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리] 교회와 정치 정치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 우리 사회는 정치로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가장 뒤진 분야가 정치라고 한다. 정치가 이렇게 뒤진 것은 정치인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국민의 정치 의식이 뒤져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국민의 정치의식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가톨릭 교회가 정치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알아보자. 1. 정치란 무엇인가 인간은 사회 생활을 하고 있다. 인간이 형성하는 사회는 권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회의 권력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곧 정치이다. 이러한 정치의 목적은 사회의 공동선을 진작시키는 것이다. 그러기에 정치는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것으로 인간의 존엄성과 인격성을 실현하는 모든 가치를 존중하여야 한다. 정치는 인간 사회의 선택적인 요소가 아니라 필수적인 요소이다. 왜냐하면 정치는 인간 사회의 질서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개인과 개인, 집단과 집단, 개인과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알력을 해소하고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실 인간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서로 더 많은 것을 차지하고 누리기를 원한다. 이러한 원의 때문에 한 사회에서 생활하는 주체들 사이에 알력은 일어나기 마련이다. 정치는 사회 주체들 사이에 일어나는 알력을 공동선의 관점에서 해결하고 개인과 가정 그리고 단체들이 자기 완성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관계를 공동체의 목표에로 총체적으로 지향하도록 사회를 가꾸는 기능이다. 그래서 혹자는 ‘정치는 예술’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러한 정치의 주된 대상은 인간이며, 정치에서 다루는 것은 인간의 삶 전체이다. 정치가 인간의 삶과 관련되는 한 정치는 윤리적인 것이다. 따라서 정치는 신앙과 윤리를 가르치는 교회의 교도권의 대상이다. 가톨릭 교회는 정치의 자율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교회가 정치에 대한 윤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교도권의 역할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2. 복음화와 정치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복음선포를 위해서이다.(참조. 현대의 복음선교, 14) 교회는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교회의 복음선포 활동은 예비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대 사회가 하느님의 뜻에 부합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든 활동에까지 미친다. 결국 “교회는 인류의 세속적인 문제들에 대해 무관심하면서 오직 종교적인 분야에서 자신의 임무에 한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수용하지 않고”(현대의 복음선교, 34), 사회가 요구하는 정의를 위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복음화의 내면적 역동성에서 유래하는 이러한 활동은 정치적 영역에까지 그 영향을 미친다. 결국 교회의 복음화 활동은 정치를 포함한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그 대상으로 한다. 따라서 정치 역시 복음화의 대상이다. 정치의 복음화는 정치인의 복음화와 더불어 제도의 복음화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우리 나라와 같이 정치가 혼탁하고 타락한 사회에서 정치의 복음화는 더욱 절실히 요구된다. 올해 전반기에 신문지상을 장식했던 각종 게이트, 국가 원수 세 아들의 경악스러운 비리, 국회의원들의 추잡한 행태 등은 정치인들이 복음화 되지 않았기에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리고 공산주의와 같은 잘못된 정치제도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독재 등은 정치제도가 복음화 되지 않아서 일어나는 일이다. 정치의 복음화는 정치인들과 정치제도가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의 존엄성과 영원한 구원에로 부르심을 받은 인간의 소명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정치인과 정치제도가 그리스도교의 사회원리(인간존엄성의 원리, 공동선의 원리, 연대성의 원리, 보조성의 원리)를 현실 사회에서 실현할 때 정치의 복음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3. 피해야 할 두 가지 경향 정치와 관련하여 그리스도인들이 피해야 할 두 가지 경향이 있다. 첫째, 하늘나라의 성장과 세속적인 발전을 동질화하는 것이다. 세속의 성화 혹은 성직자 지상주의를 통해서 세상을 교회에 종속시키거나 하늘나라의 성장과 세상의 발전을 하나로 봄으로써 둘을 구별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경향이다. 결국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초자연적 개입을 통해 실현되는 것으로 보지 않고, 현 사회의 문명과 도덕의 성장을 통해 성취되는 것으로 보는 프로테스탄트의 근본주의는 받아들여질 수 없다. 