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훈 주교에게 듣는 신앙과 경제 (115) 아는 만큼 보이는 진리
지역 님비현상으로만 몰리는 ‘밀양’ 문제
우리는 지금까지 전 세계 곳곳에서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퍼뜨리며 몸소 주님의 나라를 일구면서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경제공동체들의 면면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이 사랑하시는 자녀들에게 주고 싶어 하시는 ‘좋은 것’(마태 7,11)의 실체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설파한 괴테의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형제애를 기울이는 만큼 세상 어디에서나, 작은 일상에서도 어렵지 않게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모습으로 다가오셔서 우리를 이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 시대에 주시는 징표를 제대로 읽어 깨닫고 믿음의 지표로 삼아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할 때 당신께서 초대하신 하느님 나라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가 목도하고 있는 몇 가지 사회 현안 가운데서도 우리는 주님의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 가운데 하나가 76만5000볼트에 이르는 초고압 송전탑 건설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밀양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두고 교회 안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시시비비를 가리기 쉽지 않은 사안이라고 하더라도 예수님이시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생각해본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조차 밀양에서 벌어지고 있는 갈등을 단순히 지역 님비현상으로만 바라보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밀양 문제의 이면을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본다면 잘못된 경제관과 왜곡된 경제논리가 깊이 똬리를 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애초에 밀양에서 문제가 일어나게 된 발단은 정부의 잘못된 에너지정책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에너지의 안정적 공급’이 필수불가결한 요소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70년대에 세운 에너지정책의 골간을 지금까지 유지하는 바람에 적잖은 문제에 봉착해있는 상황입니다. 당시 정부는 산업 발전을 독려하기 위해 기업의 전기세를 아주 낮게 책정해 공급하는 정책을 폅니다. 우리나라 전체 전기 수요의 80%가 넘는 산업용 전기를 쓰는 기업들은 이러한 정책에 편승해 굳이 전기료를 절감하며 공장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경제 발전과 함께 에너지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또한 효율만을 따지다 보니 안정성이나 미래 지속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정책을 고수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밀양 송전탑 문제도 결국 대도시의 에너지 수요를 위해 지역의 가난한 이들의 희생을 토대로 추진되는 국가 에너지 시스템의 문제를 집약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블랙아웃 위험이 발생할 때마다 도처에서 강조하고 국민이라면 당연히 절감해야 할 것처럼 여겨지는 가정용 전기가 실제 전체 전기 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대에 불과합니다.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와 이를 맞추기 위한 에너지 공급의 악순환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돌아보고 헤아릴 줄 알 때 우리는 경제적, 시간적 손실에만 눈과 귀가 쏠리게 해 무엇이 하느님의 참뜻인지 생각지 못하게 만드는 불의한 현실과 맞설 수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3년 11월 3일, 이용훈 주교(수원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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