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복을 돈으로 산다? 얼마 전 제가 아는 한 신자가 찾아왔습니다. 시골에 있는 집을 처분하고 어렵사리 서울에 새 집을 하나 장만한 이 신자분, 신자된 도리로서 새 집을 강복받고 싶긴 한데 신부님께 얼마 정도의 예물을 드려야 하는지 난감하더랍니다. 자기 생각에도 시골 본당과는 차이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고민하던 끝에 본당 사무실에 찾아가 사무장께 "집을 강복받는 데 신부님께 얼마를 드려야 할까요?" 하고 조언을 구하였답니다. 그러자 사무장은 확실한 대답을 피한 채, "에이, 알아서 하세요" 하더랍니다. 알아서 하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는 이 신자, 제발 알려달라고 거의 애원조로 부탁했더니, "이 정도는 하셔야죠" 하며 얼른 손가락 다섯 개를 쫙 폈다가 겸연쩍게 손을 감추더랍니다. "손가락 다섯 개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저를 찾아온 이 신자가 알고 싶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본당 생활 경험이 없는 수도회 사제라 이러한 본당의 관행에 대해 알 수는 없었기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하세요" 하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글쎄요, 손가락 다섯 개가 오만 원으로 생각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오십만 원을 뜻하는 것도 같은데요. … 오만 원은 적은 듯 하고 오십만 원은 너무 많은 것 같아서요." 그 신자와 헤어진 저는 착잡한 심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착한 신자를 그런 고민(?) 속으로 몰아넣는 교회의 현실이 부끄럽게도 여겨졌습니다. 사제도 보수를 받을 권한은 있다 아무리 종교가 영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한 종교를 구성하고 있는 이들이 이 사회에 발을 디디고 사는 사람들인지라 돈과 아무런 관련도 맺지 않고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사제나 수도자 역시 입고 먹고 사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 다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일로 인해 먹고 살 권리가 있다고 아주 길게 강조하고 있습니다(1고린 9,3-18 참조). 따라서 교회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 특히 사제들이 교회 안에서 활동할 때,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이 회사 일을 함으로써 보수를 받듯이 그에 상응하는 보수를 받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종교인과 돈은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인 양 생각하려는 것이 무리라고 해야겠지요. 정당한 보수 또는 착복 가전 제품을 하나 샀습니다. 산 지 얼마 안되어 고장이 나서 애프터 서비스를 청하자 회사에서 직원이 왔습니다. 작은 고장이고, 계약서대로 하면 원래 무료로 해주는 것이지만 쉽게 고쳐 주는 그가 고마워 마실 것과 간단한 다과를 대접했습니다. 그런데 그 직원이 갑자기 돈을 청구했습니다. 출장비에 부속품 값이라나요. 저는 계약서를 내밀면서 이것은 당연히 무료가 아니냐고 항의할 수밖에요. 그 직원이 그래도 고집을 부리며 돈을 요구하여 회사에다 전화해서 알아보고 돈을 주겠다고 하자 그냥 가버리더군요. 한 회사의 직원이 회사를 위해 일한 대가로서 그 회사가 주는 돈을 받는 것을 우리는 정당한 보수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회사의 지위를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착복이라고 말합니다. 강복을 돈으로 산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일반적으로 우리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 특히 새 차를 사거나 새 집에 들어갈 때 사제에게 차와 집을 축성해 주기를 청합니다. 이것은 자신이 소유한 것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의미와, 자신의 일상 생활을 하느님과 연관시켜 살겠다는 믿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이때 강복을 베풀기 위해 온 사제에게 우리는 사례금조로 예물을 드리는데, 이 예물이 강복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예물은 사제에게 드리는 마음의 표시요, 강복은 하느님이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하느님께로부터 은총을 거저 받기 때문에, 그 은총을 신자들에게 거저 베풀 뿐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돈으로 계산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사제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에 있다 하겠습니다. 즉, 예물의 액수가 많을수록 강복도 많아지리라는 오해가 일부 신자들 사이에 있는 것이 문제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대로 강복은 하느님이 베푸시는 것이라 돈과는 상관없고, 강복을 청하는 신자들 마음 자세에 강복의 크기가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물이 강복의 많고 적음과는 관계없음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체면 때문에 또는 사제에 대한 존경 때문에 많은 액수의 돈을 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제가 먼저 강복의 대가로 큰 액수의 돈을 요구한다면, 이는 신자들에게 강복을 돈으로 산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또 하느님을 욕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습니다. 강복 예물은 정성껏 바치는 것이 원칙 강복을 청할 때 사제에게 어느 정도의 예물을 바칠지는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 있을 것이기에 여기서 얼마라고 딱 짚어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본당이나 사제가 일상적 기준을 넘어선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한다면 신자는 당연히 이를 거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물이 정성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라면 이는 예물이 아니요 착취와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사제는 하느님을 사장으로 모시는 회사에 근무하는 애프터 서비스 직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가 할 일은 하느님 회사의 상품인 은총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제는 신자들에게 봉사하는 차원에서 축성해 주는 것이지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제에게 드리는 예물 액수는 상식이 통하는 선에서 해야 되겠지요.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홈페이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