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배우며] 젖먹이에게 왜 세례를 받도록 합니까 대부분의 본당들이 일정한 날을 정하여 유아 세례식을 거행하고 있다. 그런데 부모들 가운데에는 유아 세례에 대해 다소 의혹을 품고 있는 사람도 적지 않다. ‘아무것도 모르는 젖먹이에게 세례를 받게 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아기 때 단순히 부모의 뜻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나중에 본인이 그것을 거부할 수도 있는가?’ ‘제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때 세례를 받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의혹이 있음에도 교회는 전통적으로 유아 세례를 적극 권장해 오고 있다. 한국교회의 교회법인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는 아기의 세례에 대해 “부모는 아기의 출생 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세례받게 하여야 하고 100일을 넘기지 말아야 한다.”(제47조)고 강조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의 유아 세례는 그 기원을 밝힐 수 없을 정도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교회의 초창기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아 세례가 이어져 오는 것은, 세례는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어린이들에게도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에 가입하는 유일한 수단이며, 개인적인 구원을 위하여 통과해야 하는 문이기 때문이다. 유아에게 세례를 받게 하는 것은 유아의 자유를 침해하는 처사라는 생각은 유아의 생물학적 조건을 무시하는 모순을 담고 있다. 일상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유아 아닌 어린이의 경우라 하더라도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들의 의식주 문제를 비롯하여 취미와 특기, 또는 앞날의 설계 등에 대하여 그들 스스로 결정하기를 언제나 기다리고만 있지는 않는다. 오히려 부모는 자신의 지식과 체험을 통해 자녀들이 건전한 인격을 형성하고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살필 것이다. 이 같은 논리를 유아 세례에 적용할 수 있다. 곧 자녀들의 가치관을 정립해 주고, 그 가치를 실현하는 데 협력하는 일이 부모의 정당한 권리요 의무라면, 자신이 세례로 받은 영적 생명의 문을 자녀들에게도 열어주고 그 생명에 충실하도록 배려하는 일은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부모의 본분을 소홀히 하여 자녀들의 세례를 망설인다면 자신의 신앙생활이 피상적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러는 유아 세례를 받은 사람이 성장한 후 자신이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조차 모르거나,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신앙상의 수계행위를 포기하는 사람도 있다. 전자나 후자의 경우 모두 본인에게는 불행한 일이다. 성부 · 성자 · 성령의 이름과 물로써 받은 세례는 결코 무효화될 수 없으며, 반복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유아 세례는 반드시 어린아이의 신앙이 올바로 형성되도록 교육할 것을 약속하는 부모의 동의를 전제로 하고, 대부모 역시 부모를 도와 아이의 신앙 교육에 협력할 것을 약속하게 된다. 세례를 청하는 부모는 자신의 소명을 더욱 인식하는 것은 물론, 자녀의 신앙 교육에 협조할 수 있는 대부모를 미리 정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 무관심하거나 게으른 부모들이 자신의 성실하지 못한 신앙생활을 변명하는 구실로 유아 세례를 늦추거나 의혹을 가지는 게 아닌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경향잡지, 2000년 2월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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