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Q&A
“왜 자유는 제한을 받아야 하며, 참 자유는 어떻게 얻나요?”
‘자유’란 말은 생명이란 단어만큼 소중합니다. 분단된 조국의 역사는 우리에게 자유의 소중함을 생생하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자유는 우리의 행복에 꼭 필요한 것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위하여 생명을 바칠 정도로 고귀한 것입니다. 자유란 스스로 생각하여 어떤 것을 선택하고 행동하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는 무한한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요한 8,32)라고 자유에는 근본적으로 진리가 필요함을 가르칩니다. 진리는 오직 하느님뿐이십니다. 그래서 인간의 “자유는 우리의 행복이신 하느님을 향할 때 완전하게 됩니다.”(가톨릭교회교리서 1731항)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은 자기 마음대로 건반을 두드려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음악이 아니라 평화로운 고요함을 파괴하는 소음일 뿐입니다. 음악을 위해서는 스승으로부터의 배움과 훈련과정이 필요합니다. 학생은 정확한 음정과 박자를 연습해야 하며, 아름다운 화음을 위해 조화의 원리를 배우고 끊임없이 연습해야만 합니다. 제멋대로가 아닌 절제된 가르침 속에서 학생은 음악을 배우고 이해해 갑니다. 이해가 깊어질수록 음악의 아름다움은 학생의 영혼을 사로잡고 그 영혼은 보다 더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탄생한 음악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평화를 선사합니다.
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라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며, 진리와 선(善)을 벗어나지 않는 자유를 통하여 성숙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유가 하느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넣어주신 진리와 선을 분별하는 능력과 맞아떨어질 때”(가톨릭교회교리서 1742항) 그리스도의 은총은 우리 삶에 깊숙이 스며듭니다. 은총 속에 머무는 인간의 이성은 진리에 끌리고 의지는 선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이성과 의지에 바탕을 둔 우리의 자유는 선과 악의 안개 낀 갈림길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더구나 자유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한 자기 행동에 책임을 묻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칩니다. 자유의 남용으로 아담과 하와는 불순명과 악을 선택함으로써 ‘죄의 종’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너는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창세 3,13)하고 물으시고, 동생 아벨을 죽인 카인에게도 물으십니다. 우리야의 아내를 간통하고 우리야를 죽인 다윗 임금에게도 예언자 나탄을 통해 책임을 물으십니다. 자유는 양날의 칼입니다. 우리는 자유의지로 참 행복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고, 하느님의 사랑을 거부하여 죄의 노예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바다를 향해 달려가는 강물이 양쪽의 강둑을 넘어 범람하면 홍수라는 재난을 초래하고 삶의 터전은 무너집니다. 강둑이라는 틀 안에서 흘러가는 강물만이 메마른 땅을 적시고 가을의 풍년을 약속합니다. 인간의 자유도 진리와 선으로 우리 삶을 인도하시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멀어지면 위험합니다. 선과 진리는 자유의 나무를 올바르고 튼튼하게 키우는 영양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을 행하면 행할수록 더욱더 자유로워집니다. 자유는 인간행위의 고유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으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며, 우리의 자유의지로부터 나오는 ‘예!’라는 한마디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뜻에 우리 자신을 맡기는 순간 ‘참(眞) 자유’를 얻습니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
※ 참고 : 가톨릭교회교리서 1730-1748항 (사목국 연구실)
[2013년 7월 7일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 이동 서울주보 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