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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51: 고해성사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3-11-05 조회수4,324 추천수1

간추린 가톨릭 교회 교리서 (51)



56. 고해성사
 
우리는 세례성사로 말미암아 모든 죄가 용서받음을 믿습니다. 그러나 세례성사를 받은 후에도 우리는 자주 잘못을 행하고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교회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기쁨과 평화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1) 고해성사의 설정

①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은 자주 잘못을 범했습니다. 그때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꾸짖으시며 잘못을 뉘우치라고 권유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말씀을 듣고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청하면 하느님은 그들을 용서하시고 위로와 평화와 새 삶을 주셨습니다(에제 33,11; 호세 14,2-5; 요엘 2,12-13 참조).

② 회개에로 부르시는 예수님과 죄의 용서

예수님께서도 회개하라고 호소하셨습니다. 이 호소는 하느님 나라 선포의 핵심 요소입니다.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회개에로 부르시는 예수님의 호소에 응답하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무한한 자비로써 용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치유의 기적들을 통해 당신께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마르 2,1-12).

③ 교회를 통한 죄의 용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행하신 회개에의 가르침과 죄를 용서할 권한을 사도 베드로에게(마태 16,19) 또한 모든 사도들에게 주실 것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8,18).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평화의 축복과 함께 사죄권을 선포하셨습니다(요한 20,23).

모든 성사가 그러하듯이, 고해성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일입니다. 사제가 봉헌하는 성체성사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듯이, 예수님의 용서 역시 사제들을 통해서 베풀어지는 것입니다.

2) 통회의 중요성

그리스도교 신앙은 회개에로 부르시는 하느님께 끊임없이 응답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고해성사는 가톨릭 신앙 생활에 있어서 핵심 요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현실을 살펴본다면, 고해성사가 기쁨과 은총의 원천이 되기보다는 부담스러운 의무 조항처럼 느껴지고 소홀히 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고해성사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전통적으로 고해성사의 다섯 가지 요소를 이야기합니다. 성찰, 통회, 정개, 고해, 보속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일까요?

참회하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행위는 통회(痛悔)이다. 통회는 “지은 죄에 대한 마음의 고통이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그 죄를 미워하는 것이다.”(가톨릭교회교리서 1451항)

오늘날 고해성사가 기쁨과 은총의 원천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통회의 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고해성사를 심리상담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하소연하고 그 원인을 찾아내는 자리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다른 사람이나 외부 상황에서 핑계를 찾곤 합니다. 자신의 죄를 진심으로 아파하는 마음이 부족합니다. 이렇게 되면 고해성사는 은총의 통로가 되지 못하고, 자기 변명의 자리가 될 뿐입니다.

통회에는 “완전한 통회”(사랑의 통회 또는 상등통회)와 “불완전한 통회”(두려움의 통회 또는 하등통회)가 있습니다. “완전한 통회”는 하느님을 모든 것 위에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통회입니다. 이 통회는 소죄를 용서해 주며, 가능한 한 속히 고해성사를 받겠다는 굳은 결심이 포함된 경우 죽을 죄도 용서받게 해 줍니다. 다시 말해 고해성사를 하기도 전에 그 자체로 이미 사죄를 받을 수 있게 해 준다는 말입니다.

“불완전한 통회”도 하느님의 선물이며 성령께서 일으켜 주시는 것이지만, 이 통회는 죄의 추악함이나 죄인을 위협하는 영벌과 다른 벌들에 대한 두려움에서 생깁니다. 이러한 양심의 동요는 은총의 감도 아래 성사로 죄를 용서받음으로써 완성되는 내적 변화를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완전한 통회는 그 자체로써는 대죄의 용서를 얻지 못하며, 고해성사로 용서받도록 준비시킬 뿐입니다.

3) 보속의 중요성

고해성사를 통해 모든 죄가 용서받을 수 있나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고해성사만 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용서는 죄를 없애 주지만 죄의 결과로 생긴 모든 폐해를 고쳐 주지는 못한다. 죄에서 벗어난 사람은 완전한 영적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 죄를 갚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더 실행하여야 한다. 적절한 방법으로 죄를 ‘보상’하거나 ‘속죄’하여야 할 것이다. 이러한 갚음을 ‘보속’(補贖)이라고 부른다(가톨릭교회교리서 1459항).

오늘날 사제들은 보속을 아주 쉬운 것으로 정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기도 한 번, 묵주기도 한 단 정도로 말입니다. 어려운 보속을 주면 그것을 실행하지 못함으로써 또 다른 죄를 짓게 될까봐 이렇게 쉬운 보속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으로 모든 보속을 다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옛날 요리문답을 들어 봅시다.

문 : 보속이 몇가지 있느뇨?
답 : 보속이 두가지 있으니 천주 정하신 것과 신부 벌하시는 것이니라(270조).

문 : 천주 정하신 보속은 무엇이뇨?
답 : 천주 정하신 보속은 내 탓으로 남에게 끼쳐준 모든 손해를 기워갚음이니, 고해하기 전에 함이 타당하니라(271조).

문 : 신부 벌하시는 보속은 무엇이뇨?
답 : 신부 벌하시는 보속은 경문(經文)이나 혹 다른 선공(善工)과 고행(苦行)이니 고해 후에 할 것이니라(272조).

문 : 신부 벌하시는 보속만 함이 넉넉하뇨?
답 : 넉넉지 못하니 스스로 다른 보속을 하거나 대사(大赦)를 얻음으로 그 부족함을 채울지니라(273조).

앞서서 고해성사가 기쁨과 은총의 원천이 되기 위해서는 진실된 통회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통회가 진실되다면 보속 역시 진실해야 합니다. 사제들이 정해주는 보속을 채우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이 끼친 손해를 갚고, 자선을 행하고, 이웃에게 용서를 베풀어야 하겠습니다.

[2013년 10월 27일 연중 제30주일 의정부주보 5-7면, 강신모 프란치스코 신부(선교사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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