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력에 따른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35) 기도 (4)
겸손 · 신뢰 · 인내로 유혹과 싸워 이겨 '기도'
"우리는 늘 여러분을 위하여 기도합니다"(2테살 1,11-2,2). 연중 제31주일 제2독서의 첫 대목입니다. 자신을 위해서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기도하는 삶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기도의 세 가지 형태에 대해 알아본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기도의 싸움(2725~2745항)에 대해 알아봅니다.
◇ 살펴봅시다
교리서는 '기도의 싸움'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기도는 언제나 노력을 전제로, 곧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은 물론 그리스도 친히 "기도란 일종의 싸움"(2725항)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우리 자신과 싸우는 것이며, 우리에게 기도를 외면하게 하고 하느님과의 일치를 깨뜨리게 하는 유혹자의 계략에 맞서 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새 생활을 위한 '영적 싸움'은 기도의 싸움과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2725항).
㉠ 기도에 대한 반대(2726~2728항) : 우리는 먼저 기도에 대한 그릇된 견해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기도를 단순히 심리적 활동으로 본다든지, 정신적 공백 상태에 이르려는 노력으로 보는 견해들이 그렇습니다. 이와 달리 기도와 일은 양립할 수 없다고, 그래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도할 시간이 없다고 보는 견해 역시 그릇된 견해입니다. 기도는 자신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세상의 사고방식에 정면으로 맞서야 합니다. 이성과 과학을 통해 검증되는 것만이 참되다고 보는 견해, 생산성과 효용성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기도는 비생산적이라는 견해, 기도는 행동하기가 두려워서 도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견해들에 대해 맞서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도 아니고 삶과 결별하는 것도 아닙니다.
또 한 가지 싸워야 할 것은 기도에 실패했다는 느낌이나 생각입니다. 기도를 해도 감흥이 없고, 기도를 해도 소원이 이뤄지지 않아 실망할 때가 있습니다. 또 죄인인데 죄인의 기도를 들어주시겠는가 하는 생각, 기도한다고 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 모든 것과 싸워야 합니다. 그 싸움의 무기는 겸손과 신뢰와 인내입니다.
㉡ 겸허한 경계심으로(2729~2733항) : 기도와 관련해서 가장 흔히 겪는 어려움은 '분심'입니다. 이때 분심을 몰아내려고 애쓰면 오히려 함정에 빠지는 것이 됩니다. 그저 다시 돌아오기만 하면 됩니다. 분심은 우리가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래서 그것을 하느님 앞에서 겸손되이 깨닫고, 하느님께 우리 마음을 다시 바치면 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정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기도할 때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특히 마음을 다해 기도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부딪치는 '마음의 메마름'입니다. 이 메마름은 관상 기도의 한 부분입니다. 여기서는 생각도 기억도 느낌도 의욕도 영적 감흥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고뇌와 무덤 속에서 예수님과 함께 머무는 참된 신앙의 순간"(2731항)입니다. 그런데 돌밭에 떨어진 씨앗처럼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해 생기는 메마름이라면, 회개하려고 싸워야 합니다.
이런 어려움들 외에 우리는 기도와 관련해 유혹을 받기도 합니다. 기도를 하려고 하면 마치 분심이 드는 것처럼 다른 일이 더 중요하고 더 급한 일처럼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는 신뢰심의 부족에서, 또 겸손한 마음을 갖지 못하는 데서 오는 유혹입니다. 이럴 때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요한 15,5)는 말씀을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게으름이나 좌절감 또한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 자녀다운 신뢰심으로(2734~2741항) : 우리는 기도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청원기도의 결과를 봐야 한다고 고집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느님을 우리의 수단으로 삼는 것입니다. 또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구하기도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청원을 기다리시는 것은 우리가 품위 있는 자녀가 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도를 드릴 때는 무엇보다도 자녀다운 신뢰심으로 드려야 합니다. 설사 청원하는 것을 바로 받지 못하더라도 낙담하거나 슬퍼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내가 바라는 바는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느님께서는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소망이 기도 안에서 정화되기를 원하십니다"(2737항).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당신 아드님까지 기꺼이 내어주셨습니다. 우리의 자녀다운 신뢰는 하느님 아버지의 이 사랑에,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의 기도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첫번째 응답은 기도하는 우리 자신의 마음 변화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의 모범이 되시며,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기도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또한 "우리를 위해 우리를 대신해서 우리에게 이롭도록 기도하십니다.…우리의 기도가 자녀다운 신뢰와 대담성을 지녀 예수님의 기도와 튼튼히 결합된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청하는 모든 것을 얻게 되며, 이러저러한 것들보다 훨씬 더 좋은 것, 곧 모든 선물을 지니신 성령 바로 그분을 받게 됩니다"(2741항)
㉣ 항구한 사랑으로(2742~2745항) : 바오로 사도는 늘 깨어 꾸준히 기도하고 감사드리라고 당부합니다(에페5,20; 6,18; 1테살 5,17). 늘 깨어 기도하는 지치지 않는 열정은 사랑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기도의 싸움은 "겸손하고 신뢰하며 항구한 사랑을 가진 사람이 벌이는 투쟁"이며 이 사랑은 기도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 빛과 생명을 주는 세 가지 사실을 깨닫게 해줍니다.
첫째, 기도는 언제나 가능합니다. 장터에서나 혼자 산책할 때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파는 중에도, 요리하는 중에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기도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기도만큼 값진 것은 없습니다. 기도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해주며 어려운 것을 쉽게 해줍니다" 하고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말합니다. 셋째, 기도와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기도와 그리스도인 생활은 모두 사랑과 결부되기 때문입니다. "기도와 일을 결합시키고, 일을 기도와 결합시키는 사람은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라고 고대의 위대한 학자 오리게네스는 말합니다.
[평화신문, 2013년 11월 3일,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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