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 (42) 제4편 - 제1부 - 제1장 : 기도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3편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마지막 4편, ‘그리스도의 기도’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기도로써 신앙을 기르고, 전례 안에서 공동체와 더불어 기도하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오늘은 기도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이 서로 나누는 대화입니다. 흔히 기도는 우리 편에서 먼저 하느님을 찾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찾기도 전에 우리를 찾으시고, 우리를 그리워하고 우리를 부르십니다. “네가 하느님의 선물을 알고 또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 하고 너에게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네가 그에게 청하고 그는 너에게 생수를 주었을 것이다.”(요한 4,10) 그리스도께서 먼저 우리를 찾으시고, 마실 물을 달라고 우리에게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목말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신을 목말라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래서 기도는 하느님의 목마름과 우리 목마름의 만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기도하셨습니다. 일을 시작하기 전 외딴 곳에 가시어 기도하셨고, 중요한 일을 결정하실 때에도, 기쁠 때나 괴로울 때에도,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도 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비유로 기도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 번째 비유, ‘벗의 청을 들어주는 사람의 비유’(루카 11,5-13)는 간절하게 기도할 것을 강조합니다. “문을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것입니다. 두 번째 비유, 곧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루카 18,1-8)는 믿음에 따르는 인내를 가지고, 지치지 말고 늘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비유,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루카 18,9-14)는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기에 앞서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기도는 다음과 같은 요소로 이루어집니다. 찬미는 하느님의 선물(강복)에 대한 우리의 응답입니다. 흠숭은 창조주 하느님 앞에서 피조물인 우리가 취하는 기본 자세입니다. 청원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청하는 것입니다. 전구는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성찬례를 통해 온전히 우리의 마음을 봉헌하고 표현합니다. 찬양은 하느님께서 존재하시고 좋은 분이시기에 드리는 우리의 응답입니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루카 11,10) [2013년 11월 3일 연중 제31주일 대전주보 4면, 김두한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신앙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 (43) 제4편 - 제1부 - 제3장 - 제1절 : 기도의 형태 우리는 자주 기도서에 있는 ‘기도문’을 통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때때로 화살기도를 통해 자유롭게 기도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소리기도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묵주기도, 주님의 기도, 자유기도 등이 있습니다. 이 기도의 특징은 우리말로 소리내거나 마음속으로 외워 주님께 찬미, 감사, 간청 등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가 서로 말을 주고받는 것처럼, 하느님께 이야기할 때가 있다면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이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바치는 기도를 묵상기도라고 합니다. 우리는 주로 성경(복음서)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이 때,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에 따라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묵상기도는 성모님께서 그 뜻을 마음 깊이 간직하셨듯이(루카 2,19 참조), 우리도 성경 말씀을 마음으로 새겨듣고 생활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묵상기도는 특별한 방법이 정해져 있지 않지만, 보통 성령청원기도를 통해 시작합니다. 이어서 하느님의 말씀(성경본문)을 통해 예수님과 만나고, 그 말씀을 ‘되새김질’하며, 일상의 경험을 그 말씀으로 비추어 반성하고, 하느님의 뜻을 찾고 실천합니다. 예를 들어, 소공동체 모임의 ‘복음 나누기’는 묵상기도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묵상기도를 통해 더 깊은 기도로 나아가게 되는데, 이 기도를 관상기도라고 합니다. 관상기도는 하느님과 온전히 만나는 기도입니다. 그 만남에는 더 이상의 특별한 대화나 사색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하느님과 그분의 사랑을 향한 신앙의 ‘눈길’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관상기도는 단순하지만 그 신비의 체험은 깊고 강렬합니다. 관상기도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가능합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실 때, 우리는 그분의 신비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 그 은총을 구하고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자신을 비우고 주님께 온전히 맡겨드리는 신뢰가 필요합니다. 묵상기도와 함께, 관상기도는 침묵 중에 이루어져야 하며, 감정과 상황에 따라 기도를 바치는 것이 아니라, 비록 분심과 유혹으로 기도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 기도를 바쳐야 합니다. 우리가 유의할 점이 있다면, 묵상기도와 관상기도에 친숙하더라도 누구도 소리기도를 등한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정성껏 바치는 소리기도(기도문)는 하느님께 대한 묵상으로 이어지고, 또한 관상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신비를 체험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2013년 11월 10일 연중 제32주일 대전주보 4면, 김두한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신앙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 (44) 제4편 - 제2부 : 주님의 기도 (1) 주님의 기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유일한 기도입니다. 사람이 되어 오신 말씀으로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시고, 그것들을 하느님께 청하도록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기도만이 아니라 동시에 성령도 우리 마음에 보내주셨습니다(갈라 4,6 참조). 