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교회, 새 이스라엘
“교회가 뭔가요?” 이렇게 질문하면 사람들은 흔히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다니는 곳’ 등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와 연관 지어 대답합니다. 하지만 성당 건물, 교회 건물 같은 건축물을 두고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교회’라는 말의 한 부분만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에클레시아(ecclesia)’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말 ‘?κ(엑 : ?로부터, 밖으로) - καλε?ν(칼레인 : 부르다)’에서 비롯된 것으로 ‘불러 모음’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종교적인 성격을 지닌 백성의 집회를, 구약에서는 하느님 앞에 모인 선택된 백성들의 집회를 말합니다.
그래서 교회라는 말은 장소보다는 ‘모임’과 그 ‘구성원’에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敎會)’라는 우리말 번역도 ‘가르침(敎)에 따른 모임(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느님께 부름 받아 그분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입니다. 이 교회에 대하여 「가톨릭교회 교리서」(이하 ‘교리서’)가 가르치는 것과 교리서가 인용하는 성경구절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교회’에 대한 교리서의 가르침
‘교회’에 대해 교리서는 인류의 빛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이시며, 교회는 - 교부들이 즐겨 사용한 비유처럼 - 이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달과 같다고 규정합니다. 교회에 대한 믿음은 하느님에 대한 신앙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748-750항).
이 교회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진 시나이 산의 집회를 계승한 모임으로서(751-752항), 양 우리, 하느님의 밭, 하느님의 건물, 하늘의 예루살렘, 어린양의 신부 등의 상징들로 이해되었습니다(753-757항).
교회는 성부의 심오한 계획 안에서 성자 그리스도께서 세우셨으며, 성령을 통하여 나타나 영광 중에 완성될 ‘불러 모음’입니다.
교회는 ‘만물의 목적’이라고 불릴 만큼 창조 때부터 준비된 것이며, 특히 아브라함을 부르고 이스라엘을 백성으로 선택하심으로써 그 준비가 구체화됩니다.
그리고 때가 찼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양 떼를 모으시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열두사도들을 뽑으심으로써, 무엇보다 십자가를 통해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심으로써 교회가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끝으로 성령께서 이 교회를 끊임없이 거룩하게 하시도록 파견됨으로써 교회가 그 완성을 향하여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758-769항).
역사 안에 있으나 동시에 역사를 초월하는 가시적이면서도 영적 실재인 교회는 하느님과 인간의 결합의 신비이며, 보이지 않는 은총을 간직하고 나누기에 구원의 보편적 성사입니다(770-780항).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사제직, 예언자직, 왕직이라는 그리스도의 직분에 참여합니다(781-786항).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이자 신부로서 그분과 깊은 일치를 이루며, 지체의 다양성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향한 당신의 통치권을 펼치시도록 봉사합니다(787-796항).
또한 교회는 성령의 성전으로서 숨은 원리인 그리스도의 성령을 통해 참으로 유익한 모든 활동과 직무를 수행하고 은사를 꽃피워 갑니다(797-810항).
‘교회’에 대한 교리의 근거가 되는 주요 말씀들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이에 대해 이해한 바를 교리로 체계화시키는 이들의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 공동체는 자신의 정체성을, 역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확립해 갑니다.
‘교회’에 대해 교리서가 인용한 성경구절 가운데 일부를 정리해 봅니다(왼쪽 표 참조).
이러한 ‘교회에 대한 교회의 이해’는 한 사람이 성찰한 결과물이 아닙니다. 이는 바로 그리스도의 신비체이자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의 이해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 아래 ‘함께’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함께’ 이를 선포합니다.
열두 성문과 열두 초석
교회와 관련된 이러한 주제들 중 ‘교회, 새 이스라엘’이라는 주제는 묵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시를 통해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성문이 있었습니다. 그 열두 성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는데, 이스라엘 자손들의 열두 지파 이름이 하나씩 적혀있었습니다. … 그 도성의 성벽에는 열두 초석이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있었습니다” (묵시 21,12.14).
이 구절에 나오는 ‘도성’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으로서 어린양의 아내가 될 신부로 등장합니다(묵시 21,9-10). 곧, 새 예루살렘은 태초부터 계획되고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의 때에 등장하여 영광 중에 완성될 교회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의 성문에는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적혀있고, 초석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이 점은 열두 지파로 구성된 이스라엘 민족과 열두 사도를 기초로 하는 어린양의 신부 교회가 어떠한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교회는 하느님의 선택된 민족 이스라엘을 ‘계승’하는 집회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우리는 교리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말은] 그리스 말 구약성경에서 하느님 앞에 모인 선택된 백성들의 집회, 특히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율법을 받아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세워진 시나이 산의 집회에 자주 사용된 용어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초기 공동체는 스스로를 ‘교회(Ecclesia)’라고 부름으로써 자신들이 그 집회의 계승자임을 자처한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극변에 이르기까지 당신의 백성을 교회로 ‘불러 모으신다’”(교리서, 751항).
교회를 ‘새 이스라엘’로 보는 관점은 교회헌장에서도 발견됩니다. “사막을 헤매던 혈족 이스라엘이 이미 하느님의 교회라고 불렸던 것처럼, 현세를 거닐며 미래의 영원한 나라를 찾고 있는 새 이스라엘도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불린다”(9항).
교회, 새 이스라엘
교회는 단순한 장소나 단체를 뜻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께 부름 받아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인 교회는 바로 새 이스라엘입니다.
새 이스라엘이란 구원사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고유한 위치를 존중하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더 큰 공동체, 곧 이방인들인 우리들까지도 초대된 보편적인 공동체를 뜻합니다.
교회가 새 이스라엘이기에, 이스라엘의 선조 아브라함은, 모세와 이집트 탈출 사건은, 약속의 땅을 쟁취하고 이스라엘 왕국이 세워짐은, 예언자들의 호소는, 그리고 바빌론 유배와 유배로부터 돌아오는 사건은 우리에게도 큰 의미를 지닙니다. 구약에 적힌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말씀이 바로 교회를 향한 주님의 말씀이 됩니다.
우리는 교회에 대해 생각할 때, 이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모임으로는 여기지만, 새 이스라엘이라는 성서적 전망을 간과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교회는 진정 구약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의 모임이기에 모든 구약과 신약을 끌어안고 있고, 태초부터 성부께서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계획하신 공동체이기에 만물과 모든 시간을 품고 있는 ‘새 이스라엘’입니다.
* 고성균 세례자 요한 - 도미니코수도회 수사. 단순하고 즐겁게 형제들과 어울려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의 사명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현재 한국 도미니칸 평신도회 영적 보조자 소임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5월호, 고성균 세례자 요한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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