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02) 캐나다 안티고니시 운동
경제대공황에서 벗어나게 한 ‘협동조합’
오염되지 않은 대자연이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오는 캐나다에서는 협동조합도 색다른 매력을 풍깁니다.
캐나다에서는 주변에 무엇인가 개선해야 할 점이나 필요한 것이 있을 때 협동조합에서 답을 찾고, 나아가 문제 해결 과정을 주 정부와 관련기관에서 도와주는 시스템이 자연스럽습니다. 협동조합이 캐나다인들의 삶과 품성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캐나다 협동조합의 매력을 알기 위해서는 캐나다의 전설적인 협동조합 운동인 안티고니시(Antigonish) 운동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안티고니시 운동이란 캐나다 노바스코샤 주의 읍 단위 조그만 마을인 안티고니시 지역에서 일어난 협동조합운동을 말합니다.
흔히 극한의 어려운 시기라 불리는 1920~30년대, 세계적인 경제대공황으로 황폐화된 노바스코샤 경제는 30년대에도 전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절망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당시 캐나다 동부 해안지역의 농부들과 어부들은 구조적 경제 시스템의 폐해가 가져오는 어려움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절망으로 아우성치는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목격한 두 사제들의 투신으로 노바스코샤 지역에는 새로운 희망의 씨앗이 뿌려지게 됩니다.
1920년대 말, 가톨릭교회가 노바스코샤 주에서 운영하던 성 프란시스 사비에르 대학(St. Francis Xavier Extension Department)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던 지미 톰킨스(J.J. Tompkins) 신부와 그의 조카인 모제스 코디(Moses Michael Coady) 신부는 고질적인 경제난의 원인을 지역경제 시스템의 부실함과 함께 주민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이들은 곧 지역 협동조합운동을 통해 행동에 나섰고 그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던 1939년 당시 2265개의 학습모임에서 많은 이들이 협동조합의 정신을 익히며, 342개의 신용협동조합과 162개의 각종 협동조합 조직을 탄생시키는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안티고니시 운동이 큰 성공을 거둔 배경에는 몇 가지 중요한 요소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성 프란시스 사비에르 대학의 성인교육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당시 캐나다 동부 연안의 많은 이들은 공공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톰킨스와 코디 신부는 자신들이 활동하던 대학에서 협동조합과 지역개발 관련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안티고니시 운동을 위한 많은 실천가들을 양성해냈습니다.
두 번째 요인으로 지역 가톨릭교회를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의 적극적인 후원과 참여를 상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앙공동체의 적극적인 참여 덕분에 안티고니시 운동의 실천가들이 시골 구석구석의 마을, 공동체와도 연결될 수 있었으며 또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에 힘이 실릴 수 있었습니다. 특히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만드는 신문, 팸플릿, 라디오 방송 등은 이 운동의 강력한 소통수단 역할을 하며 많은 이들을 한데 일치시키고 결속시킬 수 있었습니다.
작고 소박한 시작이었으나 안티고니시 운동은 캐나다를 넘어 전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지금도 사비에르 대학 부설 코디 국제연구원(Coady International Institute)은 캐나다는 물론 개발도상국의 사회변혁과 자조운동에 많은 영감을 불어 넣고 있습니다.
안티고니시 운동의 명성은 6.25전쟁 직후 자조운동을 시작하려던 한국에도 전해져서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1993년 선종)와 장대익 신부(서울대교구·2008년 선종)가 코디연구원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우리나라 신협운동의 산파 역할을 하게 되니 하느님의 오묘하신 섭리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7월 21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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