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28)
32.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이유
우리는 지난 4주간 동안 육화의 신비(“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빠스카의 신비(“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파스카 신비는, 사도들과 그 뒤를 이어 교회가 세상에 전파해야 할 기쁜 소식의 핵심이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구원자이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서 “단 한 번”(히브 9,26)에 이루어졌다(가톨릭교회교리서 571항).
육화의 신비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지극한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거부했습니다. 사람이 되신 성자 하느님을 배척하고 급기야는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 눈에는 예수님이 선택된 백성의 근본 제도를 거슬러 행동하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한 제도들이란,
- 성문화된 계율을 완전히 지켜 율법에 복종하며, 바리사이들의 주장대로 구전되는 해석까지도 받아들임으로써 율법에 복종함 ;
- 하느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머무르시는 거룩한 장소로서 예루살렘 성전이 지닌 중심적 특성 ;
- 어떤 인간도 그 영광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유일신에 대한 신앙 등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576항).
1) 예수님과 율법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급 사건을 통해서 “유일하신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었고, 시나이 산에서 그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습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충실할 것을 맹세했습니다. 그 구체적인 방법이 율법(십계명과 모세오경에 나오는 여러 가지 규정들)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도 율법 준수를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과 땅이 없어지기 전에는, 모든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율법에서 한 자 한 획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마태 5,17-18).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율법을 문자 그대로 지키는 것보다 율법의 근본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마르 2,27). 당시 이스라엘의 율법은 가난한 사람들이나 병자들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인들의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들은 안식일 규정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종교 지도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의 어려운 처지를 고려하지 않고, 이들을 죄인으로 매도했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시려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정결예법이나 안식일 규정을 어기며 사는 이들을 스스럼없이 만나셨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모습이 당시 종교 지도자들에게는 충격이었고, 적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2) 예수님과 성전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은 율법만큼이나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스라엘에는 성전이 오직 하나(예루살렘 성전)뿐이기에 소중했습니다. 또한 성전은 율법을 보완해 줄 수 있기에 중요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을 완전히 준수할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율법 앞에서는 누구나 죄인일 수밖에 없습니다. 성전에서 거행되는 속죄 제사는, 우리들의 고해성사처럼, 율법 준수의 부족함을 채워줄 수 있었습니다. 성전은 예수님께도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신 지 40일 만에 성전에서 봉헌되셨고, 공생활 동안 유다인들의 큰 명절에는 주기적으로 예루살렘을 순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당신 아버지의 거처이며,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성전 앞뜰에서 장사하던 이들을 내쫓으시고, 성전 파괴를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보시기에 당시 성전은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게 해 주는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성전에서 하느님과 불경스런 물물거래를 하려고 했습니다. “내가 제물을 이렇게 많이 바치니까 하느님께서는 내게 복을 주셔야 한다.”는 식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성전을 세우시고자 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사람들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확실한 거처”라고 소개하심으로써 당신 자신을 성전과 동일시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고, 성전 파괴를 예고하시는 그분의 말씀만 문제로 삼아 그분을 죽이려는 결의를 굳게 했습니다.
3) 유일한 하느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신앙과 예수님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과 예루살렘 성전 때문에 예수님을 반대하였지만, 그들에게 진정으로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하느님과 동일시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이스라엘은 오랜 역사적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은 오직 한 분뿐이시다”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눈 앞에 계신 예수님은 분명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내가 하느님과 같다”고 주장하니 도대체 말이 안됩니다. 신성모독입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예수님은 처형당해야 마땅하다고 보았습니다.
4) 완고한 마음(마르 3,5)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십자가에 못박은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죄악입니다. 사람들이 “율법과 성전과 하느님의 본성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이해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생명의 말씀(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귀를 막고 외면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어둠이 빛을 거부하듯이 말입니다.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지만 어둠은 그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분께서 당신 땅에 오셨지만 그분의 백성은 그분을 맞아들이지 않았다.(요한 1,5.11)
[2013년 5월 12일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의정부주보 5-7면, 강신모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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