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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65: 성을 내지도, 바보, 멍청이라 하지도 말자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6-29 조회수2,070 추천수0
[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65) 성을 내지도, '바보','멍청이'라 하지도 말자

북과 적대 관계, 이제는 그만!


살인해서는 안 된다. 너무나 당연하다. 어떤 경우라도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그런 일이 너무나 자주 벌어진다. 꼽으라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에서부터 실수에 의한 사고로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경우에 이르기까지…. 자연재해 앞에서 생명이 스러지기도 하지만, 분노나 충동으로 다른 사람의 귀한 생명을 해치기도 한다. 풍요로움에 주체를 못하는 가운데 한편에서는 속수무책으로 굶어 죽는 어린이들이 무수하다.


하느님이 인간에게 주신 선한 마음

집단과 집단 사이에 첨단 살상무기를 동원한 전쟁으로 얼마나 많은 생명이 사라졌을까! 언젠가 어느 주교님이 '평화'를 주제로 한 강론 중 20~21세기에 인류가 벌인 전쟁들과 그로 인한 사상자를 열거하는 내용을 들은 적이 있다. 좀 더 자세하게 자료를 찾아볼 생각이었지만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절망할 것 같아서다.

예수님께서는 형제에게 성을 내서도 안 되고, 바보라고 해서도 안 되고, 멍청이라고 해서도 안 된다고 당신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렇지만 살면서 성 안 내고 남에게 바보, 멍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입에 올리지는 않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으로까지 성을 내지 않고, 속으로 '바보', '멍청이'라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그런 일은 무수히 많다. 어쩌면 가까운 사이, 서로 좋은 사이였기에 성을 내고 바보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성을 내거나 바보, 멍청이라고 해놓고 미안해서 사과하고 화해하는 것이 평범한 우리 모습이다. 사람 모두에게는 하느님께서 주신 선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지나쳤네" 할 수 있고, "아니, 내가 과했네"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집단의 의식 차원으로 넘어가면 관계가 그렇게 간단히 회복되지 않는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준다. 예를 들어보자. 그리스도교가 자리를 잡고 이방 세계로 확장된 다음, 서구사회에서 유다인은 하느님을 죽인 죄(deicide)에 시달려야 했다. 이는 직접 간접으로 아주 오랫동안 반유다주의를 형성했다.

성경 말씀을 인용하면 유다인을 향해 바보, 멍청이라 불렀으며, 성을 냈다. 마침내 2차 세계대전의 수백 만 명 유다인 학살로 이어졌다. 서구사회에서 이 같은 터무니없는 짓을 멈춘 것은 불과 몇 십 년이 되지 않는다. 이 사건은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교회가 공식적으로 유다인 전체에 가한 '하느님을 죽인 죄'가 부당하다고 밝힌 것도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65)였다(비그리스도교 선언, 4항 참조).


그리스도인이라도 성내지 말자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 시대를 흔히 '동서 냉전시대'라고 불렀다. 경쟁이라 했지만 그 경쟁을 합리화하기 위해, 그리고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서로에게 성을 내고, 바보, 멍청이라고 비난했다. 그것은 점잖은 편이다. 서로를 궤멸시켜야 할 악마로 만들었으니까. 역사의 교훈을 잊은 것일까? 아니면 특정 집단 혹은 세력의 의도적 작업일까?

상대 집단을 그렇게 싸잡아 비난하고 적으로 만들면 이중 삼중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첫째, 집단 구성원을 결속시킬 수 있다. 이때 자기 집단 내의 동질감과 상대 집단에 대한 이질감은 곧잘 선과 악으로 둔갑한다. 자기 집단은 선하고 상대 집단은 악하다고 믿으려 한다. 둘째, 자연스럽게 악한 상대 집단을 무너뜨리기 위해 역량을 결집할 수 있는데, 증오심이 큰 몫을 한다. 상대 집단을 무너뜨리는 것은 부당한 증오심의 발로가 아니라 불의를 제거하고 정의를 세우는 것이라며 정당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셋째 효과는 아마도 집단 내 특정 세력의 야욕을 감추는 데 있다. 집단 안을 향한 성찰의 노력보다는 관심을 밖으로, 곧 상대 집단에 대한 경계나 비난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동서 냉전시대나 동서 사이의 관계만이 그런 것이 아니다. 남의 일만이 아닐 수 있다.

한국전쟁 이후 남북은 서로 '괴뢰'라고 손가락질했다. 서로 소련의 괴뢰라고, 미국의 괴뢰라고 했다. 서로 꼭두각시라고, 바보, 멍청이라고 불렀고, 성을 냈고, 죽이기까지 했다. 이 땅의 그리스도의 제자들만이라도 북을 향해 성을 내지 말고, 바보, 멍청이라고 부르지 말자(마태 5,20-26 참조). 정전(停戰) 60년이 됐는데, 그쯤 했으면 충분하지 않을까!

[평화신문, 2013년 6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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