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성사, 나자렛 예수님의 구원사업
마음속에 있는 것을 밖으로 드러낼 때, 이를 ‘표현’이라고 합니다. 사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것을 숨겨두지 못합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현하게 됩니다. 표현이 없다면, 우리는 의사소통을 못할 뿐만 아니라, 내외적으로 분열을 겪으며 병들어갑니다. 사람은 영혼과 육체가 밀접히 결합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도 사람에게 표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하지만 그분의 ‘드러내심’은 ‘신비’의 영역이기도 합니다. 그분의 사랑 표현을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부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을 창조하심으로써, 예언자들을 통해 말씀하심으로써, 무엇보다 우리와 똑같이 사람이 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여러 방식을 통해서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표현하십니다.
그 가운데 ‘성사’는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구원의지가 담긴 아주 결정적인 사랑표현입니다. ‘거룩한(聖) 일(事)’을 뜻하는 성사는 라틴어 ‘사크라멘툼(sacramentum)’을 번역한 것입니다.
원래 사크라멘툼은 ‘금전적 담보’, ‘군인 복무 선서’를 뜻하는 말이었는데 교회 안에서 ‘신비’라는 뜻을 지닌 그리스어 ‘뮈스테리온(μυστ?ριον)’의 라틴 번역어로 사용하였습니다. 곧, 성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체험한 이들이,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고자 다짐하는 선서와도 같습니다.
따라서 성사를 받으려면 보이지 않는 것을 받아들이는 ‘신앙’이 필요하고, 동시에 하느님께 받은 은총에 응답하는 마음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제 성사에 대한 「가톨릭교회 교리서」(이하 ‘교리서’)의 가르침과 교리서가 인용하는 성경구절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성사에 대한 교리서의 가르침
교리서는, 교리교육이 신비의 선포이자 기념인 전례를 통해 이루어지며, 이는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상징에서 상징하는 실재로, ‘성사’에서 ‘신비’로 진행하여 그리스도의 신비로 인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합니다 (1075항).
또한, 성령의 강림으로 세상에 나타난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방식인 성사를 통하여 활동하시는데, 이를 ‘성사의 경륜’이라고 부릅니다(1076항). 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바로 ‘강복(bene-dictio, 선물-말씀)’입니다.
인간의 죄를 아시면서도 하느님께서는 노아의 계약을 통해 이 강복을 새롭게 하시고, 아브라함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놀라운 구원사건 안에서 하느님의 강복을 되새기며, 찬미와 감사로 이에 응답합니다(1077-1081항).
교회의 시대에 이르러서 이 강복은 전례에서 온전히 드러나는데, 이를 통해 삼위이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적 축복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특히 당신의 은총을 나누어주려고 세우신 성사들을 통하여 일하십니다.
성사는 인간이 감지할 수 있고 다가갈 수 있는 표징(말씀과 행위)이며, 그리스도의 행위와 성령의 힘으로 이러한 성사가 가리키는 은총을 실제로 이루어줍니다(1082-1085항).
성부에게서 파견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을 파견하시어 기쁜 소식을 선포하게 하셨고, 이러한 구원활동을 파스카의 희생제사와 성사들을 통해 수행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사도들과 그들의 후계자는 그리스도의 성사적 표징이 됩니다(1086-1087항).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걸작’인 신약의 성사들을 만들어내는 장인이시며, 구약의 표상들을 완성하시어 구약과 신약의 조화를 이루시는 분입니다(1088-1094항).
교회에는 일곱 가지 성사가 있으며, 이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사는 ‘그리스도의 성사’입니다. 예수님의 지상생활에서 드러난 신비가 교회의 봉사자들을 통해 성사 안에서 드러나게 됩니다(1113-1116항).
성사는 ‘교회를 통하여’, ‘교회를 위하여’ 존재한다는 의미에서 또한 ‘교회의 성사’입니다. 그리스도와 오직 하나의 신비체를 이루는 교회는 성사 안에서 ‘유기적 구조’를 지닌 ‘사제 공동체’로서 활동합니다. 그래서 어떤 성사는 성사의 은총뿐만 아니라 사제직으로의 성별을 나타내는 성사의 인호도 새겨줍니다 (1117-1121항).
