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07) 캐나다 퀘벡 장기금융 프로그램
사회적 약자 존엄성 지키며 창업 도와
캐나다 퀘벡의 사회적 경제를 든든하게 지탱해오고 있는 ‘사회적 경제 대표자 연석회의’샹티에(Chantier)는 ‘작업장’이라는 말뜻 그대로 공동선을 위해 힘을 합친 이들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가 맞닥뜨린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맞댄 샹티에의 활동으로 퀘벡 주는 다른 어떤 곳보다 빨리 어려움을 이겨내고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하느님 나라로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는 듯한 모습입니다.
샹티에는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를 활성화시켜 나가기 위해 그 젖줄 역할을 하는 장기금융 프로그램인 ‘인내자본’(patient capital) 조성에 힘을 기울입니다. 퀘벡의 사회적 경제시스템이 만들어낸 독특한 제도인 인내자본은 협동조합을 비롯한 사회적 기업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이 인내자본에는 경제활동의 한 축을 맡고 있는 노동자들뿐 아니라 노조와 주정부 등 보통 대립관계에 서있기 쉬운 경제주체들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내자본은 수익 창출을 목표로 하지 않고 사회적 약자들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창업할 수 있도록 돕는 자본입니다. 그러나 상환 의무가 있다는 점에서 전통적인 자선기금과는 다릅니다. 사회적 경제 조직들은 인내자본을 통해 안정적인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차입으로 인한 경영권 상실 위험을 방어하며, 투자금 상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됩니다.
샹티에는 지난 2006년 연방정부가 연기금을 통해 조성한 투자기금으로부터 3000만 달러, 주정부에서 1000만 달러, 그리고 자체 기금 1250만 달러 등 총 5250만 달러 규모의 인내자본을 조성합니다. 아울러 사회적 기업의 가장 큰 애로점인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대출금 상한 규모도 종전 5만 달러에서 150만 달러까지 30배로 늘립니다. 캐나다 최대의 신용협동조합인 데자르댕(Desjardins)도 이러한 연대기금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인내자본들로 이뤄진 연대기금이 이뤄낸 성과는 가히 놀랍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1996년 당시 주정부를 중심으로 기초단체, 경영자협회, 노동자연맹, 사회단체 대표가 모인 ‘퀘벡의 경제·사회 미래에 관한 연석회의’의 제안에 따라 보육과 주거, 환경,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기업과 협동조합 설립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이뤄집니다. 이에 힘입어 10여 년 동안 탁아 서비스를 제공하는 협동조합 등을 통해 2만5000여 개 일자리가 만들어졌고, 저소득층을 위한 주택 1만 호가 건설되면서 관련 산업분야에서도 일자리가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가 확산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게 되고 다시 이와 관련된 경제 분야에서 협동조합이 설립되는 선순환 과정을 통해 실업이 극복되고 경제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퀘벡 주의 다양한 연대기금을 통해 설립된 사회적 기업만 2008년 말 기준으로 1880여 곳에 달하며, 12만6000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결실을 일궈내게 됩니다. 단순한 연대조직에서 출발한 샹티에는 이제 퀘벡 주정부 상설기관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뜻있는 이들의 아름다운 모색을 통해 (지방)정부와 시민사회단체가 협력하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우리는 샹티에의 도전의 역사를 통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가 만들어내는 기적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9월 1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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