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배우며] 인간인 신부님께 어떻게 죄를 고백합니까? “천주교 신자들은 신부님께 가서 자기가 지은 죄를 일일이 고백해야 그 죄에 대한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신부님도 우리와 같은 인간인데 무슨 권한으로 용서할 수 있으며, 또 자신의 치부를 어떻게 신부님이라고 해서 낱낱이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막상 세례성사를 받고 신자가 되고 보니 ‘이것도 죄, 저것도 죄’라는 생각이 들어 신앙생활이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혼의 안식을 주시어 편히 쉬게 해주신다고 했는데 말입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나 다른 종교인들은 특히 우리 천주교회의 고해성사에 대한 의문이 많은 편이다. 우리 신자들 가운데도 고해성사를 큰 짐으로 여겨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러한 고해성사를 교회는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이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스도인도 결코 예외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를 받아 하느님의 새로운 생명을 받고 모든 죄와 벌에서 해방된 사람이나 세례성사 이후에 짓는 죄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속죄하여야 한다.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 죄를 은혜로운 방법으로 용서해 주시려고 고해성사를 세우셨다. 우리는 곧잘 하느님을 이 세상의 무서운 지배자처럼 생각할 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가 잘못한 일에 대해서는 반드시 하느님께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해성사는 하느님이 그런 분이 아니라 참으로 자비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신시키는 성사이다. 따라서 고해성사는 죄를 고백하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 대가를 치르는게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체험하는 기쁨의 성사이다. 고해성사는 가톨릭 사제가 평범한 개인의 자격으로 집행하는 것이 아니다. 국가로부터 사법권을 부여받은 판사가 판결을 내릴 수 있듯이, 사제의 사죄 권한도 그리스도께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누구의 죄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늘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고 용서해 주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채 남아있을 것이다”(요한 20,23). 그리스도께서 사도들에게 직접 부여하신 이 권한을 사도들은 그 후계자들에게, 그들은 다시 그들의 후계자들에게 전승해 주었던 것이다. 우리가 육신의 병을 치료하려고 합당한 자격을 갖춘 의사에게 자신의 증세를 말하고 처방을 받듯이, 영혼의 병을 치료하려고 사죄권을 부여받은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모든 사제는 고백자에게서 들은 모든 것을 반드시 절대 비밀로 유지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예컨대, 살인을 저지른 이가 고해성사를 통해 살인 행위를 고백했다고 하더라도 사제는 절대 비밀을 지켜야 한다. 이러한 비밀 의무는 우연히 또는 의도적으로 고해성사의 내용을 들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주어져 있다. 고해성사의 비밀은 2000년 가톨릭 역사에서 한 번도 깨진 일이 없이 철두철미하게 지켜져 오고 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인간의 죄를 가리켜 “오! 복된 죄여.”라고까지 표현하였다. 죄 때문에 은총과 사랑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하느님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인간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은 언제나 죄 가까이 있다. 비록 늘 죄를 짓고 살아가는 약한 인간이지만 정작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죄를 다시는 짓지 말라는 것보다 비록 범죄했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뉘우치고 다시 당신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경향잡지, 2001년 2월호, 김진복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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