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배우며] 신자는 화장할 수 없는가 “심각한 묘지난으로 정부에서는 화장을 장려하고 있지만 육신의 부활을 믿는 천주교 신자가 어떻게 감히 화장할 수 있는가?” 신자들 가운데는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세례로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신자들이 죽은 뒤 부활하리라는 믿음은 교회가 한결같이 선포하는 교의이다. 그러나 부활이란 우리가 세상에서 지니고 있는 육체, 곧 물질적 요소가 소생한다는 뜻이 아니므로 늙어서 죽는 사람은 늙은 몸으로, 병들어서 죽는 사람은 병든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외울 때마다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라고 고백하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하느님 안에서 온전히 다시 살리라는 희망을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부활한다는 점이 이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것이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음식을 먹고 마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닫힌 문을 통과하며 순간적으로 사라질 정도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몸을 지니셨다. 예수님과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보고도 쉽게 알아보지 못했다. 이처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은 그분이 살아계실 때의 몸과는 다르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서 만일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신을 화장하였다 하더라도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화된 육신을 가지고 부활하시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었으리라는 말이다. 바오로 사도는 부활한 다음 우리가 지니게 될 몸이 현재의 몸이 아니라는 설명을 하려고 ‘변형된 육체’에 대하여 길게 이야기하고 있다(l고린 15,35-54 참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로부터 육신의 부활에 대한 신앙과 그리스도의 지체인 신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자 죽은 사람을 땅에 묻었고, 이러한 행위는 세월과 더불어 풍습으로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교회의 적대 세력, 특히 초대교회의 박해자들과 반(反) 그리스도교 단체들은 그리스도교의 교리, 특히 부활과 영혼 불멸성을 부정하려고 죽은 이를 화장하였다. 교회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동조한다는 비난의 소지를 없애며 그리스도교의 풍속을 보존하려고,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화장을 금지했고, 교회법에도 이러한 규정을 명시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화장을 금지하게 되었던 이유가 사실상 의미없을 뿐더러 화장이 필요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1983년에 반포된 새 교회법에서는 지난날의 규정을 고치게 되었다. 현행 교회법 제1176조 3항은 우선적으로 전통적인 방법인 매장을 권고하면서도,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반대하는 이유가 아니라면 화장을 허용하고 있다. “교회는 죽은 이들의 몸을 땅에 묻는 경건한 관습을 보존하기를 간곡히 권장한다. 그러나 화장을 금지하지 아니한다. 다만 그리스도교의 교리에 반대하는 이유들 때문에 선택하였으면 그러하지 아니하다.” 한국 주교회의는 지난 1990년 가을 정기총회에서 우리 나라의 심각한 묘지난을 염려하면서 전통 묘지 제도의 개선에 대해 깊은 논의를 하고 시한부 묘지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경향잡지, 2000년 3월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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