사들의 보호와 전구로 도움을 받는다. “모든 신자의 곁에는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하는 보호자이자 목자인 천사가 있다.” 이 지상에서부터 그리스도인의 삶은 신앙으로, 하느님 안에 결합되는 천사들과 인간들의 복된 공동체에 참여한다(가톨릭교회교리서 336항).
“하느님께서 천사들도 창조하셨다”는 믿음은 우리의 신앙 생활에 중요한 의미를 줍니다. 천사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는 땅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하늘까지 창조하셨습니다. 물질적인 세상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상도 창조하셨습니다. 천사들의 존재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상에만 몰두해서 영적인 세계를 잊고 살 때가 너무도 많습니다. 그리고 세상사에 지치고 힘들어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눈을 들어 하느님께서 지어내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겠습니다.
[2013년 3월 17일 사순 제5주일 의정부주보 5-7면, 강신모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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