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전례, 하느님 백성의 봉사
교회 공동체가 모이면 다양한 활동들을 합니다. 함께 기도하고, 복음을 실천하며, 친교의 시간을 갖습니다. 예언자직, 사제직, 왕직으로 요약되는 그리스도의 직무도 교회 공동체의 중요한 활동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활동 가운데 ‘전례’는 특별한 위치를 가집니다. 전례는 그리스어 ‘레이투르기아(λειτουργια)’를 번역한 말입니다. 이 그리스 말은 ‘백성’이라는 뜻과 관련된 형용사 ‘레이톤(λειτον)’과 ‘봉사, 일’이라는 뜻의 ‘에르곤(εργον)’이 합쳐진 말로, ‘백성이나 군중의 공공이익을 위한 봉사’를 뜻합니다.
그래서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이 말이 본래 ‘공적인 일’, ‘백성들의, 백성들을 위한 봉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합니다(1069항 참조). 나중에는 종교적 의식이나 의무를 수행한다는 의미를 갖게 됩니다.
곧, 전례에는 ‘공적’이고, ‘공동체적’이며, ‘종교적’인 성격이 담겨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전례에 대한 「가톨릭교회 교리서」(이하 ‘교리서’)의 가르침과 교리서가 인용하는 성경구절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전례에 대한 교리서의 가르침
교리서는 전례를 ‘신비’의 선포이자 기념으로 설명합니다. 이 신비는 ‘하느님의’, ‘하느님 뜻의’, ‘그리스도의’ 신비이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드러난 ‘파스카’ 신비입니다. 교회가 전례를 거행하는 이유는 신자들이 세상에서 이 신비로 살아가고, 이 신비를 증언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1066-1068항).
그리스도교 전통에서 전례는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의 일’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곧,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과 인간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전례를 거행할 때,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는 유일한 대사제이신 주님의 모습을 따라 시종이 되어, 그리스도의 사제직(예배), 예언자직(복음 선포), 왕직(사랑의 봉사)에 참여합니다(1069-1070항).
전례가 교회활동의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전례는 교회의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자 그리스도인 삶의 원천과도 같습니다. 왜냐하면 전례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인간이 이루는 친교를 볼 수 있는 표징이 되며, 신자들이 ‘성령에 따르는 새로운 삶, 교회 사명에 참여, 교회일치를 위한 봉사’라는 열매를 맺게 하기 때문입니다. 전례는 성령 안에서 성부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기도에 참여하는 것이며, 모든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시작이자 완성입니다. 또한 하느님 백성의 교리교육을 위한 가장 훌륭한 자리입니다(1071-1075항).
전례는 거룩하신 삼위의 행위이며(1077-1134항), ‘온전한 그리스도(Christus totus : 그리스도와 교회)’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구원의 신비를 성사(거룩한 것의 표징이며, 보이지 않는 은총의 보이는 형태) 안에서 거행할 때, 우리는 천상 전례에 참여하고 있는 것입니다(1136-1139항).
무엇보다 전례는 거룩한 사제직으로 축성된 교회 공동체 전체가 거행합니다. 온 회중이 각자의 임무에 따라 ‘전례 거행자’가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보편 사제직 안에서 성품성사로 축성된 이들이 사제이신 그리스도의 표상으로서 전례 거행에서 특별한 봉사의 직무를 맡습니다(1140-1144항).
전례 안에는 표징과 상징, 언어와 행위, 노래와 음악, 성화상 등의 요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요소를 통해 교회는 하느님 백성 고유의 풍부한 문화를 형성해 갑니다(1145-1162항). 전례는 전례시기에 따라 거행되는데, 전례시기는 한 해를 주기로 하여, 강생과 부활, 승천과 성령 강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대림까지 그리스도 신비 전체를 펼치고 있습니다. 이 전례시기에 따른 거행에서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신비의 사건이 일어난 ‘오늘!’, 곧 역사 전체를 관통하고 이끌어가시는 예수님의 파스카 ‘시간’ 안에 인간이 들어오도록 초대하십니다(1163-1165항).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님의 날(주일)’과, 특히 파스카 성삼일과 부활 대축일, 그리고 주님의 강생의 신비가 중심이 되는 축일들은 전례 모임을 위해 가장 적합한 날입니다. 또한 교회는 하느님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순교자들, 그 밖의 다른 성인들을 전례를 통해 기억하여 그들의 모범을 신자들에게 보여주고, 그들의 공로로 하느님의 은혜를 간청합니다(1166-1173항).
