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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35: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09-08 조회수1,808 추천수0

[신나고 힘나는 신앙 - 차동엽 신부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해설] (35)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어제 죽으셨고 오늘 일어나셨으며 내일 오실 것처럼 …



■ 잊혀진 질문

한 참 전쯤, 삼성의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이 1987년 타계 직전에 정의채 몬시뇰에게 인생 및 종교에 관한 24가지 물음이 담겨 있는 질문서를 보내온 사실을 언급한 적이 있다. 그리고 이 물음들은 여차저차 하여 졸저 「잊혀진 질문」에서 답변이 시도되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들 가운데에는 “지구의 종말은 언제 오는가?”라는 의외의 물음이 포함되어 있었다. 종말을 기정사실로 전제한 이 물음의 저의는 또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겨둔 채, 나는 답변의 실마리를 고 서정주 시인의 시 「단편(斷片)」에서 찾았다.

“바람뿐이드라. 밤허고 서리하고 나 혼자뿐이드라.
거러가자, 거러가보자, 좋게 푸른 하눌속에 내피는 익는가.
능금같이 익는가. 능금같이 익어서는 떠러지는가.
오- 그 아름다운 날은 … 내일인가. 모렌가. 내명년인가.”

고독의 전율이 느껴지면서도 또한 통쾌하고, 처량맞게 들리면서도 또한 웅혼한 기운이 느껴지는 그의 독백! 나는 이 시를 처음 접한 날 이렇게 메모를 남겼다.

“노상 뻑적지근한 향연을 즐기듯 살고 싶어 하지만 마지막에 남는 것은 바람임을 깨닫게 되는 날, 그 날은 필경 생의 베일이 벗겨지는 날일 터다. 겹겹의 먹구름을 뚫고 마침내 햇살이 쨍하니 비춰오는 날일게다.

그날은 과연 언제 올까.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유치원 놀이터에서 휑한 고독을 조숙하게 느끼는 아이의 어느 날 오후일 수도 있고, 애석하게도 임종이 코앞에 왔는데 아직 그날을 끝내 못 만날 수도 있다.

시객(詩客) 서정주가 시간의 허공 속에서 우두커니 만난 밤, 서리, 그리고 혼자라는 자각, 그것은 차라리 존재로부터 내려오는 새벽 감로수일 터다.

그러기에 허무의 밑바닥에서 생의 욕망은 벌써 일어나 ‘거러가자, 거러가보자’를 노래한다. 기개가 장하다! 자신 안에 미친 존재감으로 흐르는 ‘피’가 저 ‘좋게 푸른 하눌속에’서 능금같이 익어 떠러질 그 지대(zone)에까지 가볼 심산이니.

이윽고 시객(詩客)이 미리서부터 예감하고 기대하는 ‘오- 그 아름다운 날’은 나의 갈망으로 남고, 우리 모두의 희구로 약동한다.”

“오- 그 아름다운 날!”
이날을 우리는 종말이라 부른다.

“지구의 종말은 언제 오는가?”
그날이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 하나는 그날을 한평생 기다려 오던 희망의 사람들에게는 그 날이 정녕 환희의 날이 될 것이되, 그날을 부정하고 거부하고 혹여 두려워하던 역천(逆天)의 사람들에게는 그날이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의 날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하느님을 명징하게 알지 못하던 동양의 현자들도 이 사실만은 엄중하게 설파하였다. 자고로 우리 민족은 자녀들에게 이것을 확실히 훈육하고자 했다.

공자가 말하기를, “착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복을 주시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이 재앙을 준다”고 하였다(子曰 爲善者天報之以福 爲不善者天報之以禍).

맹자가 말하기를, “하늘을 순종하는 자는 살고, 하늘을 거역하는 자는 망한다”고 하였다 (孟子曰 順天者存 逆天者亡).

장자가 말하기를, “만일 사람이 착하지 못한 일을 해서 이름을 세상에 나타낸 자는 사람이 비록 해치지 않더라도 하늘이 반드시 죽일 것이다”고 하였다(莊子曰 若人作不善得顯名者 人雖不害天必戮之).
 

