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함 16호] 지각 전례, 과연 유효한가 “얼마 전에 볼일이 있어 다른 본당에 가서 미사 참여를 했습니다. 그런데 영성체 시간에 해설자가 ‘영세하지 않은 사람, 죄 중에 있는 사람, 그리고 독서 후에 들어 온 사람은 영성체를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1985년 견진성사를 받을 때 부득이한 사정으로 독서는 물론 복음도 끝나고 강론 도중에 허둥지둥 들어가서 성체도 영하고 견진 · 안수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받은 견진성사는 과연 유효한지 또 그날 성체를 영했는데 모령 성체는 아닌지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지도 이미 28년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교회는 안팎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공의회 이전의 잔재가 가끔 보입니다. 미사 드리는 사제들 가운데 일부는 과거의 습관을 버리지 못해 제단에서 개회 인사를 하고 본기도를 바치며 심지어는 강론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옛 인습은 공의회 이전 사람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공의회 이후에 서품을 받은 사제들이나 세례를 받은 교우들에게도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배 신부나 교우들에게서 무의식 중에 배워 익혔기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인간 사회의 전통이나 풍습은 옳든 그르든 면면히 이어지는 모양입니다. 이번에 질문을 제기한 교우도 세례를 받은 지는 8년이 되었지만 과거의 전통과 현재의 새 환경 사이에 갈등을 겪고 있는 신자들 가운데 한 분인 것 같습니다. 이미 견진성사까지 받았지만 교리, 전례, 신앙 생활 등 신자로서의 생활 전반에 걸쳐 아직도 모르고 자신 없는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 처지에서 우연히 다른 본당에서 해설자가 들려준 말에 고민 거리가 생긴 것입니다. “영세하지 않은 사람, 죄 중에 있는 사람, 그리고 독서 후에 들어온 사람은 성체를 영하지 마십시오.” 하는 이 말을 들은 그 교우는 아차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럼 내가 받은 견진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나는 강론 도중에 겨우 도착하여 견진성사를 받았는데, 혹시 그 견진이 무효가 된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날 나는 모령 성체(冒領聖體)를 했을는지도 모르겠는데?” 잘은 모르지만 그 해설자는 신앙 생활을 오래 한 구교우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구교우들은 본당 신부님이나 부모님으로부터 이와 비슷한 말을 자주 들었기 때문입니다. 혹시 구교우가 아니더라도 다른 선배 교우들에게 배웠을 것입니다. 그만큼 선배 교우들이 후배 교우들에게 주는 영향은 큽니다. 아무튼 그 해설자는 영성체 조건에 대한 옛 가르침은 잘 알고는 있지만 새로운 지침이나 규정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기회를 통해 질문자가 궁금해 하는 것은 물론 올바른 전례와 성사에 대한 몇 가지 기본 상식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성사를 유효하게 하는 조건 성사란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교회에 맡기신 은총을 주는 거룩한 표징 또는 상징입니다. 모든 성사는 유효성과 관계되는 본질적인 부분과 유효성과는 상관없지만 매우 유익하고 필요한 준비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례성사의 본질적인 부분은 이마에 물을 붓거나 물에 잠그면서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000에게 세례를 줍니다.”라는 경문을 외는 세례의 본예식입니다. 그 외에 성유를 바르거나 흰옷을 입히거나 촛불을 켜서 주는 것은 모두 세례를 설명하는 예식입니다. 질문자가 궁금해 하는 견진성사의 핵심 요소는 성유 도유입니다. 이 도유로 견진자는 지워지지 않는 성령의 날인을 받아 더욱 완전히 그리스도를 닮고 그분의 향기를 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안수는 유효성과는 관계없지만 예식을 보완하고 설명하는 중요한 예식입니다(견진성사 예식서, 일러두기 9항). 따라서 질문자는 비록 강론 중에 예식에 참여하였을지라도 견진성사의 본예식에는 다 참여하였기 때문에 견진을 유효하게 다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전혀 걱정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래에 설명하겠지만 이왕이면 처음부터 참석했더라면 더욱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성사 전례의 첫부분인 말씀의 전례의 비중 모든 성사에는 유효성과 관계되는 핵심적인 부분이 있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나머지 다른 부분에는 참석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말인지, 이를테면 주일 미사 참여 의무를 채우려면 성찬의 전례가 시작되기 전에만 참석하면 된다는 말인가 하는 의문이 나오게 됩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말씀의 전례를 다소 등한시하던 공의회 이전에도 교회는 미사 참례를 올바로 하려면 처음부터 끝까지 참석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해 왔습니다. 단지 부득이한 경우에는 강론 직후부터 참석해도 주일 미사 의무는 깨뜨리지 않는다는 선에서 묵인했을 따름입니다. 그것도 어디까지나 교우들에게 양심의 불안을 주지 않기 위해 학자들의 의견을 인정하는 정도였습니다. 따라서 말씀의 전례의 의미와 가치를 그토록 역설한 공의회 이후에야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일 의무의 준수나 성사의 유효성 여부를 떠나서 미사를 비롯한 모든 성사 전례는 처음부터 참석해야 온전한 참여가 됩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모든 성사 거행은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 공동체의 공식 예배인 전례 행사입니다. 따라서 교회 전체를 대변하는 최소한의 전례 집회를 이루어 거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전례 집회의 구성은 성사 거행을 위한 기본 바탕일 뿐 아니라 첫 번째 예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공식 행사인 미사에 지각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정도로 생각하는데, 이것은 단지 예의 문제만이 아니라 전례의 본질상 요구되는 문제입니다. 