성사는 신앙을 전제할 뿐만 아니라 신앙을 기르고 굳건하게 하고 드러냅니다. 그래서 성사를 ‘신앙의 성사’라고도 합니다. 성사에는 신앙을 길러주는 말씀의 선포와 신앙의 응답인 기도가 동반되어야 합니다(1122-1126항).
성사를 통해 우리는 구원의 은총을 받습니다. 그리고 성사는 성사 거행 그 자체로 효력을 갖습니다. 성사는 구원을 위해 필요하며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거행됩니다. 그래서 성사를 ‘구원의 성사, 영원한 생명의 성사’라고도 부릅니다(1127-1134항).
성사에 대한 가르침의 근거가 되는 주요 말씀들
성사와 전례는 교리서 2편 전체를 아우르는 주제입니다. 특히, 성사에 대해서는 제2부 ‘교회의 일곱 성사’에서 더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성사에 대해 교리서가 인용한 성경구절을 정리해 봅니다(표 참조).
성사를 집전하는 근거 역시 말씀이며, 성사 안에서 말씀이 성사적으로 거행됩니다. 말씀과 성사의 관계를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성사는 하느님의 말씀과 이 말씀에 대한 동의인 신앙을 통해서 준비되는 것이기에, 세례를 주는 사명, 곧 성사들을 거행하는 사명은 복음전파의 사명에 포함되어 있다”(1122항).
사람들을 고쳐주는 힘
성사, 나자렛 예수님의 구원사업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 루카 복음 6장을 성찰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주었기 때문이다”(루카 6,17-19).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들을 뽑으신 직후(루카 6,12-16) 산에서 내려오시자 많은 제자들의 무리가 예수님께로 모여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모습입니다. 예수님께 모여든 이들은 갈증과 고통 속에 있었고,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질병을 고치려고 합니다. 이들에겐 참된 구원이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에 선 나자렛 예수님은 그들에게 하나의 희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아픈 이들뿐만 아니라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그분의 힘에 의해 낫게 됩니다. 그 힘은 사람들을 고쳐주고 구원하는 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힘을 받으려고 예수님께 손을 댑니다. ‘손을 대다’라는 뜻의 동사 ‘하프토(?πτω)’는 마찰을 일으켜 불을 지피는 것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곧, 예수님께 손을 대어 일어나는 주님의 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을 갈망하는 우리의 믿음이 일으키는 불꽃과도 같습니다.
성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는 ‘말씀’과 ‘표징’이며, 성사의 목적은 ‘구원’입니다.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손을 대십니다. 주님의 제자인 우리도 구원을 갈망하며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께 손을 댑니다.
‘손을 댄다’는 표징으로 나음을 체험한 이들의 영혼은 이 구절에 이어지는 다음의 말씀으로 구원과 위로를 체험합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20).
성사, 나자렛 예수님의 구원사업
우리가 성사를 대할 때, 많은 경우에 어떤 통과의례를 치르는 듯한 태도를 가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사가 집전되는 순간에 우리 구원을 위한 결정적인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망각하는 때도 많습니다. 성사를 통해 우리는 구원에 필요한 엄청난 ‘힘’을 얻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우리는 성사 안에서 듣는 말씀과 행위들을 통해서 우리의 구세주이신 나자렛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성사를 집전하는 이는 바로 우리의 구원을 간절히 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표현’을 필요로 하는 인간이기에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사람이되시어 말씀과 표징으로 우리에게 표현하셨습니다. 이 표현은 태초에 하느님께서 피조물을 두고 ‘좋아하신’ 그 표현이며, 때가 차서 교회를 통해 계속되고 있는 하느님의 강복입니다.
“성사들은 언제나 살아계시며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는 힘’이요,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일하시는 성령의 행위이다. 성사들은 새롭고 영원한 계약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걸작’이다”(교리서, 1116항).
* 고성균 세례자 요한 - 도미니코수도회 수사. 단순하고 즐겁게 형제들과 어울려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우리의 사명에 작은 도움이 되고자 노력한다. 현재 한국 도미니칸 평신도회 영적 보조자 소임을 맡고 있다.
[경향잡지, 2013년 8월호, 고성균 세례자 요한 수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