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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25: 대관절 그가 누구건대 저런 일이?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9 조회수1,911 추천수1
[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25) 대관절 그가 누구건대 저런 일이?

예수님 보이신 기적의 힘은 인간 향한 ‘연민’


■ 울지 마라

연구소 서재 뒤쪽 창가에 나는 특별한 예수님 사진을 모시고 있다. 우리를 향해 우시는 연민의 예수님 사진이다. 나는 이 사진을 일부러 나와 가장 가까운 곳에 놓았다. 내가 한 영혼으로서 이 예수님을 특별히 좋아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사진은 나로 하여금 사제의 본분을 매일 각성시켜주는 표지이기도 하다.

“내가 너희에게 그랬듯이 너희 사제의 눈빛도 연민이 그득해야 하느니라.”

바로 지난 주(다해 연중 제10주일)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로 그 연민의 눈으로 아들을 잃은 나인의 과부를 바라보셨다. 성경은 정확하게 그 장면을,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루카 7,13)이라고 묘사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아들을 잃고 슬피 울던 저 과부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당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리를 위로하신다.

“울지 마라. 내 아들아…, 내 딸아….”

여기 하루하루 가슴가득 눈물로 지새던, 중년의 한 주부도 그런 주님 위로의 수신인이었다(월간 <가이드포스트>, 2010년 9월 호 참조). 노스캐롤라이나 주에 살고 있는 그녀의 남편은 참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몇 시간이고 대화를 나누고, 정원에서 빨간 장미를 꺾어 선물할 줄도 알았다. 그렇게 58년간 알고 사랑했던 남편이 치매에 걸렸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마치 함께 갈 수 없는 안개 속으로 사라지듯 없어져 가는 것만 같았다. 아예 생판 남이나 다름없는 성질 고약한 누군가를 돌보기란 쉬운 일도 아니었다. 그녀는 남편이 늘 건네주던 장미를 꽂아두던 꽃병을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했다.

“주님, 제 남편이 그립습니다. 몸은 저래도 어딘가에 남편의 본모습이 남아 있겠지요?”

그렇게 뜬눈으로 밤을 샌 다음날 아침, 부엌 창턱에서 붉은 빛이 도는 것이 보였다.

“저건…? 그렇지!”

앙증맞은 꽃병에 새빨간 장미가 꽂혀 있었던 것이다. 언제 어떻게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이 그 꽃을 꽂아 놓은 것임을 확신했다. 그 순간, 자신이 그간 바쳤던 기도가 떠올랐다.

“와우, 이럴 수가. 이건, 나의 이 슬픈 사정을 아시고 나에게 각별한 연민을 품고 계신 예수님께서 친히 보내 주신 선물이야!”

육신은 멀쩡해도 기억 속 저만치 멀어져간 사랑, 치매 남편을 돌보며 지쳐가던 한 여인에게 주님께서 건네신 빠알간 장미 한 송이! 혹은 삶에 지쳐, 혹은 외로움에 저려, 혹은 고통에 짓눌려 오늘도 어둔 구석에 홀로 눈물짓는 우리들을 위한 주님의 뜨거운 위로다.

오늘도 예수님의 용광로 같은 연민이 자아낸 숱한 감동 스토리가 도처에서 증언되고 있다. 예수님의 이 연민은 때론 말씀으로 때론 기적으로 그 구세경륜적 역동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성경은 시간을 관통하여 유효한 예수님의 구원활동을 이렇게 요약하여 기술한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9,35).

굉장히 입체적이다. 회당에 가면 가르치시고, 선포할 것은 선포하시고, 또 허약한 이들을 고쳐주기도 하셨다. 그때그때 그들이 필요한 여러 가지 현실적, 물질적 결핍을 채워주셨다는 얘기다. 예수님의 이 구원 활동은 단지 고상한 정신적인 활동에 머무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시장통 활동이었다.

여기서 예수님의 활동은 세 갈래로 확인된다. 요컨대, 예수님의 구원활동은 가르침, 복음 선포, 그리고 기적으로 압축된다. 우리는 지난 호에서 그 가운데 복음 선포의 핵심을 확인한 바 있다. 이제 가르침과 기적에 관심을 돌려보기로 하자.


