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상식 교리상식] (120) 성사 : 치유의 성사 (3) 병자성사 병자성사는 말 그대로 질병으로 말미암아 육체적 정신적으로 큰 어려움에 있는 환자가 받는 성사입니다. 이 성사를 통해서 병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얻고 또 주님의 뜻이라면 치유 은혜까지 받기도 하기 때문에 병자성사는 고해성사와 함께 치유성사라고 부릅니다. 예전에는 종부성사라고도 했지요. 병자성사의 근거 예수님께서는 죄인의 죄를 용서하셨을 뿐 아니라 병자의 질병을 낫게 해주셨습니다. 제자들을 파견하셨을 때도 병자들을 고쳐주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그 말씀대로 병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지요(마르 6,7-13). 또 초대 교회에서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야고 5,14-15). 이를 근거로 교회는 앓는 사람을 위한 이 예식을 예수님에게 기원을 두는 일곱 성사 가운데 하나, 곧 병자성사로 인정했습니다. 병자성사의 수혜자와 집전자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세례를 받은 신자여야 합니다.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병자성사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병자성사는 말 그대로 병자가 받는 성사입니다. 그러나 감기 몸살에 걸린 사람이 받는 성사가 아니라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 곧 생명이 위중한 경우에 받는 성사입니다. 그렇다고 죽음에 임박했을 때만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병자성사는 질병으로 또는 노령으로 급격히 쇠약해졌을 때에 또 중병을 앓고 있거나 큰 수술을 받기 직전에도 받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병자성사는 여러 번 받을 수 있습니다. 곧 병자성사를 받은 후에 병이 회복했다가 다시 중병에 걸렸을 경우나 병이 더욱 위중해졌을 경우에도 받을 수 있습니다. 병자성사는 사제들만, 곧 주교와 신부만이 집전할 수 있지요. 부제는 병자성사를 집전할 수 없습니다. 병자성사의 거행 방법 병자성사는 성당에서 가정에서 또는 병원에서 한 사람을 위해서뿐 아니라 여러 사람을 위해서도 거행할 수 있습니다. 병자성사는 참회 예식으로 시작하며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말씀 전례로 이어집니다. 말씀 전례가 끝나면 사제는 침묵 중에 병자에게 안수하며 기도합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성된 성유를 병자의 이마와 두 손에 바르면서(도유) 기도를 바칩니다. 이 안수와 도유가 병자성사의 핵심이지요. 그러고 나서 환자에게 성체를 영하게 합니다. 사정이 허락한다면 환자에게 병자성사를 집전하기 전에 먼저 고해성사를 집전하고 병자성사 후에는 성체를 영하게 할 수 있습니다. 이 성체는 지상에서 영원한 생명에로 건너가기 위한 마지막 순례길에 필요한 '노자'(路資) 성체로서, 전에는 봉성체라고도 불렀습니다만 천주교 용어위원회에서는 '병자 영성체'로 통일하도록 했지요. 병자성사는 미사 중에 거행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사 중에 거행하는 것이 매우 합당하다고 교회는 권고하고 있습니다. 비록 가정이나 병원 입원실에서 거행하는 병자성사라 하더라도 공적 전례로서 공동체 예식이기에 가족이나 신자들이 모인 가운데서 거행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병자성사의 효과 병자성사는 무엇보다도 중병에 걸린 또는 노쇠한 환자가 그로 인한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위로와 평화와 용기를 주는 성사입니다. 성령의 힘을 통해 주시는 이런 은총은 우선적으로 환자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한 것이지만 하느님의 뜻이라면 환자의 육체적 질병도 치유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치유에 집착하기보다는 병고를 통해 주시는 하느님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며 그 뜻대로 이뤄지기를 기도하며 의탁하는 자세가 더욱 필요합니다. 나아가 병자성사를 통해 환자는 고해성사로 미처 고하지 못한 죄들에 대해서도 용서받습니다. 병자성사의 은총은 또한 환자가 자신의 고통을 그리스도의 수난에 결합시키도록 도와줍니다. 여기에서 환자의 고통은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곧 환자는 자신의 고통으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고, 이를 통해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선익에 기여하게 되지요. [평화신문, 2008년 12월 14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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