둘째, 그리스도를 세속적인 해방자, 신앙생활을 정치적·경제적 억압에서의 해방을 성취하는 과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정치적 혁명가, 나자렛의 혁명가로 간주하고 교회생활과 신앙행위를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추구하는 활동으로 간주하고 사람들이 사회적-정치적 직무를 통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보는 해방신학의 편협한 사고는 인정될 수 없다. 해방신학의 결정적인 잘못은 “지상의 현세적인 예속으로부터 해방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며, 죄에서의 해방은 부차적인 자리에 두는 것이다.”( 자유의 전갈, 서론) 사실 교회가 가르치는 해방은 무엇보다 먼저 죄에서의 해방이다. 교회가 문화적·경제적·사회적·정치적 질서 등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예속상태에서 해방을 요구하는데, 이 모든 예속은 죄에서 유래하기에 먼저 죄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4. 교회와 정치 교회는 정권 장악을 목표로 하지 않지만 인간구원과 관련된 활동을 하기에 인간의 삶과 관련된 정치에 대하여 윤리적-종교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교회의 당연한 권리이며 의무이다. 따라서 교회는 정당을 넘어서서 존재하며 윤리적-종교적인 요소들과 관련된 정치적 내용을 판단할 수 있다. 이러한 판단은 정치적인 비판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에 따라 수행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어떤 정치적인 단체에 속박되거나 예속됨이 없이 정치가 하느님의 법을 무시할 때에 이를 비판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사형제도에 대하여 교회는 비판을 가할 수 있으며, 서명운동을 통하여 국민을 계몽하고 사형제도의 폐지를 건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사형제도의 폐지가 어떤 정당의 정강(政綱)이기 때문에 교회가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이 하느님의 법이기 때문에 교회가 활동하는 것이다. 비록 교회가 정치 현실에 대하여 윤리적-종교적인 요소에 대하여 비판할 권한이 있다 하더라도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금지된다. 성직자와 수도자의 정치 참여가 금지된다고 하더라도 국민으로서 자신의 선거권을 행사하는 것이 금지되지는 않는다. 다만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성직자나 수도자가 국회와 정부조직 및 노동조합의 지도층에서 능동적인 역할을 수행해서는 안된다.(교회법 287조 2항) 왜냐하면 “사회생활의 조직과 정치 구조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교회 사목자의 일이 아니며”(자유의 자각, 80) 이러한 과업은 평신도 고유의 소명이기 때문이다. 정치분야에서의 활동은 우선적으로 평신도들에게 맡겨져 있다. “평신도들은 현세적 질서의 쇄신을 자신들의 의무로 여겨야 한다. 이 일에 있어서 따라야 할 윤리 법칙을 가르치고 유권적 해석을 내리는 것은 성직계의 의무이겠지만 … 평신도들은 자발적인 구상과 계획으로 사람들의 정신과 풍습, 사회 공동체의 법제와 조직을 그리스도화 하는 것을 자신의 의무로 생각해야 한다.”(민족들의 발전, 81) 달리 말해서 평신도들은 신앙과 윤리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정치를 복음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글을 맺으며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에 접어들었다. 정치의 계절이 되면 으레 교회 안에서 정치활동을 하는 교우들을 만나게 된다. 이럴 때 우리는 평신도들은 각자 다양한 정치적 신념을 가질 수 있으며 정치활동은 평신도 고유의 직무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교회가 정치분야에서 평신도들의 다양한 정치적 인식을 수용하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필연적으로 일치를, 의심스러울 때 자유를, 모든 것에서 애덕을” 실현해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행동기준에 따르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한 본당에서 서로 다른 정당이나 후보자를 지지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열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정치적 활동을 하는 “신자들은 개인적으로나 단체적으로 그리스도교적 양심에 따라 시민으로서 자신 이름으로 행하는 일과 교회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과, 교회의 이름으로 사목자들과 함께 행하는 일을 명백히 구별하여야 한다.”(사목헌장, 76) 따라서 신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따르는 행동을 마치 교회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인 양, 사목자들의 의향인 양 포장을 하는 것은 교회를 정치집단으로 격하시키는 행위가 된다. 평신도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한 것은 이 세상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가꾸어 가야 할 자신의 본분을 잊는 것이다. 따라서 평신도들은 정치를 복음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리하여 이 사회가 더욱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장소가 되는 데 한몫 기여해야 한다. [월간 빛, 2002년 11월호, 김명현 디모테오 신부(대구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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