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24)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용서의 은총으로 실현되는 그리스도의 참 평화
-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다. 평화는 정의의 결과이고 사랑의 열매다. 사진은 평화의 도시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과 들판. [CNS 자료사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정전 60년이 되도록 화해와 일치는 커녕 여전히 불신과 대결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에 참다운 화해와 평화가 깃들기를 기도하며 평화에 대해 알아봅니다.
◇ 살펴봅시다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24년 전인 1989년 서울에서 개최된 제44차 세계성체대회의 주제였습니다. 분단된 한반도에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다운 평화가 깃들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 우리는 평화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전쟁이 없는 상태가 평화일까요. 아닙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이 없는 상태만도 아니고 적대 세력들 사이의 균형을 보장하는 데 그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선익이 보호되고, 사람들 사이에 자유로운 의사 소통이 이루어지고 사람들과 민족들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형제애의 끊임없는 실천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평화는 이 지상에서 실현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렇게 가르침니다. "평화는 질서의 고요함이다. 평화는 정의의 결과이며 사랑의 결실이다"(2304항).
정의의 결과이자 사랑의 결실인 평화를 우리에게 주시는 유일한 분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는 지상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를 흘리심으로써 원수 되었던 모든 요소를 없이하셨고, 인간을 하느님과 화해시키셨으며, 당신 교회를 인간과 인간이 하나 되고 또한 하느님과 인류가 하나 되는 일치의 성사로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2305항).
㉡ 하느님 선물인 평화 :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19) 하고 인사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이 평화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성령의 열매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파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평화는 이렇게 하느님의 선물이지만 또한 인간이 이루어야 할 것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산상설교에서 참행복과 관련,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부활하신 후에는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인사하신 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십니다(요한 19,21). 제자들을 평화의 일꾼으로 파견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평화와 정의의 일꾼으로 행동하는 것은 특별히 평신도의 의무입니다(2442항 참조).
◇ 생각해봅시다
평화를 증진하려면 평화를 위협하는 것들을 없애거나 적어도 줄여나가고 평화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적극 추구해야 합니다.
㉠ 평화를 위협하는 것들 : 평화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것이 불평등입니다. "하나인 인간 가족의 구성원들이나 민족들 사이의 지나친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은 추문을 일으키고 사회 정의, 평등, 인간 존엄성은 물론 사회적 국제적 평화에 배치된다"(1938항). "개인들과 국가들 사이에 만연된 불의와 경제 사회 분야의 지나친 불공정과 불평등, 시기, 불신과 교만은 끊임없이 평화를 위협하며 전쟁의 원인이 된다"(2317항).
군비경쟁 또한 평화를 위협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무기의 비축을 가상의 적에게 전쟁을 단념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국가들간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유효한 방법으로 여깁니다. 그렇지만 "군비경쟁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며,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기보다 오히려 증대시킬 위험이 있다"(2315항)는 점을 교회는 분명히 합니다. "새로운 무기를 마련하는 데에 소요되는 엄청난 재원의 낭비는 가난한 사람들의 구제를 막고, 민족들의 발전을 방해한다. 과잉군비는 분쟁의 원인을 증가시키고 분쟁이 확산될 위험을 증대시킨다"(2315항).
㉡ 평화에 도움이 되는 것들 : 반면에 사회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연대성은 평화를 증진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우정' 또는 '사회적 사랑'의 원칙이라고도 하는 연대성은 "긴장을 더욱 잘 해소하며, 협상으로 갈등을 쉽게 해결하는 더욱 공정한 사회 질서를 위한 노력을 전제"(1940항)로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연대성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근로자들 사이에서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고용주와 고용인 사이에, 그리고 국가와 민족들 사이에서도 필요합니다. 세계 평화도 부분적으로는 연대성 특히 국제적 연대성에 달려 있습니다(1941항).
사랑을 실천하는 일 또한 평화를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실 평화는 사랑의 열매이기 때문입니다(1829항 참조). 공동선을 증진하는 일 역시 평화에 도움이 됩니다. 공동선은 평화를 지향할 뿐 아니라 공동선의 기초가 되는 것도 바로 평화이기 때문입니다(1909항).
평화를 증진하려면 바른 양심을 형성하도록 교육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현명한 교육은 덕을 가르치며, 인간의 약함과 잘못에서 생기는 공포, 이기심, 교만, 죄책감과 자기 만족에 대한 충동 등에서 보호하거나 이를 치유해 줍니다." 한 마디로 "양심 교육은 자유를 보장해 주며 마음의 평화를 줍니다"(1784항). 마음의 평화 곧 내적 평화가 없이는 참다운 평화를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양심 교육은 평생에게 걸쳐 이뤄져야 하는 일입니다.
◇ 한 가지 더
평화에 이르는 길은 화해입니다. 화해하지 않고는 평화에 이를 수 없습니다. 화해는 용서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용서하지 않으면 화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참으로 평화를 얻고자 한다면 회개의 은총과 함께 용서의 은총을 주시도록 하느님 아버지께 간절히 청합시다.
[평화신문, 2013년 6월 23일, 이창훈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