학생이 언제부터 출석해야 수업이 유효한가를 따질 수 있겠습니까.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가 지각할 수 없듯이, 신자도 지각해선 안 됩니다. 신자는 전례의 공동 거행자입니다. 2) 모든 성사는 하느님과 그분의 구원 업적을 재현하기 때문에 신앙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앙인의 공식 표지인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그 누구든지 다른 성사를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앙은 복음의 말씀을 들어야 생기고 자랍니다(사제 직무 교령, 4항 참조). 누구든지 들어야 알고, 알아야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앙의 성사에 올바로 참여하고, 그 은총을 풍성히 얻으려면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 잠자는 신앙을 일깨우고 약해진 신앙을 강화시켜야 합니다. 공의회 이후에 개정된 모든 성사 예식의 첫부분에 말씀의 전례가 자리잡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하다 못해 대부분 개별적으로 거행되는 고해성사 예식에도 참회자의 회개를 돕고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선포하는 성서 독서 부분이 있습니다(고해성사 예식서, 72-83항 참조). 3) 이런 기회에 신자들의 주요 관심사인 미사의 말씀의 전례에 관해 한두 가지 설명을 덧붙이겠습니다. 우리는 미사를, 주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현존하신다고 해서 아예 성체성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현존은 빵과 포도주의 축성으로만 실현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성서가 봉독될 때에 하느님이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면서 또한 그리스도께서 그 말씀 속에 현존하시면서 복음을 선포”(전례 헌장, 7항. 33항; 미사 경본 총지침, 9항 참조)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독서를 통해 성서 말씀을 들을 때 하느님은 바로 그 말씀 안에 생생하게 현존하시면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미사를 성찬, 곧 거룩한 식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식사의 본음식이라면 그 누구도 주저하지 않고 먼저 주께서 먹고 마시라고 주신 성체와 성혈을 연상할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 미사 때에는 두 종류의 식탁과 음식이 마련됩니다. 말씀의 전례는 말씀의 식탁을 마련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제공하고, 성찬의 전례는 성찬의 식탁을 마련하여 성체와 성혈을 양식으로 제공합니다(계시 헌장, 21항; 미사 경본 총지침, 8항).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독서나 복음을 듣지 않은 미사는 그만큼 불완전한 미사 참여가 되는 것입니다. 어디까지 참여해야 미사가 유효하냐를 따지기 전에 하느님이 베푸시는 은총의 잔치에 처음부터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그분과 더욱더 일치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신자다운 자세일 것입니다. 모령 성체(冒領聖體) 요즈음은 잘 쓰지 않는 모령 성체라는 말은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1고린 11,27). 우리가 영성체 예식 때에 받아 모시는 성체와 성혈은 하느님의 아들이며 주님이신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과 피입니다. 이러한 성체 성혈을 합당하게 받아 모시려면 먼저 축성된 빵과 포도주가 참다운 주님의 몸과 피임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비신자나 예비 신자들에게는 영성체를 허락하지 않습니다. 영성체에 필요한 또 하나의 조건은 그 성체와 성혈을 주님을 모시듯이 공경하며 모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체께 대한 신앙이 있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눈에는 빵과 포도주로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아무런 공경심 없이 영하는 무례를 범하기 쉽습니다. 마지막으로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주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려면, 그에 합당하게 몸과 마음이 거룩하고 깨끗해야 합니다. 깨끗한 몸은 무엇보다도 영성체 전 한 시간 동안 음식이나 술 등을 들지 않는 공심재(公心齊)를 지킴으로써 준비합니다. 깨끗한 마음은 지은 죄를 뉘우치고 용서를 받음으로써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주의 기도, 평화 예식 등 대부분의 영성체 전 준비 예식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비록 미사 시작 때에 참회를 하였지만 성체를 영하는 마당에서 다시금 부족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성체께 대한 지나친 경외심으로 말미암아 영성체를 하지 않는 교우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특별히 큰 죄가 없으면 영성체를 하여 더욱 완전히 미사 참여를 하라는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전례 헌장, 55항) 대부분의 교우들이 미사 때마다 영성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성체 권고가 중죄를 짓고도 영성체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전에 고해성사를 볼 수 없었다면, 성체를 영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진심으로 뉘우치고 빠른 시일 내에 고해성사를 보겠다는 결심을 하고서 영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요즈음은 모령 성체라는 말을 잘 하지 않지만, 준비 없는 영성체나 큰 죄로 더럽혀진 상태의 영성체는 예나 지금이나 성체께 대한 불경이며, 신앙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경향잡지, 1993년 8월호, 이홍기 요한(부산 가톨릭 대학 학장 ·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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