따라서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 우리는 ‘성령’과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드립니다. 주님의 기도는 기도 중에 가장 귀한 보물과 같이 소중하고, 우리가 기도 안에서 가장 많이 바치면서 좋아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단순하게 반복하는 입술만의 기도가 되지 않도록 더더욱 그 기도의 의미를 깨닫고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바쳐야 합니다. 이제 주님의 기도를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로 친숙하게 부르면서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아버지’를 부르며 기도할 때, 우리는 그분의 자녀로서 하느님과 그리고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눕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의 상속을 희망합니다. “나는 그의 하느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묵시 21,7) 하느님께서 계신 하늘은 멀리 떨어진 어떤 장소가 아니라 그분의 위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는 찬미와 흠숭 그리고 자녀다운 사랑으로 시작하는 기도입니다. 이어서 우리는 일곱 가지 청원을 하느님께 말씀드립니다. 첫 세 가지 청원들은 우리가 ‘아버지’를 향하도록, 곧 아버지의 이름, 나라, 뜻을 추구하도록 합니다. 우리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길 기도하는 것’은 빛나시지 않기에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 거룩한 빛 속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거룩하게 알아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을 느낄 때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도록 우리도 거룩하게 지냅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나라가 오길 기도하는 것’은 ‘이미’ 이 세상에서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에 속해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하느님 나라 건설에 협력하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는 장차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깨어 기다립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러 세상에 오셨고(히브 10,7 참조), 아버지의 뜻을 양식으로 삼아 사셨으며(요한 4,34 참조),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치셨습니다(갈라 1,4). 우리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길 기도하면서, 예수님처럼 또한 예수님과 함께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2013년 11월 17일 연중 제33주일(평신도주일) 대전주보 4면, 김두한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신앙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 (45) 제4편 - 제2부 : 주님의 기도 (2) 지난 주, 우리는 ‘주님의 기도’의 첫 세 가지 청원들(하느님의 이름, 나라, 뜻)의 의미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의 바람을 기도드리기 전에 하느님 아버지를 찾고, 그분께서 활동하실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드립니다. 그 다음, 우리는 나머지 네 가지 청원들을 바칩니다. 네 가지 청원들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와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저희에게 주소서’라고 청하는 것은 우리 모두 한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 곧 형제자매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기도는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일용할 양식을 청합니다. ‘양식’은 곧 생명을 유지하는데 꼭 필요합니다. 양식이라는 말 안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항상 넉넉한 양식을 청하도록 가르치시지 않으시고, 다만 ‘오늘’ 필요한 양식만 청하라고 제한하셨습니다. ‘하루의 양식을 청하는 것’은 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마련해 주시는 하느님을 잊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하느님께 돌보아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또한 미사 안에서 말씀과 성체의 양식을 받아 모시길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하느님께 자비와 용서를 청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기도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용서를 받으려면 반드시 먼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먼저 우리가 용서해 주어야’ 합니다. 용서를 청하는 기도는 두 가지를 내포합니다. 하나는 우리 스스로 하느님 앞에 죄인으로 깨닫기 어렵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우리의 잘못을 성찰하고, 우리 형제자매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길 노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짓기를 원치 않으시고, 악을 행하도록 시험하지 않으십니다(야고 1,13 참조). 그러나 우리는 ‘영’과 ‘육’ 사이에서 싸우고 있기에, 늘 유혹을 당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유혹에 ‘동의’하게 되면 우리는 죄를 짓고 하느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따라서 유혹에 넘어지지 않도록 하느님과 함께 깨어 있길 청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악에서 구해 주시기를 청합니다. 악은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사탄, 악마, 마귀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이 세상의 우두머리”(요한 14,30)에 대한 승리를 거두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악의 세력에서 해방시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더 이상 악마에 대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도를 마칠 때는 아멘으로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내용에 동의하면서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 그동안 좋은 글을 집필해 주신 김두한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2013년 11월 24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성서주간) 대전주보 4면, 김두한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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