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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64: 악마가 정말 있다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9 조회수1,908 추천수0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64) 악마가 정말 있다면…

하느님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악마가 정말 있다면, 그가 우리 사람에게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 하느님으로부터 우리를 떼어놓는 것일까. 아니다. 우리가 아무리 하느님으로부터 도망가려 해도, 그분께서 가만 놔두지 않으실 것을, 그러면 그럴수록 그분은 더욱 맹렬하게 우리 사람에게 다가오신다는 사실을 악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니 말이다.

그러면 다른 무엇이 있을까? 우리 사람이 하느님께만 매달리게 하는 것이야말로 악마가 가장 원하는 것이 아닐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마르 12,28)하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그가 바라는 것일 수 있다. 만일 하느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이 악마가 바라는 것이라면 기가 찰 노릇이다.


오직 하느님만을 향한 사랑

마음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다른 사람을 사랑할 마음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목숨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의 조금이라도 나눌 겨를이 있을까. 정신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는데, 다른 사람에게 정신을 팔 틈이라도 있을까. 힘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하려는데, 다른 사람에게 쏟을 힘이 있을 수 있을까. 그토록 하느님을 사랑하였으니 하느님께서 상을 주실 것이라는 기대가 얼마나 큰데 그 기대를 무너뜨릴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악마는 우리에게 그렇게 철저하게 하느님을 사랑하도록 하고, 그래서 우리 각자가 하느님만을 향해 달려가도록 유혹한다. 하느님을 향해 달려가는 데 한순간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고 재촉하면서 세상과 이웃에게 절대로 한 눈 팔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르 12,28)는 예수님의 말씀이야말로 물리쳐야 할 유혹이 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내가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힘을 다해 사랑하는 하느님은 나에게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실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령 묻는다 하더라도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하고 대답하면 될 것이다(창세 4,9). 모른다는데 하느님께서 어찌하시겠는가!


이웃을 외면하라는 악마의 유혹

나 자신 지금 '살아남기'(生存)에도 겨를이 없다고 믿는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 쓰러뜨려야 하는 게 이 세상이라고 믿는다. 그 생존의 공포에서 살아남고 게다가 앞서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하느님께 매달리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쓰러뜨려야 할 그를 사랑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살아남기 위해 쓰러뜨린 그는 안됐지만, 내가 지켜야 할 아우가 아니다. 그도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백번 양보해서 이웃을 사랑하기는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 간의 관계라는 단순한 차원에서 인심을 쓴 것이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여긴다. 내 근처에 있는 궁핍하고 곤궁한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도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하느님께 큰 상을 받을 것이며,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으로 불릴(마태 5,19) 선행이다. "이웃이 가난에 빠지지 않도록 사회를 구성하고 조직하고자 애쓰는 것"(「간추린 사회교리」, 208항)은 세상일에 쓸데없이 끼어드는 일이며, 하느님을 향하는 데 방해가 되는 거추장스러운 일이 되고 만다.

그런데 교회는 "사회적 차원에서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 사회의 중개를 활용해 이웃의 삶을 개선하고 이웃의 가난을 초래하는 사회적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이라 가르치며,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밝힌다(208항).

그렇다. 악마가 있다면, 악마가 바라는 것은 그렇게 우리를 하느님께만 결합시키고, 이웃과는 생존의 공포를 이용해 떼어놓음으로써, 사회적 차원의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게 하는 것, 사회적 약자들끼리라도 연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우리는 어쩌면 그 악마의 손길에 덥석 손을 내밀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부자들에게 가난한 사람을 도우라고 재촉해야 할 의무, 가난한 사람을 존중해야 할 의무, 가난한 사람을 북돋워야 할 의무를 갖고 있습니다." 지난 호에서 소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임대사들에게 한 말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짊어진 그리스도인의 의무 그것을 교회는 사회적 차원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 즉 '연대', '사회적 정치적 애덕'이라고 밝힌다.

[평화신문, 2013년 6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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