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 고행의 금육재와 금식재
왜 육식을 피하고 굶어야 하는가 2월 9일은 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다. 그런데 교회 달력을 보면 이날이 ‘재의 수요일’이며 ‘금식과 금육’일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올해는 공교롭게도 설 연휴에 사순시기가 시작된다. 교회는 매주 금요일만이 아니라 참회 고행의 시기인 사순시기의 정한 날에 재계(금육과 금식)를 지키도록 규정하고 있다. 물론 명절이기 때문에 각 교구별로 금식재와 금육재를 관면(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할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우선 교회가 정한 재계의 날은 언제이며 누가 어떤 방법으로 지켜야 하는지, 그리고 이러한 재계의 근본정신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가 정한 재계의 날은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는 단식농성, 단식투쟁, 건강을 위한 단식이나 절식을 행하는 일이 흔하다. 단식은 이러한 세속적인 의미가 많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최근 우리 교회는 종교적인 참회와 고행의 뜻이 담긴 ‘금식’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전에는 참회와 고행의 한 형태로서 대재(大齋)와 소재(小齋)란 말을 사용하였다. 재(齋)란 식음의 절제 또는 전폐를 뜻하는데 대재는 큰 재, 곧 단식하는 재로서 지금의 금식재이고, 소재는 작은 재, 곧 육식을 하지 않는 재로서 금육재를 일컫는다. 매주 금요일은 금육재를 지키는 날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이 금요일이기 때문에 고행을 실천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이 대축일과 겹치면 금육재는 면제된다.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는 금육재와 금식재를 지켜야 한다(교회법 제1251조).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주야를 단식하셨는데, 사순(40일)시기의 첫날이 재의 수요일이므로 예수님과 함께 재계를 시작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성금요일은 예수 부활 대축일 전 금요일(올해는 3월 25일)로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날이다. 성금요일 금식재를 ‘파스카 금식재’라고도 하는데, 이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의 성금요일에 어디서나 지켜야 한다. 필요에 따라서는 드높고 열린 마음으로 주님 부활의 기쁨에 이르도록 성토요일까지 연장할 수도 있다. 금육재는 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 지켜야한다. 금식재는 만18세부터 60세의 시작일(환갑날)까지 지켜야 한다. 만 18세가 된 사람은 성년자이고, 이 연령 이하는 미성년자인데 사목자와 부모는 이들 미성년자들에게도 참회 고행의 참 의미를 깨닫도록 보살피는 노력이 필요하다. 금육과 금식의 방법은 재계의 방법으로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제136조)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여 죄악을 보속하는 정신으로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키도록 권장하고, 여기서 절약한 돈은 자선사업에 사용하도록 가르치고 있다. 금식재를 어떻게 지켜야 한다는 구체적 제시는 새 교회법에 없다. 16세기 이후의 규정으로는 하루 중 한 끼만 배불리 먹고 한 끼는 요기만 하며 나머지 한 끼니는 금식을 하였다. 이날엔 육식도 금지되었다. 육식을 금하면서도 우유, 달걀, 생선, 기름으로 만든 음식은 허용되었다. 금육재는 육식이나 또는 그 나라 주교회의가 정한 다른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다. 주교회의는 금육재와 금식재의 준수 방법을 더 자세히 규정할 수 있고 또한 금육재와 금식재를 전적으로나 부분적으로 다른 형태의 참회 고행, 특히 애덕사업과 신심수련으로 대체할 수 있다. ‘한국 천주교회의 교회법 보완규정’(2002년 6월 25일 사도좌 승인)에 따르면 금육재는 다른 방법으로도 지킬 수 있다. 1) 연중 금요일 재는 금육이나 금주, 금연, 선행, 자선, 희생, 가족기도로 지킬 수 있다. 2) 재를 지킴으로 절약한 몫은 자선사업에 사용하도록 한다. 금육재와 금식재는 참회와 고행의 실천 앞서 말한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행하는 금식은 고대로부터 교회에서 중요시했던 것이다. 이 금식은 2-3세기경 부활 전 금요일과 토요일에 맨 처음 시도된 것으로 보인다. 곧 부활 전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하루 중 절반 정도만 금식하고 금요일과 토요일, 부활 전야제까지는 온종일 금식하였다. 이틀간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뜻으로 행한 애통의 금식이었다. 성주간의 전례가 개정되기 전에는 성금요일과 성토요일의 전례를 오전에 행하였다. 따라서 성토요일의 금식은 오전 중에 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이제 성토요일 전례는 밤에 거행하기 때문에 성금요일부터 시작되는 금식은 성토요일까지 계속되는 것이 당연하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상기하는 데 가장 적절한 것이기 때문에 성금요일의 금식은 잘 지켜져야 한다. 온전한 사람은 몸과 마음이 하나이기에 그리스도의 고통을 몸과 마음으로 함께 해야만 비로소 주님 부활의 참 기쁨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지난날의 교회에서는 길고 엄한 재를 지켰는가? 교회는 이미 유대인이나 이교도들의 종교 예식에서 영향을 받았고, 그것이 성령의 은혜를 받기 위한 바른 준비자세였으며 세례와 영성체의 타당한 준비이기도 하였다. 재는 가난한 이들을 돕는 좋은 계기요, 절제의 덕이 되었다. 특히 주님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연대의식을 북돋아주었다. 정해진 날 금식재나 금육재를 지키면 자기 자신의 극기행위인 동시에 그것이 바로 공동적인 참회와 고행의 실천이고 서로 일체감을 갖게 된다. 이렇게 금식일은 일 년에 두 번뿐이다. 곧 사순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과 예수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성금요일이다.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광야에서 재를 지키실 때 금식하셨다. 그분을 따른다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사순시기에 두 끼의 금식을 행한다면 이는 예수님께서 하신 금식의 60분의 1을 따르는 셈이다. 굶주리는 이의 고통은 굶어본 사람만이 잘 안다. 금식의 현대적 의미는 고행이라기보다 불우한 이웃을 돕는데 있다. 인내로 자신을 극복하고 남의 곤경에 관심을 가지며, 절약한 것을 꼭 필요한 사람에게 사랑의 동기로 희사하는 것이다. “사람이 빵으로만 사는 것이 아님”을 이번 사순시기에 거듭 깨우치도록 힘써보자. * 안문기 프란치스코 하비베르 - 충남 당진의 신합덕성당 주임신부로 있다.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을 역임하였으며, “대림과 성탄”, “계절과 축제”, “새 미사 해설” 등 교회 전례의 이해를 돕는 책을 냈다. [경향잡지, 2005년 2월호, 안문기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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