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교리상식] (109) 12사도에 대해서 알고 싶어요 (13) 마티아 마티아는 예수님께서 친히 사도로 택하신 제자는 아닙니다. 마티아는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 이스카리옷 대신으로 사도단이 뽑은 사도입니다. 열두 사도 이야기 마지막으로 이번 호에는 마티아 사도에 대해 알아봅니다. 성경에서 본 마티아 신약성경에서 마티아는 사도행전에서 딱 두 번 나옵니다. 마티아를 사도로 선출하는 대목에서입니다(사도 1,13.26).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한 사도는 다른 제자들과 성모님과 다른 여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마티아가 사도로 뽑힌 것은 이때쯤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당시 모습(사도 1,15-26)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하루는 백스무 명가량 되는 형제들이 모여 있을 때 베드로가 일어나 유다 이스카리옷의 직책을 대신할 사도를 뽑는 문제와 관련해서 발언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지내시는 동안 줄곧 우리와 동행한 이들 가운데에서, 곧 요한이 세례를 주던 때부터 시작하여 예수님께서 우리를 떠나 승천하신 날까지 그렇게 한 이들 가운데서에서"(사도 1, 21-22) 사도를 뽑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제안에 따라 바르사빠스라고도 하고 유스투스라는 별명도 지닌 요셉과 마티아 두 사람을 가려서 앞에 세우고 나서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아 마티아를 사도로 선출하게 됩니다. 이 대목에서 마티아의 신상에 대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마티아는 예수님 공생활 초기부터 다른 사도들과 줄곧 함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예수님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예수님 수난과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까지 목격한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티아는 처음부터 열두 사도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예수님을 측근에서 따라 다니던 가까운 제자에 속했으리라고 추정할 수 있겠지요. 후대 전설에 따르면, 마티아가 예수님의 일흔 두 제자(루카 10,1-2) 가운데 하나라고도 하는데,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전승과 전설에서 본 마티아 마티아는 사도단에 합류한 후 처음에는 유다 지방에서, 나중에는 콜키스(오늘날 흑해 동부 그루지아 일대)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했다고 합니다. 마티아 사도는 세바스토폴리스(오늘날 흑해 동부 연안 도시 수후미)에서 죽어 그곳에 묻혔다가 로마 제국에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성녀 헬레나(248?~330)에 의해 로마로 옮겨졌습니다. 그후 다시 독일 남서부 국경 도시 트리어로 이장됐습니다. 그러나 다른 설도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마티아 사도는 유다 지방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첫 순교자 스테파노처럼 예루살렘에서 유다인들에 의해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유다인들은 마티아 사도를 돌로 쳐 죽인 후에 다시 도끼로 목을 쳤다고 합니다. 유해는 나중에 로마로 옮겨졌다가 다시 트리어로 옮겨졌다고 하지요. 트리어로 옮겨진 마티아 사도의 유해는 베네딕토 수도원 성 마티아 성당에 안치됐다고 합니다. 트리어는 마티아 사도를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트리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마티아 사도는 유다 지파 출신으로, 베들레헴의 지체 높은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마티아 사도 축일은 5월 14일에 지냅니다. 예전에 부르던 '마지아'라는 세례명은 마티아를 한자식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마티아 사도의 이름과 관련해 잠시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마티아라는 이름은 당시 그리스어 권에서는 흔한 이름이었다고 합니다. 이 이름은 히브리어 '마티티아'에서 유래하는데 "야훼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흔한 이름인 마티아가 제비뽑기를 통해서 마침내 유다 이스카리옷을 대신해 열두 사도단에 합류한 것은 그 이름이 뜻하는 그대로 "야훼의 선물", "하느님 은총" 덕분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고 하느님 자녀가 된 것은 우리 자신이 잘 나서라고 보시는지요, 아니면 참으로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보시는지요. [평화신문, 2008년 9월 28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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