■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사도신경에서 이제 우리가 다루어야 할 대목은,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다. 이는 라틴어로 ‘인데 벤투루스 에스트 유디카레 비보스 에트 모르투오스’(inde venturus est judicare vivos et mortuos)라 적혀 있다.

‘인데’는 ‘그리로부터’, ‘벤투루스’는 ‘오다’라는 뜻이고, ‘에스트’는 ‘~하기 위해’ 정도로 보면 되며, ‘유디카레’는 ‘심판하다’라는 뜻이다. 이어서 ‘비보스’는 ‘살아 있는 이’를, ‘모르투오스’는 ‘죽은 이’를 뜻한다.

여기서 ‘그리로부터’는 공간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거기서부터’가 아니다. ‘아버지에게서부터’, 곧 ‘파견받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분의 전권을 가지고 온다” 이런 이야기다.

성경에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오신다”(사도 1,11 참조)라고 분명히 되어 있다. 이는 곧 재림에 대한 얘기다.

이 대목에서 사실 사이비 종교가 많이 출현한다. 이 재림에 대한 믿음을 잘 포장하여 팔면 자신이 교주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흔히 사람들은 ‘재림’ 하면 지레 겁을 먹는다. “곧 올 것이다, 조만간 들이닥칠 것이다” 이렇게 홀려놓으면 겁을 먹고, 집 팔아서 돈 내고, 복종하는 모습이 연출되는 것이다.

성경은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마르 13,26)라고 선포하고 있다.

예수님의 초림이 강생이라면, 이 재림은 바로 저 말씀처럼 장엄하게 마지막 날에 오시는 것을 말한다.

그다음, ‘산 이와 죽은 이들의 심판자’에 관한 부분인데, 이에 대한 대표 성구는 마태오 복음서에 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이 사람의 아들 앞으로 모일 터인데, 그는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그들을 가를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양들은 자기 오른쪽에, 염소들은 왼쪽에 세울 것이다”(마태 25,31-33).

염소는 무슨 죄가 있다고 왼쪽으로 가는가? 여담이지만 이건 키워본 사람만 안다고 한다. 한마디로 염소는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다고 한다. 양들은 모는 대로 잘 가는데, 염소는 그렇게도 고집을 부린다는 것이다.

하여간 그렇다면 기준이 뭘까? 그날 무엇이 심판의 기준이 될 것인지도 분명히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고, 내가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으며, 내가 감옥에 있을 때에 찾아 주었다”(마태 25,35-36).

이 말씀을 잘못 알아들으면, 그저 “착하게 살면 되겠군”에서 그치고 만다. 그런데 맨 마지막 문장에 뭐라 말씀하셨나.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여기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는 말은, 만약 어떤 사람이 그저 착하게 사는 데에만 관심 있다면, ‘나’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에 대해서 “당신은 누군데요?” 하고 물을 수밖에 없다. 결국 여기서의 전제는 ‘경천애인!’ 곧 두 가지가 다 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이 있으면서 ‘인간 사랑하기’를 요구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저 말씀은 “네가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가졌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건 나를 사랑하지 않은 거랑 똑같은 거다”라는 말씀을 전제하고 있는 셈이다.

이 말씀을 법으로 치자면, 심판의 일반법인데, 예수님은 다른 기회에 심판의 특별법도 말씀하셨다. 바로 ‘믿음’의 법 말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종말의 심판을 이야기할 때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예수님 부활과 재림에 대한 묵상의 백미는 미국의 신학자 안토니 후크마의 메시지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어제 죽으셨고 오늘 아침 일어나셨으며 내일 다시 오실 것처럼 살자.”

그러니까 어제 돌아가신 예수님! 그 느낌을 우리가 갖고 살자는 말이다. 그 슬픔을, 그 절박함을, 어찌 보면 절망까지도. 어제 돌아가셨던 그 초상 분위기를 느끼라는 말이다.

그리고 오늘 부활한 예수님! 그 감동을 가지고 있으라는 말이다.

그 예수님이 하늘로 가신 다음에 언제 오신다고 하셨는가? 내일이다!

이렇게 살면 하루하루가 여운이요, 감동이며, 설렘 아니겠는가.

* 차동엽 신부는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 사목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인천 가톨릭대학교 교수 및 미래사목연구소 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가톨릭신문,  2013년 9월 8일, 차동엽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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