전례는 성찬례를 정점으로 하는 일곱 성사(1135항), 그리고 시간전례의 형태로 거행됩니다. ‘성무일도’라고도 불리는 시간전례는 성찬례 거행의 연장으로서 교회의 공적 기도, 곧 하느님 백성 전체의 기도입니다(1174-1178항).
전례의 거행은 ‘영적인 성전’인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거행되기에, 특정 장소에만 매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종교 자유가 방해받지 않을 때에는 제대, 감실, 주교좌나 사제석, 독서대, 세례대, 문지방 등을 갖추어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한 건물을 짓고, 거기서 전례가 이루어지도록 합니다(1179-1186항).
전례에 대한 가르침의 근거가 되는 주요 말씀들
교회는 전례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고 거행합니다. 또한 전례는 교리교육의 가장 훌륭한 자리이기도 합니다. 전례 안에서 새 이스라엘인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의 말씀과 그에 대한 교회의 이해를 배우고 익히게 됩니다. 전례에 대해 교리서가 인용한 성경구절을 정리해 봅니다(표 참조).
전례를 통해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과 통교합니다.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믿음으로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이는,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살아있는 돌
전례에 관한 주제들 가운데 ‘전례, 하느님 백성의 봉사’라는 주제는 베드로 1서의 말씀으로 성찰해 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분은 살아있는 돌이십니다. 사람들에게는 버림을 받았지만 하느님께는 선택된 값진 돌이십니다. 여러분도 살아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바치는 거룩한 사제단이 되십시오”(1베드 2,4-5).
전례는 하느님의 백성이 하느님과 인간에게 봉사하는 ‘하느님의 일’, 특히 공적 예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을 향한 경신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이 성전은 튼튼한 돌로 지어졌습니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성전이시다.’라고 고백함으로써, 성전이 이제 영적인 측면으로 승화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은 이 성전을 구성하는 ‘살아있는 돌’이 되어 ‘거룩한 사제단’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전례는 하느님께로부터 뽑힌 사제적 백성이 그분께 나아가서 그분 마음에 드는 영적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봉헌하는 제물이란 예식을 통해 드리는 기도와 예물뿐 아니라 삶 안에서 자선을 베푸는 것도 포함합니다(마태 9,13 참조). 그래서 교리서는 전례를 거행하는 하느님의 백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씁니다.
“전례를 거행하는 회중은 ‘새로 남과 성령의 도유를 통하여 신령한 집과 거룩한 사제직으로 축성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모든 활동을 통하여 신령한 제사를 바치는’ 세례 받은 이들의 공동체이다”(교리서, 1141항).
전례, 하느님 백성의 봉사
우리는 전례를 단순히 함께 모여 미사와 같은 예식을 거행하는 것으로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게다가 거기에 참석하는 자신을 두고는 그 예식의 ‘참석자’이기는 하지만 ‘거행자’라는 점은 잊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집전자’인 사제만이 거행자라고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례는 하느님 백성 전체의 행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 삶의 정점과도 같은 행위입니다. 전례를 통해 하느님을 경배하고 그분께 예물을 바친다는 것은 우리가 온 삶을 통해 그분을 찬미하고 자신을 봉헌한다는 의미로 확장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냥 돌이 아니라 삶을 통해 영적 성전을 이루는 ‘살아있는’ 돌입니다. 이처럼 전례는 예식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통해서 거행됩니다.
살아있는 돌인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과 세상에 ‘사제적 봉사’를 위해 뽑힌 이들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여 창조주를 찬미하고 그분께 청원합니다. 그리고 모든 피조물을 향한 창조주의 축복을 전달합니다. 진정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을 위한 ‘하느님 백성의 봉사’입니다.
* 고성균 세례자 요한 - 도미니코수도회 수사. 단순하고 즐겁게 형제들과 어울려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의 사명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현재 한국 도미니칸 평신도회 영적 보조자 소임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7월호, 고성균 세례자 요한 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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