■ 이건,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사람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말씀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다.

예수님 말씀에는 단 한마디로 유혹과 악령을 물리치는 힘이 있었다. 광야에서 40일간의 단식 중에 다가온 사탄의 유혹을 말씀 몇 마디로 물리치셨다. 악령 들린 사람에게서 악령을 쫓아낼 때에도 예수님은 말씀으로 해결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은 또한 사람을 움직이게 했고, 감히 거역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한번 접한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들을 마치시자 군중은 그분의 가르침에 몹시 놀랐다. 그분께서 자기들의 율법 학자들과는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태 7,28-29).

한마디로 청중의 반응은 경탄 그 자체였다.

“어건, 권위 있는 가르침이다. 어디서 저런 힘이 나왔을까?”

어째서 권위를 지니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 말씀과 동격으로서 세상의 역사, 자연 운행 등 모든 것을 관통하는 진리며 원리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원리는 가공할 만한 힘이 있다. 핵폭탄을 한번 떠올려 보자. 그 원리를 알면 어떻게 써먹느냐에 따라 생산력이 나올 수도, 파괴력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렇듯 사람을 살리고 죽이는 권능이 예수님 말씀에 있었다.


■ 엇박자 기적

예수님은 치유 기적, 구마 기적, 자연 기적, 음식 기적, 구원 기적 등을 다양하게 펼치셨다. 그런데 항상 엇박자로 이 기적들을 행하셨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이 기적을 구경나온 사람들이 없을 때만 행하셨다는 것이다. 이는 구경하고 싶은 이들의 목적을 충족시켜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할 때만 현장 중심으로 행하셨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당신을 과시(誇示)하기 위해 기적을 행하신 게 아니었다. 그래서 예수님의 형제들이 “이런 일을 할 바에는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십시오”(요한 7,3-5)라는 부탁을 했을 때나,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사마리아를 태워 버리자”고 제자들이 요청했을 때(루카 9,51-56 참조) 그리고 바리사이의 기적 요구(마르 8,11-13 참조)에도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할 때’에는 어김없이 기적을 행하셨다. 하혈증을 앓던 여인의 간절한 바람과 믿음이 있었을 때 치유해 주셨고(마르 5,21-34 참조), 하느님의 ‘뜻’을 드러낼 필요가 있을 때에 마귀를 쫓아내셨고(마르 1,21-28 참조), 오천이 넘는 사람들을 위하여 배불리 먹이셨다(마르 6,30-44 참조).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도록 움직인 것은 무엇보다도 그분의 ‘측은히 여기는 마음’ 곧 ‘연민’(compassion)이었다. 예수님은 연민이 많은 분이셨다. ‘연민’, ‘자비’, ‘동정’ 이런 말들은 실상 예수님을 움직이고 있던 감정들을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약하다. 이를 표현하는 히브리어의 단어 ‘라하밈’(rachamim)은 본래 애(창자, 내장, 심장) 또는 자궁을 뜻하는 ‘레헴’(rechem)의 복수형이다. 말하자면 오장육부가 꿈틀거리는 그 무엇이 예수님을 움직였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복음서에 있는 예수님이 “측은히 여겼다”는 류의 표현은 바로 인간의 ‘애간장’에서 일어나는 반응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내장의 떨림이 수반된 이 ‘연민’이 병자들과 고통당하는 이들을 위로하시며 병을 고쳐 주시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도록 예수님을 내몰았던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과연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하는 회의가 들 때가 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리고 나 자신 그 질문에 공감할 때마다, 나는 저 ‘연민’의 예수님을 떠올린다. 그러면 나를 지긋이 바라보는 시선에 내 영혼이 움찔거림을 상상으로가 아니라 촉으로 느끼게 된다. 슬프고도 사랑 그윽한 예수님의 눈빛이 한 순간의 방심도 없이 ‘나’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음을 우리는 깨달을 필요가 있다.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6월 23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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